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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 싶은 것, 받고 싶은 것.

by 터뷸런스

나이를 먹어가며 느끼는 것들이 많다.


좋은 의도가 가득한 여러 말들을 섣불리 건네는 것보다는, 신중한 고민 끝에 나온 간결한 말들이 관계에도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더라.


타인의 보이는 면들을 보며 순간적으로 생각난 경솔한 충고나 조언보다는 그의 삶을 넓게 보고 말해도 되는 타이밍을 기다림이 중요했다.

누구나 좋은 조언을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그 조언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때는 사람마다 모두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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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내 의도가 중요했다.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보다는 내가 세운 정의나 공의가 담긴 말을 전달하는 것 자체가 더 중요했다.

지금은 상대가 내 말을 납득 가능한 때를 기다리며 좀 더 많은 뜻이 함축된 간결한 사랑의 메시지가 전달되기를 원한다.


사람들은 스스로가 어떤 말을 하는지 자체를 더 중요시할 때가 많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사람이 나타나면 분노한다. 사실 어떤 현상과 그로 인한 여러 파급효과보다 중요한 건 나와 관계를 맺는 그 사람이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가 내 사랑의 말을 온전히 혹은 순수하게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전달되지 못한다면.

혹은 아무리 대단한 것이라도 그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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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무리 대단한 학문적 깨달음과 이치를 알더라도 관계성을 짓밟는 전달 방식을 필요로 한다면 그 모든 깨달음은 허공에 비산 된다.

마치 방사능에 잔뜩 노출된 수저 위에 산삼을 얹어주는 것과 비슷하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무엇을 통해 전달되느냐는 메시지의 유용성을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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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확고한 철학과 지혜를 믿으며 그 진리를 누군가도 깨우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섣불리 전달되는 충고나 조언 따위를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중요한 건 소통 가능한 관계성의 창출이다.

무엇을 고려해야 할지, 상대의 감정선은 어떤 위치에 있는지, 그래서 내가 진정으로 상대방이 어떻게 되길 원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내가 그를 향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좀 더 다듬어진 정제된 사랑의 말이 전달될 확률이 높다.


말을 하고자 함에 있어서 우선되어야 할 것은 화자의 무조건적 수용이 아닌, 청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깊이와 녹아든 진심의 온도이다.

때로는 백 마디의 말보다 한 번의 토닥거림이 더 강렬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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