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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터뷸런스 May 16. 2018

우리, 각자의 예술을 합시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스스로의 의지로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대단히 인정할만한 성과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당신이나 나나 결국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을 뿐이다.

다만 현실은 우리의 다리를 붙잡는다.


잘 생각해보면 무엇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학생 때는 돈을 벌지 않으니 돈이 없었고

대학생 때는 생활비 버느라 여유가 없었으며 직장인이 돼서는 집을 사야 해서 쓸 돈이 없다.

결국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돈을 벌려면 다른 것을 할 시간이 없다.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며 살아야 하는 비운의 주인공들이다.


아이러니란 단어는 아마 삶을 통틀어 볼 줄 아는 누군가에 의해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술을 하고 있다 생각한다.

예술가라면 대단한 그림을 그리는 화백이거나 굉장한 역작을 남기는 작가들의 이미지만 떠오른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지하철 입구에서 15년째 작은 구둣방 안에 앉아 구두를 수선하시는 아저씨도 내 눈에는 예술가로 보이고, 중국집에서 수타 짜장을 만드시는 분도, 늘 책을 쓰시거나 학문을 정진하시는 우리 아버지도 

예술가로 보인다.

나는 전시회나 사진전을 많이 보러 다니지만 들러리로 구경 가는 게 아니라 동등한 예술가로서 타인의 예술을 감상하러 간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을 위해 글을 쓰고, 글을 쓰기 위해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그 과정이 굉장히 의미 있고

고귀하다 생각한다.


물론 학문적 깊이가 있는, 삶의 모든 것을 바쳐 예술을 하시는 분들 앞에서는 겸손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분들에 비하면 나는 너무나 조그마하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위축될 것도 없다. 그 예술 학문들도 결국 삶의 터전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삶의 터전은 모든 예술의 기반이자 모태이다. 그곳의 이야기를 좀 더 정갈하게 다듬은 것이 우리가 흔히 보고 접하는 예술작품들이다. 하지만 보석의 원석이 다듬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보석이 아닌 건 아니듯이,

우리의 삶도 정갈하게 다듬어지지 않았을 뿐, 그 자체로 예술이다.


당신이 이번 학기를 위해 피 터지게 모은 백만 원 남짓 안 되는 생활비도 예술작품이며,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의 신발을 사모으는 것도 예술이다.


내가 정의하는 예술은, 삶의 열정이라는 나무를 땔감 삼아 태워 만들어내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나는 당신에게 생각하지 않던 자부심을 갑자기 가지라 말하고 싶지 않다. 

당신의 삶 자체가 예술작품이며 전시회이자 자부심이기 때문이다. 이미 있는 것을 뭘 더 가지라 말할 게 있겠나. 


당신이 스스로가 무엇을 갖고 있으며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차리길 바란다. 

나는 매주 교회를 간다. 그곳에서는 젊은 청년들이 뛰며 찬양을 하는데, 매주 그 어떤 뜨거운 무대보다 멋진 무대를 감상하고 있다. 그것도 무료로.

그들은 사랑이라는 땔감으로 자신의 영혼을 활활 불타오르게 만든다. 나는 그들을 존경하며 사랑하고 애착한다. 나의 덕질은 현재 진행형이다.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은 예술가가 아니다. 다만 당신이 정말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이유만으로도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면

당신은 그 누구보다 괜찮은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대여 너무 오랫동안 멀리서 언제 떠오를지 모르는 해돋이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당신의 삶이 이미 여기서 찬란히 빛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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