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바라보는 자의 고찰]
맛집을 가면 세 시간이 행복하고 쇼핑을 하면 반나절이 기쁘며 여행을 가면 그 기간만큼만 행복하다.
내가 당장 필요로 하는 것들의 느낌을 100이라고 치면 실제로 그 필요를 충족시켰을 때 주는 만족감은 30, 기껏해야 50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어떤 욕망 해소의 행위를 하더라도 비슷하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 줄 것이라 예상하는 만족감을 실제보다 훨씬 높게 잡는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건 얼마만큼을 원할 것인지에 대해 냉정하게 분별할만한 기준의 확보와 그것을 이끌어갈 자제심이다.
대개 이 자제심이 발휘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보상심리이다.
물론 당신이 10 시간 내외로 개고생을 하며 일을 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아야만 직성에 풀린다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마구잡이로 내질러서 결국 피 보는 건 암울해지는 내 미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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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우 내 필요를 제어하는 방식이 있다.
나에게는 정확히 25켤레의 신발이 있다.
이걸 왜 세고 있냐 하면, 25 켤레가 되는 순간부터 뭐가 나오더라도 더 이상 구매가 불가하다고 스스로 명시하고 제일 안 신는 한 녀석을 골라 중고로 되팔기 때문이다.
비슷하게는 한 달에 3 치킨 이상 금지, 5 쇼핑 이상 금지 같은 조약들이 있다.
[ 나는 내가 지킬 수 있는 욕망의 한계치를 숫자로 명시하고 늘 고려한다. ]
인간은 생각보다 단순해서 명문화되거나 수치화되지 않는 지표를 따라가지 않는다.
제일 실패가 높은 방식이 "흡연하지 말자" "낭비하지 말자" 같은 추상적인 계획이다.
이보다 "하루에 다섯 개비" "하루에 2만 원 이상 사용금지" 같은 계획들은 훨씬 성공 확률이 높다.
사실 돈이 없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그때그때 얼마든지 더 지르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는 건 내가 내 욕망의 바운더리가 끝없이 확장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수많은 어른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을 보았다.
도박에 빠져서 20년 적금을 날리신 분도 봤고, 불륜을 저질러 가정을 박살 내는 것도 봤다.
그들은 항상 자신을 과신했다고 생각한다. 정확히는 자신이 가진 욕망을 우습게 본 결과다. 그들에게는 기준이라는 게 없었다.
그저 "이 정도는 괜찮다" 고 말했을 뿐.
우리 모두 다 같이 위인처럼 살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게 살기에는 너무 챙겨야 할 것도 많고 버리기 힘든 것들도 많다. 서울살이가 어지간히 거지 같아야 말이지.
다만 나 자신을 제어할만한 최소한의 기준과 방식이라는 게 갖춰져야, 삶을 불확실성이 가득한 미래 속으로 던져놓는 최악은 면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