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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터뷸런스 Oct 26. 2018

나는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천천히 들여다볼 여유가 없으면 결국 아무것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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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툼이 일어났을 때 논리를 먼저 찾는다. 누가 더 얼마나 잘못했고 그래서 누구에게 책임이 더 많이 있냐 따위의

책임소재를 나누는 일을 한다. 물론 그런 대처도 필요는 하다. 

그런데 대개 그 일을 불러일으킨 원인제공자는 되려 상처를 받는 쪽이었던 경우가 많다.

말싸움이 격 해졌을 때 상대에게서 험한 말이 튀어나와서 상처를 받지만, 잘 생각해보면 나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생겨난 경우가 

대다수를 차지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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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게임중독자 시절 아버지는 화도 많이 내시고 나에게 질타의 말을 많이 하셨었다.

나는 아버지란 사람이 왜 내게 저런 부정적인 말만을 많이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결국 내가 중독된 것들 때문에

생겨난 일이라는 걸 인지할 수 있었던 건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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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격해진 사람은 거울을 보지 않는다. 오직 증오를 뻗칠 상대만 바라보며 그의 말과 행동에만 집착한다.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지?" 라며 씩씩대며 "그런데 나는 뭘 잘못했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싸움은 길어지고 질척거려진다. 

오직 잘못은 당신에게만 있다는 결론을 내린 뒤기 때문이다. 박수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거다.

자동차 사고도 충돌에 있어서 일방은 거의 없다. 대개 책임 소재가 나눠지는 쌍방이다.

사람 간에도 거의 그렇다. 애초에 이 모든 일의 원인이 쌍방이라는 것을 간과한 감정대립은 분열 외에 어떠한 결과도 가져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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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는 화가 나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내 감정을 가라앉히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감정이 잔뜩 올라온 상태에서 나오는 말들은 내 과실만 잔뜩 키울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다.

시냇가를 마구 헤집어서 피어오는 진흙탕처럼, 거기서 해답을 찾으려면 흙탕물이 가라앉힐 때까지

기다리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돌파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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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은 정말 굉장한 문구다. 거의 모든 싸움의 증폭은 돌아가지 않아서 생긴다.

내가 원하는 결론에 도출하기 위해 상대의 영역을 짓밟기 때문이다. 그 영역의 이름은 "자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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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의 검투사들은 승자도 패자도 없다. 거기서는 패자는 죽음을 맞이하고 승자는 또 다른 싸움을 기다려야 해서다.

되도록이면 감정의 폭발이라는 콜로세움에서 나오기를 바란다.

거기 있으면 언젠가 죽는다. 상대가 누구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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