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중요, 나의 중요.

by 터뷸런스

남이 뭘 하는지가 중요해지면, 정작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들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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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스타만 켜봐도 단조롭다. 맛집을 가고, 여행을 가고, 예쁜 카페를 가는 등의 모습들은

굉장히 흔하다.

다만 그곳에 갔다 온 이후 그 정도의 시간과 돈을 쓸 만큼의 충분한 감동이 남아 있던가? 나는 대부분 그렇지 않았다.

남들이 하는 것을 답습할 때, 거기서 오는 피드백은 스트레스를 모두 해소할 만큼 충분치 않더라.

그런 일상이 반복되다 보면 마치 또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그렇게 해야만 하는 삶을 사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굉장히 포커싱이 되어 있었다. 뭐라도 해야 내가 즐겁든 흥미롭든 할 테니까.

그런데 지금은 '내가' 어떤 사람이냐에 훨씬 포커싱이 되어 있다.


가령 예전에는 전시회라던지 사진전에 가면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재미도 없고, 이런 걸 왜 보는지 1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부터는 한 개인의 예술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지다 보니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 색을 정말 특이하게 섞어서 쓰네? ' 이런 소재는 왜 여기에 더해진 거지? ' 이 모양은 뭘 반영한 걸까?'


카페를 가는 것도 그렇다. 얼마 전 블루보틀 커피가 성수동에 오픈했고 오픈전에 사람들이 몰리는걸 보고서 상당수의 사람들은 손가락질했다. 저럴만한 가치가 있느냐고.

뭘 착각하나 본데, 사람들은 "경험"이나 "이미지"를 사러 가는 거다. 단순히 커피 한잔 먹으러만 간 게 아니라는 거다. 일본에 가서 블루보틀의 깔끔한 매장과 직원들의 서비스, 향 좋은 커피 한잔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몇 시간 기다리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닐 수밖에 없다.

결국 타인들은 항상 경험이 부재하니, 이해가 생길 수 없는 거다.


이렇듯 내가 얼마나 알고 이해하냐가 정해지면 그 범주의 폭이 타인이나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정립된다.

아는 만큼 보이는 거다. 들리는 만큼 들리는 거다.

커피가 그저 남들 다 마시니까 대충 마시는 사람과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를 찾아서 마시는 사람은 다르다.

전자는 아무거나 상관없는 거고, 후자는 자신의 관심으로 인해 취향이 확고한 경우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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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다하는 아무거나"가 나의 취향이 되면 그때부터 정말 괴로워진다. 돈과 시간은 그들만큼 쓰는데 거기서 받는 효용은 딱히 크지 않기 때문이다.


난 혼자서도 너무 재밌다. 할게 너무 많다. 시간이 없어서 힘들 정도다. 글 쓰는데만 몇 시간이 걸리는데 그것조차 너무 시간이 빨리 간다. 내 기호와 취향이 확고해지면 좋은 점은, 인풋 대비 아웃풋이 점점 커진다는 점이다.

물론 등단을 할 목표 정도는 없지만 글쓰기 자체에서 느껴지는 희열이 있다. 그래서 글 쓰는데 아무런 관심 없는 누군가와 내가 다를 수밖에 없는 거다.


당신의 주말은 소중하다. 겨우 이틀이다. 그 이틀간 해야 할 것들을 하고 당신의 스트레스를 충분히 경감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 주말만을 기다리는 삶은 뭔가 애달프긴 하지만, 그래도 주말을 기다려야만 한다면

좀 더 잘 보낼만한 스킬이 필요할 때가 되었다.


관심이 있는 분야가 있다면 이리저리 접근방식도 다르게 가져보고, 관련된 책도 찾아보고 그러다 보면 똑같은 시간을 쏟아도 더 많은 감흥이 주어지리라 믿는다.

모든 타인의 중요가 나의 중요가 될 수는 없다. 진정 스스로 보고 싶은 것을 찾아보고, 듣고 싶은 것을 직접 찾아듣길 바라본다. 오래도록 정성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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