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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터뷸런스 Oct 14. 2019

분리.

우리는 계급이 있다고 말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조선시대에 양반과 천민이 있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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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동네, 가처분소득, 나온 학교, 타고 다니는 차가 그 신분을 말해준다고 모두가 느낀다.

그래서 상위 0.1프로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낀다. 그 0.1프로 마저도 0.01프로들을 보며

불행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와이프는 지금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그 덕에 소득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지만 오히려 더 행복해져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계시다.

그녀는 얼마나 가졌는지로 스스로를 판단하지 않는다.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가 훨씬 중요해서다.

그래서 그들만의 리그라는 계급사회에 들어가는 것을 스스로 거절했다. 

진심으로 가진 자들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과장이 아니라 지구 상에서 그녀보다 행복한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 덕에 나까지 비슷한 수준으로 행복해져 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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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사회가 주는 긍정적인 영향력보다, 부정적 영향력이 더 커져가는 시대가 되었다.

남녀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돈과 외모가 되는 순간부터 스스로 고통의 경쟁 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그래서 필요한 건 스스로의 정립된 가치관이다.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가 나를 어떤 존재로 만들 것인지를 결정짓는다.

늘 좋은 음식과 비싼 옷을 입어야만 행복한 사람은 그것들이 없어졌을 때 불행해진다.

알다시피 물질적인 것들은 결국 충분한 돈을 바탕으로만 끌어올 수 있다.


다만 물질은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변동성의 폭이 너무나 크다.


행복해지기 위해 돈을 벌지만 돈을 벌다 보면 불행해진다. 이 저주의 사이클에서 누구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선택을 해야 한다.

고통스럽더라도 계급사회의 상위를 차지하기 위해 자처해서 돈의 노예가 될 것인지,

조금 외톨이가 되더라도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갈 것인지.


사실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절대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그 이상으로 중요한 가치들을 간과한 채 살아가는 점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할 뿐이다.


분명한 건 인간은 아주 정신적인 존재라는 점이다. 물질세계의 유혹은 인간 본연의 정신적 세계를 훼손시킨다.

야금야금 잠식당하다 보면 어느새 빠져나오지 못하는 지점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나오는 것을 포기한 채 스스로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택한다.


그래서 돈 많은 사장들이 하나같이 와이프도 있으면서 여자 친구도 있고, 잘 나가는 연예인들이 마약과 난잡한 성생활을 즐긴다는 사실을 의외로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시대의 흐름이 그렇게 순수하지 않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썩어 문드러져가는 속내를 부여잡고 웃는 셀카가 넘쳐나는 인스타그램은 당신을 더 외롭고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어떤 곳에서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하는 문제다.

야근을 밥먹듯이 하면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피폐하게 만들지만 통장의 잔고는 쌓인다.


통장의 잔고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지 않으면 의외로 찾아오는 여유들이 더 많은 것들을 보게 만든다.

내가 느끼는 모든 종류의 고통은 다 내가 선택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시대의 기호가 내 기호가 되는 순간부터, 거기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마치 물에 발을 담그면 자연스레 젖어들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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