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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터뷸런스 Aug 31. 2018

어쩌라고

나는 내 외모의 수준을 가지고 여자 친구와 농담을 한다. 나는 잘생기지 않았는데, 너는 예뻐서 좋겠다! 는 식의 농담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하나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난 안 잘생겼고 여자 친구는 예쁘다.

이런 농담이 가능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난 내가 잘생기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납득하고 인정한다.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잘생겼다고 생각했다면 이런 농담 따위가 가능할 리 없다.

둘째, 내게 외모 말고 다른 차별점이 있음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나처럼 문화예술 전반에 얕고 넓게 관심이 많은 사람을 별로 못 봤다. 내 관심의 스펙트럼은 흔하지 않은 편이다. 


누구나 평가를 당하면 기분이 나쁘다. 다만 스스로의 상태가 인정이 되는 것과, 나 나름대로의 지적 영역을 확보함은 부정적 평가들에서 자유할 수 있음을 선사한다. 

타인의 말에 자꾸 끌려다니는 이유는 자존감 결정의 주도권을 스스로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내가 타인의 의견을 중요시할 것인지, 내가 자각하는 나를 중요시할 것인지. 

특히 자의에 의해 선택하지 않은 요건들은 더더욱 인정해버리면 편하다. 생긴 거 내가 정한 거 아니다. 태어나니 이런 건데 어쩔 것인가. 

누가 나보고 "너 돈 없잖아!"라고 해도 "맞아 사실이야!"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할 수 있다. 부자가 아닌 것은 내가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좋은 부모님을 뒀으니 전혀 하자될 건 없다.


상처를 받는 가장 큰 원인은 결국 나 자신에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가 올 때 젖는 이유는 우산을 챙기지 않은 내 탓이지 하늘의 탓을 해봐야 아무 소용없는 것과 비슷하다. 

남을 공격하는 사람은 어디에든 있다. 나를 욕한 그놈에게 큰 책임이 있지만, 그런 상황에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고 세상을 너무 나이브하게만 바라본 내 책임도 일정 부분 있다고 봐야 한다. 


무슨 공격을 받아도 내가 인정하면 0의 대미지를 입는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뚱뚱하든, 피부가 안 좋든, 돈이 없든, 직업이 안 좋든 그런 건 하등 중요치 않다. 내가 나를 어떻게 볼 것인지가 더 문제다. 


못생겼어도 비싼 돈을 주고 성형하는 사람은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거다. 

그래서 난 성형에 부정적이지 않은 편이다. 못생겼는데 그것마저도 사랑하라고 말하는 게 더 폭력적이다. 

우리가 무인도에 사는 게 아니라면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회화 과정에서 외모로 평가받는 일은 너무나 흔한 일이다. 


수술의 고통과 비용을 감내하는 게 쉬울 것 같은가? 여자들의 성형에 손가락질하는 놈은 자기 자신에게 그만큼 투자해보지 않은 놈들이 대다수다. 

입으로 떠들어대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고통과 비용을 감내하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그만큼 자기 삶에 대한 애착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것도 일종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방어 행동이다. 난 멋있다고 본다.


투자를 하든 뭘 하든 결국 내가 날 사랑해야 가능하다. 그래야 남에게 없는 차별화된 무언가를 갖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게 된다.


삶은 현재 내게 없는 것을 얻기 위해 진행되는 몸부림이다. 직접 선택하지 않아 받게 되는 말들은 쿨하게 인정하고,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꾸준히 다가가기 위해 애를 쓰면 될 일이다. 


어차피 인생은 불공평하다. 원래 불공평한 거라는 게 인정이 안되면 남을 욕하다가 인생 종칠뿐이다. 

그래서 인정할 건 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죽도록 하면 그만이다.  


ㅡㅡ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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