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송 커플의 이혼으로 결혼의 필수 행복 조건은 외모도, 경제력도, 인기도 아님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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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결혼한 커플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일반적인 연인들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사실 위의 물질적 조건은 연애가 아닌 결혼하고서 더 중요하게 작용될만한 조건들이다. 그들은 그 조건들이 차고 넘쳤음에도 불구하고 이혼이라는 파국을 맞이했다.
최근의 연애 트렌드는 "누군가에게 어떻게 보이는 커플이 되느냐"이다.
키는 180은 되어야 하고, 전문직에, 준수한 외모와 건장한 체격은 있어야 훌륭한 결혼 배우자로 꼽힌단다.
이 조건만 따지면 나는 평생 홀로 늙어 죽어야 하지만 현명한 와이프님 덕에 결혼에 성공했다.
이런 조건들이 가장 중요해진 사람들의 문제는 그보다 더 중요한 요소들을 간과해버린다는 거다.
내가 꼽는 결혼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겸손이다. 겸손은 상대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기본자세이자 태도이다.
겸손하면 늘 익히고 배우려는 자세 때문에 당연히 머리도 똑똑하고 사회생활도 준수하게 할 수 밖에 없다.
이 겸손이 배제된 상황에서 가장 흔하게 발생되는 부부들의 이혼사유는 성격차이다.
그런데 이 성격차이라는 말은 되게 웃긴 말이다. 성격이 같은 사람이 애초부터 존재는 하는가?
사람은 모두 성격이 다르다. 비슷할 수 있어도 같지는 않다. 99개가 같고 1개가 달라도 성격은 다른 거다.
애초부터 서로 다르다는 걸 알고 시작했으면서 성격차이로 이혼한다는 건 발생될 차이에 대한 현실적인 예상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겸손함은 내 예상 밖의 행동과 말을 접했을 때 화가 나지 않게 만들어준다.
가령 예전 우리 집은 생각보다 지저분했다. 아버지가 워낙 아끼시는 분이라 집에 버리지 않고 쌓아둔 물건이 너무나 많았다.
그런 집에 30년 살았으니 내게 우리 집은 그냥 조금 지저분한 수준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결혼하고 보니 내가 많이 지저분하게 살았다는 걸 와이프의 청결 수준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다만 그녀는 내 위생관념에 화를 내기보다, 내 지난 살아온 배경들을 들어주고 이해해줬다.
그러고 나서 그녀가 보여준 모습은 꽤나 멋있었다. 내가 별거 아닌 청소와 설거지들을 할 때마다 극찬을 해주더라.
때로는 좀 민망해질 만큼 칭찬을 해주는데,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마구 샘솟았다.
칭찬은 돌고래도 춤추게 한다. 그녀의 칭찬 덕에 지난 몇 달간 장족의 발전을 이루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생관념이 좋아졌다.
만약 그녀에게 겸손함이 없었다면 아마 나에게 자신이 영위해왔던 위생관념을 강요했을 거다. 사실 내입장에서는 그렇게 해도 할 말은 없었을 거다. 이미 결혼은 했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겸손에서 비롯된 칭찬은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가져야 할 청결함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냈고 이제는 칭찬과 사랑의 말이 번져서 서로에게 좋은 방향으로 동화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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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목소리가 크고 논리 정연하게 말하는 게 센 거라고 생각한다.
실상 살아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게 하면 상대의 반감만 더 증폭시키고 사이만 더 나빠진다.
진짜 강함은 상대의 나약한 부분도 다독여줘서 함께 걷게 만드는 겸손함이다.
서로의 다름은 다름일 뿐이니, 그 안에서 절충할만한 선을 서로가 제시하며 조율해나가면 된다.
겸손이 없으면 절충도 없고 협상도 없다. 그저 내 선이 맞으니 그걸 따라오라고 서로 소리 지를 뿐이다.
모든 인간은 타인이 배려하는 "진실된 마음"에 감동될 때 상대를 위한 심정의 변화가 급격히 나타날 수 있다.
목줄에 강제로 끌려가는 개는 불행하다. 그렇게 아무리 오래도록 끌려다녀도 절대 행복해지지 않는다.
다만 목줄을 한채 목적지를 선택할 수 있는 배려를 하는 주인을 만나면 주인과 개가 모두 행복해진다.
때로는 서로의 방향대로 가고 싶을 때가 많을 거다.
다만 행선지가 "함께"라는 이름의 집임을 서로 인지한다면, 양보와 배려가 주는 감동으로 각자의 방향을 함께 수정해가는 것이 어렵지 않아 질 거라 확신한다.
내 현재의 수준을 뛰어넘으려는 의지의 발현은 서로 간의 겸손이 만났을 때만 가능한 일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