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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터뷸런스 Aug 06. 2018

멋있는 것만 사면 당신은 멋없어진다.

최근 가수 CL의 근황 사진이 논란이다. 많이 찌긴 했는데 댓글이 걱정반 오지랖 반이다.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관대하면서 타인에게는 냉정하다. 기준과 잣대는 항상 사회가 원하는 이상향을 따른다.

그래 놓고 정작 본인들은 그 기준과 잣대에서 한참 거리가 멀다. 


가수 에일리는 예전에 몸무게를 49KG 대로 유지하였단다. 그 덕에 노래 부를 때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 키에 49면 거의 뼈랑 가죽만 있는 수준이다.

아마 당시 소속된 엔터에서 날씬한 몸상태를 유지하라고 압박을 했을 거다. 가수에게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한 요건을

충족시켜줘도 모자랄 판에, 소리를 내야 하는 몸의 크기를 줄이라고 했을 테니 수준이 알만하다.

마치 5톤 트럭에 700C 자전거 바퀴 네 짝 끼워놓고 전력 질주하라는 꼴이다. 


요즘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인력을 활용한 콘텐츠 제작 시 비주얼적 상품성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 

이제 학원에서도 선생님은 비슷한 스펙인 경우 더 예쁜 사람을 뽑는다. 뭔가 잘못된 게 확실하다.

교육의 질이 선생님의 비주얼과 어떤 인과관계가 있을까. 내가 학생이라면 선생님이 너무 예쁜 경우 더 공부가 안될 것 같은데 말이다.


예쁘고 잘생긴 것을 좋아하는 건 문제가 아니다.  원래 인간은 그런 걸 가장 좋아한다. 하지만 소비하는 콘텐츠들의 요건을 따질 때 비주얼이 1순위가 되는 건 문제가 있다.


음악이나 옷이 대표적이다. 비주얼이 중요시되니 가수는 노래를 못 부르고, 옷들은 디자인이 이쁜데 내구성이 엉망이다. 그런데 이건 제작자의 문제가 아니라 소비자의 문제라는 거다. 

노래 좀 못 불러도 잘생기고 예쁘면 오토튠 범벅된 음원도 마구 들어주고, 옷이 몇 번 입고 뜯어지더라도 요즘 유행하는 디자인이면 사서 입어주는 잘못된 소비행태가 전반적인 시장의 질을 떨어트린다. 


본질에 집중하지 않아도 예쁘고 잘생기면 사람들이 사주기 때문이다. 

나도 물론 예쁘고 잘생긴 사람 좋아한다. 하지만 사람을 보는 데 있어서 첫 번째 가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만약 내가 그런 식으로 만 사람을 골라 사귄다면 내 곁에는 껍데기만 화려한 빈 깡통들이 즐비할 텐데, 그게 결국 누구에게 손해겠는가.


사회 전반에 퍼진 외모지상주의는 모든 콘텐츠 퀄리티의 하향평준화를 가져온다.

우리가 잘생기고 예쁜 것만 좋아하다 보면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재화의 중요도는 외형에 국한되며

당연히 지불하는 대가만큼의 효용을 얻을 수 없게 된다.


모든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바람둥이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바람둥이는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많다.

외형에만 치중하는 세태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 모두의 손실로 직결되기 마련이다.


당신이 잘생기고, 예쁘며, 멋있다는 이유만으로 사주는 그 무언가가,  비주얼이 부족해도 본질에 충실한 좋은 재화들의 앞길을 막는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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