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이 많아도 관계가 얄팍하다면, 소수의 친한 친구를 둔 것보다 오히려 외로울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회적 고독은 친구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보는 양적 평가이고, 감정적 고독은 친구와 얼마나 가까운지를 평가한 질적 평가라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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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관계에 있어 양적인 면보다는 질적인 면이 정신 건강과 더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는 의미다.
양적인 부분과 질적인 부분만 따로 놓고 본다면 수적으로 친구가 많은 것보다는 소수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더 좋은 정신 상태를 보인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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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다 질이라는 게 이번 조사로 확실해졌다. 생각해보면 결혼 전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과 교류했음에도 거기서 느껴지는 정신적, 감정적 공백이 분명 있었다.
지금은 만나는 친구만 만나고 대부분의 시간을 와이프와 보내는데도 그런 공백이 거의 없다.
어떤 관계가 내 삶의 총량을 차지하는지가 감정의 풍요로움을 결정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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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타입의 사람은 혼자 있어도 딱히 상관없어하는 타입의 사람이다.
반대로 함께해야만 즐거워하는 사람은 크게 선호하지 않는다. 고갈된 감정의 폭을 메꿔줘야 할
큰 짐을 내가 져야 하기 때문이다.
자생할 줄 아는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법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람은 타인과의 접점을
찾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한다.
집에 혼자 있어도 오직 SNS 외에 하는 게 없는 사람은 혼자 있는 게 아니다. 어떻게든 주위를 두리번거려서 자신의 감정적 빈곤을 해소해줄 무언가와 지속적으로 연관되려는 속성이다.
누구도 자신의 안되어지는 부분들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걸 편견 없이 들어줄 만한 사람이 부족해서다.
내 부족한 부분들을 터놓고 이야기하더라도 편견 없이 들어줄 사람이 나타나면 그때부터 삶은 풍요로워지기 시작한다.
내 문제가 뭔지 스스로 확인해서 능동적으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삶의 형태를 갖추기 때문이다.
반면 늘 포장하고 괜찮은 이야기만 해야 하는 친구들만 즐비하다면 거기서부터 외로움은 배로 증폭된다.
그들 역시 자신의 잘 지내는 이야기만 하는 사람 들이라서다.
결국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 만나지만 진짜 자신을 꺼내놓지 못한다.
서로 행복하고 잘되는 모습만 보여주다 보면 그 관계가 얼마나 얄팍한지 아주 뒤늦게 깨닫기 시작한다.
그래서 외로움에 시달리지 않고 자족하는 방법은, 겸손한 사람들을 주위에 많이 두는 거다.
서로 간의 이야기를 경청해줄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는 누구나 서로 부족하고 연약하기에 서로가 보듬어주며 삶의 방식을 끊임없이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
상대가 깨닫지 못하는 부분을 내가 알려줄 수도 있고, 상대도 객관적인 나를 통해 확인이 될 때 삶의 큰 틀은 변화하기 시작된다.
결국 혼자서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객관화하여 볼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상호보완의 존재다. 그래서 결혼은 중요하다. 결혼을 통해 노골적인 내면의 모습이 서로 확인될 수 있어서다.
요즘은 연애만 하다 죽을 거라는 말을 듣기는 쉽다. 하지만 연애는 결혼을 해서 얻을 수 있는 안정감과 상호보완성을 절대 느낄 수 없다. 내가 그걸 요즘 강하게 느끼고 있다.
아무리 친구가 좋아도 가족을 대신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어떠한 틀에 나를 두느냐가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래서 삶의 중심에서 기둥처럼 받쳐줄 재목 (材木)으로 필요한 건 적당한 사이의 수많은 관계가 아니라,
나의 내면 깊은 곳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들어주고 보듬어줄 겸손으로 무장한 소수의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