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을 못하는 이유는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다.
-
인간은 대체로 자신이 경험한 것을 그대로 수행한다. 선행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누군가에 의한 선행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다.
반대로, 필요 이상 불친절한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평소 타인의 불친절을 오래도록 받으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백화점을 가던 편의점을 가던 불친절한 직원을 만나면 오히려 밝게 인사해주고 나온다.
타인의 친절을 많이 경험해보지 못해서 그런 것이니 나라도 친절해주고 싶어서다.
-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적당한 칭찬이다. 없는 부분을 칭찬하는 건 가식이지만 있는 부분을 좀 더 디테일하게
표현해서 칭찬해주는 건 축복이다.
사람들이 칭찬에 인색한 이유는 받아본 적이 없어서다. 서로 하지 않으니 악순환이 반복된다.
지난번에도 언급했지만 지난 4개월간 30년 받아 본 칭찬보다 더 많은 칭찬을 와이프에게 받았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 칭찬하는 것이 체화가 되었고 누굴 만나도 자연스레 축복의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 내 모습이 발견되었다.
갑자기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과거 중세시대에는 아주 악독한 죄를 저지른 범죄자에게 시체와 함께 기둥에 묶어두는 형벌이 있었다.
시체는 썩어 들어가며 주위를 감염시킨다. 그래서 같이 묶여있던 살아있는 범죄자는 처참한 고통을 느끼며 죽어가게 된다.
조금 무서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만큼 주변의 영향력은 강력하다는 것의 반증이다.
예전에는 나라는 사람의 형태를 스스로 고착시켰다. '나는 원래 이래' '내가 그렇지 뭐' 정도로.
애초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주변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신이 설계해 놓았다.
현재 필요 이상으로 부정적이거나, 우울하거나, 어두운 감정이 내재된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 원해서 선택한 게 아니다.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거나 적응하는 과정에서 함께 물들어 버린 것이라 봐야 한다.
칭찬은 마치 드래곤볼에서 마인부우와 싸우기 전 손오반에게 내재된 전투력을 끌어올려주던 할아버지의 능력과도 같다. 없는 것을 주는 게 아니라 갖고 있는 장점을 스스로 알아차리게 만든다.
칭찬을 받지 못한 사람은 햇볕을 받지 못한 꽃과도 같다. 늘 힘이 없고 자신감도 없다.
못 받던 칭찬을 받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먼저 칭찬을 해주는 거다. 나는 이걸 와이프에게 당해봐서 실천이 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명해서 자기가 받은 것에 대해 돌려주고 싶어 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지만 당신을 헤드스핀 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나라면 칭찬을 평소에 자연스레 주고받는 관계들을 형성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지속적인 칭찬은 이미 알고 있는 스스로의 핵심역량들을 증진시키거나 나도 모르던 재능들을 꺼내 쓰도록 만든다.
누군가가 필요 이상으로 정서적으로 다운되어 있다면 오직 자신만의 탓은 아닐 수도 있다. 필요한 만큼의 햇볕인 "칭찬"의 부재는 사람을 생각이라는 깊고 어두운 우물 안으로 고립시키곤 한다.
좋은 칭찬을 습관화하고, 좋은 칭찬을 많이 받다 보면 누구도 아닌 내가 "나" 되어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