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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터뷸런스 Jun 08. 2018

탈 코르셋? 탈 억압과 강요.

최근 탈코르셋 운동에 대해 말이 많다. 


결론은 외모가 예쁜 사람이나 잘 꾸민 사람은 그것대로 칭찬해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꼭 그 사람들처럼 꾸미거나 따라 하란 식의 조언, 강요 따위를 하지 않으면 된다.

개념이 조금만 있다면 "이렇게 하는 게 남자들이 좋아하는데 넌 왜 안 하냐" "화장 좀 더 진하게 하고 다녀라" 따위의 말들을 하지 않을 수 있다.


마치 식물들 중에 빨간 장미가 제일 예쁘니 모든 식물들에게 장미처럼 잎을 더 붙이고 색을 빨갛게 염색하라는 꼴이다. 향이 좋은 식물도 있고, 줄기가 예쁜 종자도 있으며, 꽃을 피우지 않고 변함없는 모습을 사시사철 유지하는 식물도 존재한다.

이래저래 모두 누군가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매력을 갖고 있으니 그것들 나름대로의 매력을 인정해주면 그만이다.


사람들은 배려와 존중이 중요한지 알면서도 정작 내 말을 듣는 상대의 기분은 생각하지 않는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라는 말은 오해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런 말은 그냥 안 하면 된다.


단, 강요와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탈코르셋 운동은 정합하나

타인의 꾸미는 행위 자체를 깎아내려선 안된다. 날씬해지거나 예뻐지고자 하는것은 또 하나의 선택이자 취하고자 하는 형태일 뿐이다.  그런 개인의 판단까지도 남자들의 필요에 끌려가는 무지몽매한 여성의 모습이라는 발언은 잘못됐다.


본질이 호도되어선 안된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게 다르기 때문이다. 

남자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게 죄인가? 그렇게 해서 본인이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잘살면 그게 그 사람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된 행복인 거다.

모든 여자가 꼭 남자에게 잘 보여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본인이 원해서 하는 것까지 욕하거나 막을 이유는 전혀 없다는 거다.


개인의 선택을 좌지우지해서는 안된다. 마치 설리가 노브라로 티셔츠만 입고 다닐 때 욕하던 사람들만큼 병신 같은 게 없던 것처럼. 자기가 뭘 할지는 자기가 결정하는 거다. 

피해만 주는 게 아니라면 어떤 부분에서도 욕할 게 없다. "알아서" 하는 거다. 

매일 아침 회사에 풀메로 출근을 하든, 민낯으로 출근을 하든 남이 뭐라 말할 게 없다.


애초에 잘 꾸미는 사람은 남자에게만 잘 보이기 위해 하는 게 아니다. 여자에게도 잘 보이고 싶고, 자신 스스로 잘 단장한 상태로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것의 만족감을 느껴서이기도 하다. 이유는 다양하다.


타인의 강요와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형태의 탈코르셋 운동은 지지하나,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하지 않거나 무관심한 여성들을 무식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또 하나의 코르셋을 누군가에게 씌우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문제에 해당되지 않거나 자유로운 사람들은 당연히 무신경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문제는 강요나 억압, 표현의 문제다. 남녀 갈려서 싸울 일도 아니고 그냥 서로 말이나 행동만 조심하면 되는 부분이다. 

외모에 우선순위를 두는 여자나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 자체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이걸 헷갈리면 안 된다.


예쁜 게 최고다 라는 기준을 그 틀에서 벗어난 사람에게도 강요하는 사람이나 사회인식이 문제인 거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선 안된다.


서로의 행복점은 다르다. 그러니 타인의 행복점에 왈가왈부할 것도 없고, 그 행복점을 타인에게 강요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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