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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행 복

by 터뷸런스

사람은 나로 인해 누군가가 실망하는 모습을 봐야만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당신이 최대로 효도하고 싶어 지는 순간은 스스로가 불효자라고 인지한 순간이다.

살을 정말 빼야겠다 다짐했던 때는 소개팅 시작한 지 2시간도 안돼 상대방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는

굴욕을 당했던 순간이다.


미리 준비하거나 모든 것을 예비하여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못하는 것이 우리 존재의 속성과 맞닿아있다. 결국 배가 고파야 먹을 것을 찾고 싶어 지는 거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달으려면 나로 인해 누군가가 실망감을 느끼고 그것을 다시 나에게 표출해야만 한다.

이 과정의 반복만이 나를 거듭나게 만든다.

그래서 삶은 고달프다. 늘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야 하지만 누군가의 섭섭함을 안고 살아야만 비로소 내가 생각하는 삶에 근접해가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랑은 행복 강박증에 걸린 사람이다.

본인 기준에서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모든 순간을 불행으로 치환해버린다.

큰 실수다. 나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매일매일 체감하며 갱신하는 다짐이, 내가 생각하는

온전한 나를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그래서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나를 만들지 않으면 내가 아닌 누군가로 살아야 하는 삶이 된다.

이 또한 불행하다.

당신에게 찾아오는 일상의 즐거움은 고속도로에서 휴게소를 들르는 빈도와 비슷하다.

휴게소에 들러 이것저것 먹는 순간은 너무 즐겁지만 다시 차에 오르면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시작된다.


행복 강박증에 걸린 사람은 어디에도 가지 않고 휴게소에서만 머무르려는 사람이다.

행선지가 없고 휴게소에서만 머무르는 걸인이나 다를 바 없다.


삶은 원래 그런 거다. 지겹고 지루하며 재미없지만 그래도 행선지를 향해 가야만 한다. 인생의 의미라는 건 누가 주는 게 아니라 혼자 이것저것 하다가 발견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SNS가 속삭이는 행복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매장 진열대에 전시된 것처럼 상품화된 행복들 투성이다.

고통이 행복이 될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이유는, 당신이 오늘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일을 사는 사람이라며 가진 것을 모두 낭비하는 사람은, 내일 다가올 [고통]이라는 이름의 오늘을 살아야 한다.

솔직히 내 기준에서 욜로는 정말 멍청한 소리다. 결국 사람에게 주어진 행복의 파이는 정해져 있는데, 그걸 미리 당겨서 지금 다 쓰자는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다.


스스로를 너무 냉혹하게 다룰 필요도 없지만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다 질러버리는 건 정말 위험하다.

사실 행복이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다만 언젠간 마주할 행복이라면 그래도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한 방향에 의해 맞이할 행복이었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좋은 일이 생겨야 행복이고 나쁜 일이 생기면 불행인 사람의 삶은 불행하다.

내가 원하는 행복이라는 곳으로 도착하기 위해 오늘 맞이하는 불행은 꼭 필요한 과정이며, 사실은 그마저도 행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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