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노력이 모두 우스워보인다면 자신이 가장 우습다는 걸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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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여자 연예인의 뉴스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성형으로 미인이 된 케이스인데 항상 댓글에는 "현대의학의 최대 수혜자" "성형 아니었으면 어쩔 뻔?" 이런 댓글이 달리는 분이셨다.
그 댓글러들의 뉘앙스는 한결같이 '넌 별로 대단하지 않아'를 주창한다.
나는 성형으로 예뻐진 사람들을 존경하고 인정한다.
수술은 진짜 아프고 괴롭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성형을 해본건 아니고, 교정을 위해 사랑니 네 개를 동시에 빼본 적이 있다(작은 물혹도 같이 제거했었다) 전신 마취하고 뽑았지만 며칠은 생지옥을 경험했고, 그 뒤로 성형수술을 받아본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성형은 돈도 많이 든다. 조금 드는 것도 아니고 정말 많이 든다.
그러니 그 많은 돈을 쓰고 엄청난 고통도 감내해서 예뻐진 사람에게 도대체 어떻게 손가락질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수술과 돈을 버는 일의 고통을 잘 알기에 악플을 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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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이 해보지 않은 영역에 대해 타자 몇 번으로 공들여 쌓은 결과물을 과소평가해버린다.
자신이 이루어 놓은 것들에 대해 비난하면 돌고래 소리를 내며 반박할 거면서.
한때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차피 말한다고 알아줄 것도 아니고 남에게 자랑할 대단한 것도 아니라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어느새 나를 날라리 개백수 취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우연히 알게 됐었다. 듣는 순간 머리가 띵- 해지는 기분이 들더라.
그래서 그때부턴 내가 어떤 노력으로 이 자리에 오게 됐고 어떤 일을 해왔는지 정도는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제 아무리 스스로 대단한 것이라 한들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보이는 대로 대강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모든 객체는 자신이 주체가 되었을 때의 상황을 더 중요시하게 여긴다. 이건 당연하다.
다만 자신이 주체가 되었을 때 다른 객체가 감수한 어려움이나 노력의 크기들을 쉽게 평가절하해버리는 건 꽤나 곤란하다.
어떤 대상을 원래의 가치에 가깝게 판단하지 못하면 놓치는 것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마치 주식으로 따지면 저평가 우량주를 보냐 못 보냐의 느낌이랄까.
제대로 평가하면 내 안목이 올라가고 결론적으론 내게 경제적으로 득이 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인맥을 많이 만들면 손해 볼 게 없듯이.
쉽게 말하는 사람들은 공감 능력의 부재로 보인다. 자신의 활동영역에서 무언가를 제대로 달성해보지 않은 사람은 타인의 노력에 대해서도 무감각하다.
경험이 없으니 공감도 안된다. 원래의 가치보다 평가 절하해버리는 게 일상이 된 사람들은 지금도 연예인들의 기사에 가서 열심히 악플을 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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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노력과 정성을 간접적으로라도 공감하고 그 가치에 맞게 인정해줄 만한 경험과 통찰력이 필요하다.
그게 안되면 항상 타인의 부족한 면만 뚫어지게 관찰할 테고, 불편 거리만 더 늘어날 테니까.
개인적으로는 열개의 부정보다 하나의 긍정이 좀 더 삶을 밝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어떤 인생이든 명암이 있다고는 하지만 마냥 어두운 것보단 조금이라도 밝은 게 더 좋지 않은가.
타인의 노력을 긍정으로 비춰볼 수 있는 사람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려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리고 사실 어떤 연예인이 성형을 했든 안 했든, 스폰서가 있든 없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사물을 굳이 애써서 비아냥 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여유 있는 마음이 나의 아름다움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생각과 말은 내 행동으로 투영된다. 그리고 그 행동이 나 자신이다.
길가의 벽 하나를 봐도 미장이가 어떤 노력을 했었을 것인지 동시에 생각할 수 있다면 당신은 꽤나 건강한 삶의 태도와 안목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사물과 그 이면의 노력들을 동시에 볼 줄 아는 것은 궁극의 객관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