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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터뷸런스 May 23. 2018

찌질이는 자기가 찌질 이인 줄 모른다.

나는 나의 찌질함을 발견하는 순간들이 너무 감사하다.

왜냐면, 개선이 불가능한 구제불능의 완벽한 찌질이는 자신의 찌질함을 아무리 봐도 이게 찌질한건지 아닌지 분간을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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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나는 누군가의 생일 때 케이크 쿠폰 하나라도 챙겨서 카톡으로 보내줬는데, 조금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상대는 내 생일 때 아무것도 안 보냈더라. 뭐 좋다 돈 없으면 그럴 수도 있으니. 그런데 심지어 축하인사 한마디도 없었다. 

뭐 사람이 바쁘다 보면 그럴 수 있겠지 싶었는데 내심 억울했다. 내 성의가 무시당한 것 같기도 하고.

근데 그걸로 너무 오래 담아두면 찌질한거고,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건 안찌질한거라는 생각이 들자

빨리 잊기로 했다. 


그냥 그런 식으로 발견되는 찌질함들에 대해 대수롭지 않아 하자고 노력하는 그 자체가 찌질이 근성을 벗어나는 중요한 과정이 아닐까 싶다. 물론 쩌들어 있는 찌질이 근성은 누구나 쉽게 변하지 않는다. 어쩌겠나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는걸.


중요한 건 ["나는" 안 그러면 되는 거다]  

그래도 지금까지 받고 입 싹 닫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무조건 받으면 그대로 돌려주거나 1.5배 정도로 돌려줬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는 두세 배로 돌려주자는 주의다. 

성의가 담긴 성의는 결국 나에게 득이 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수가 나오면 변명하지 않고 무조건 사과한다. 이게 내가 찌질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나만의 전략이다. 

아무런 실수도 하지 않는 게 쿨한 게 아니다. 실수를 해도 빠르게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한 뒤에 나 역시 그런 실수를 하지 않는 게 진짜 쿨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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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자. 진짜 찌질이들은 자기가 찌질한지 아예, 철저히, 완벽하게 모른다.

그래도 탈 찌질이들은 자신이 가진 찌질함을 부끄러워할 줄 안다. 그래서 나도 항상 내 찌질함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려 노력한다.

그리고 찌질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찌질하면 결국 내가 손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지나치게 계산적인 사람들을 보고 찌질하다고 이야기한다. 

이유인즉슨, 누구나 대가 없는 배려에 대해 가장 큰 감동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감동은 나에 대한 선행으로 이어진다.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나쁜 행동과 좋은 행동은 

모두 순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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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인간관계의 생성은 탈 찌질을 밑바탕으로 한다. "난 왜 주변에 좋은 친구가 없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스스로가 어떤지를 잘 들여다보면 답이 있다. 


간혹 무심한 친구들 때문에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여유가 있다면 매력적인 사람들에게는 있는대로 퍼줘도 좋다.

최소 그렇게 퍼준 10명 중 두세 명은 당신이 준 것을 몇 배로 갚아줄 테니. 

그럼 다른데서 손해 본 게 메꿔지고, 그 관계는 더 돈독해진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그런 사람들 만나서 감동받으며 살아보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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