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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터뷸런스 May 15. 2018

[ 원하는 것을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

[ 원하는 것을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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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우 선호하는 게 분명하다. 그래서 내 여자 친구가 제일 예쁘고, 내가 입는 옷도 최고 멋있으며, 신는 신발도 가장 쌈빡하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이다.  

뭐 스스로가 완전하지 못하니 그 부족함을 내외의 것으로 채우려는 욕망도 한몫한다고 본다.

다만 원래 인간은 자신한테 없는 것을 채우기 위해 삶을 연명해 나간다. 

중요한 건 내가 무엇으로 내 삶을 채우려는지는 내 맘이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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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얻고자 하는 욕망은 삶을 연명하게 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작동한다.

명품을 산다면 무조건 욕하는 사람들치고 본인의지로 치열하게 노력해서 결과를 수확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자신에게 가치가 없는 것이라 해서 타인에게도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

아무리 허영심이 가득한들 본인이 무언가에 그만큼의 가치를 매긴다면 그것만으로도 투자의 의미는 충분하다. 

도박이나 마약처럼 집착할수록 가진 모든 것을 앗아가는 목적만 아니면 된다.  

명품은 사두면 만족과 리셀이라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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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의식이 없음은 오직 불만과 불평만을 만든다. 

원하는 것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어지며, 반사적으로 타인이 좋은 무언가를 얻는 것에 대해 불쾌해하는 성향을 갖게 한다.  

그래서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만족도도 높고 타인의 잘됨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대표적으로는 노홍철이 그래 보였다. 무도 스트레스 특집 때 가장 스트레스가 없는 사람으로 꼽혔던 게 기억난다. 항상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입고 싶은 대로 입고 다녔으니 그럴만해 보였다. 

그 당시 그렇게 돈을 잘 버는데도 경차를 타고 다니던 모습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그에게 있어서 차는 차일뿐이었다. 

타인에게 간섭당하지 않는 힘이 있으면 누구나 그런 선택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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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 6개월간 알바만 해서 유럽여행을 2주 갔다 온다고 해도 누구도 욕할 수 없으며

청년 창업가가 억에 가까운 투자로 이제 막 순수익 100만 원을 벌어도 욕할 수 없다.

대학생은 돈과 바꿀 수 없는 인사이트와 용기를 얻고, 창업가는 성공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는 값진 경험을 얻었다면 그 투자는 조금도 아까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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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장기적으로 합리적인 것들을 위해 단기적으로 비합리적인 것들을 선택하는 존재다. 

하지만 무엇이 합리적이고 무엇이 비합리적인 건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인다.

꼭 돈을 무조건 모아야만 합리이고, 원하는 물건이나 내가 경험하고 싶은 것에 돈을 쓰는 건 비합리인가?

돈은 잘 써본 사람이 벌 줄도 아는 거다. 결국 버는 행위는 쓰는 것에서 파생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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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도 마찬가지다. 이것저것 안전과 합리성을 재고 따지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안 하게 된다.

리스크가 0 에 수렴하는 일은 없다. 어떤 일이든 리스크는 반반이다. 되든 안되든.

다만 거기서 무엇을 얻느냐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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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효율성과 효과성을 따진다면 부모님은 우리를 낳지 말았어야 한다.

솔직히 그분들이 나에게 해준만큼 효도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으니까. 

게다가 내가 지금 돈을 번다 고해서 부모님이 나를 키우는데 들인 비용과 시간을 모두 갚지는 못한다. 

우리는 비합리를 그렇게 싫어하면서, 부모님이 합리성을 따지지 않았기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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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상업화된 대학교육과 고등학교 교육은 "합리적 선택"이라는 미명 하에 젊은이들 상당수가 돈만 잘 주는 회사에 입사하려고 발버둥 치게 만들었다. 꿈 따위는 애초에 없고 그냥 돈 잘 주는 회사.

그 배경에는 네가 하고 싶은 것 말고, 사회가 원하는 것을 해야 잘 살 수 있다는 꼰대들의 오더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남들이 원하는 것을 원하고, 내가 원하는 것은 없다.


오직 남는 건 껍데기뿐인 합리화뿐이다. 내가 이지경인 건 사회 탓이며 부모탓이라고. 

이 글은 이게 끝이다. 대단한 메시지 따위는 없다. 


다만 삶의 방향을 스스로의 의지로 판단해서 살아가고 있냐를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싶어서 적게 됐다.

나는 그들이 보기에 비합리를, 나의 기준에서 합리라 판단하여 살아간다. 

내 눈에는 그들이 더 비합리적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어떤 식으로든 내 것이 남고, 남이 하지 말래서 안 하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

그러니 이제는 그냥 본인 의지로 하고 싶은 것을 지금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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