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쓸데없이 말이 많은 이유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거나 속으로 갈무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머릿속에 떠도는 난잡한 정보들에 대해 추스르는 방법을 모르면
어찌할 줄 몰라 입으로 토해내는 것만 할 줄 알게 된다.
흔히 이런 말을 배설이라고 한다.
들어도 아무 의미 없고 감동도, 교훈도 없는 그런 말.
대화를 해도 여운이 남는 대화가 있고 그렇지 않은 대화가 있다.
좋은 대화는 나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대화다.
가령 나쁜 대화는 이런 식이다.
"A는 피부가 안 좋은걸 보니 자기 관리를 못하고,
옷을 못 입는 걸 보니 센스가 너무 없어서 완전 별로야"
이렇게 결론을 내린 채 진행되는 대화는 대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증폭시킨다.
다른 어떠한 가능성들에 대해서도 완전히 배제하겠다는 동의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신중한 사람은 특정 명제의 결론을 도출함 보다, 그 명제가 나에게 어떠한 이미지로 다가오는가에 좀 더
포커싱을 하게 된다.
"A는 피부가 안 좋은 걸 보니 소화기관에 문제가 있거나, 호르몬 분비가 과다해서 일지도 모르니
스트레스를 많이 안 받게끔 도와줘야겠군"
이런 식의 대화는 어떠한 결론 도출도 없으나, 협력을 위한 좋은 가정을 우선하는 대화법이다.
결국 내가 일일이 파악할 수 없는 전제조건들에 대해 섣불리 정의하지 않음은
당신의 신중함을 향상한다.
수많은 정보들이 당신을 향해 쏟아진다. 누가 무엇을 했고 어디서 뭘 샀으며 따위의 가십거리들이
별건 아닌 것 같아도 그대로 두면 당신의 성향을 결정짓고 투머치 토커로 만든다.
구멍 난 바가지에서 물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결국 지나치게 말이 많다는 건 그가 자기 자신에게 생긴 여러 허점들을 추스르는 데는
관심이 없고 생각을 필터링하지 않은 채 배설하는 데에만 여념이 없다는 것과 같다.
많이 듣고 적게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사람들의 말에 휩싸여 나중에는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
분별하기 힘든 상태까지도 간다.
그런 사람들이 주로 물질적인 수단들에 의지한다. 과도한 쇼핑이나, 절제가 없는 음주, 무분별한 이성관계 등.
천명이 한 번씩 하는 말보다, 한 명이 천 번 되새길 수 있는 말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말들은 당신을 배설쟁이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조용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