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 대한 글이니 읽지 마세요.

by 터뷸런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가치의 위에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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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도 하나님의 존 재위에 서지 못한다.

신앙이 정체하는 이유는 어떤 물리적 응답이 삶에 실현되는지에만 포커싱 된, 결과 추종주의 때문이다.

어떠한 부모도 자신의 어린 자식에게 칼자루를 쥐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내게 하늘로부터 어떤 베네핏이 주어지느냐에 대한 관심보다 우선 되어야 할 것은 내가 어떤 존재가 돼가고 있는지에 대한 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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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영적인 존재다. 그래서 동물이 느끼지 못하는 폭넓은 감정적 교류를 경험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스스로의 존재성을 빚어나갈 선택권 또한 갖고 있다.

애초에 인간은 하나님을 떠났을 때 외롭고, 고통스럽거나, 공허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서초구에 거주한 지 30년이 넘었다. 소위 좀 사는 동네에서 돈 많고 똑똑한 사람들 부지기수로 봐왔지만 그들에게서 넘쳐나는 기쁨이나 행복 따위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애초에 영적인 존재가 육적인 삶에 포커싱 한 결과는 자승자박이다.


지금 가진 것보다 더 짜릿하고 더 좋은 것만 갖기 위해 얼마든지 삶을 내던진다. 원하는 것을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고 그동안 해왔던 방식을 고수하며 인생을 허무함의 사이클로 채워간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 중에 존재의 이유나 목적이 없는 것은 단하나도 없다.

심지어 볼펜 하나조차도 만든 이의 이유가 존재한다.

엄청나게 복잡한 기계장치보다도 정교하고 세밀하게 만들어진 인간에게, 아무런 존재의 이유와 목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끊임없이 무언가 획득하려 하는 속성은 생존 본능이지만, 탐욕과 탐심을 내려놓고 내 영의 안식을 평안케 하는 말씀의 묵상은 나를 만든 이의 원 설계 목적에 부합하는 행동이기에 나를 충분하게 만든다.


모든 인간은 내재된 정신적 피로가 있다.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나, 스스로가 통제하지 않음으로 폭주한 '방종'에서 비롯된 허무함 같은.

애초에 인간이 충족감을 느낄 수 있는 방식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내 삶이 흐르는 것뿐이다. 그 외에 어떠한 선행이나 기교도 일시적이며 휘발성에 묶인다.


세상적인 물질에만 종속된 삶은 그 이상의 가치를 볼 수 없게 눈을 가리고 귀를 틀어막게 된다.

영적인 존재가 육적인 삶에만 포커싱이 될 때부터 채울 수도 없고 참을 수도 없는 공허함과 허무함으로 사무치기 시작한다.


종교가 없는 이 조차도 어머니의 사랑보다 위대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지 못하듯, 누군가를 책임지고 동행하며 지속케 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가치 위에 흐르고 있다.


말씀에 종속된 삶은 주어지는 모든 물질적 제반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그래서 그 자체로 충분하기에 무언가에 대한 소유와 집착에 대한 강박조차도 가져가신다. 그것도 아무런 대가 없이.


하나님의 역사는 강권적이며 독립적이며 절대적이고 필연적이다.

이 뜻을 거스르고 무시하기 시작할 때 인간은 지독한 외로움과 공허함을 맛보기 시작한다.

애초에 만든 사람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사한 건 세상이 끊임없이 요구하는 노력과 행위가 아닌, 단 한 번 믿음의 고백으로도 세상의 위에 서서 누릴 수 있는 자유함을 선사하신다.

교회 안 가도 되고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상관없다. 난 그저 내가 느낀 것을 이야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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