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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터뷸런스 Oct 29. 2019

무엇이 언제 이루어지길 바랍니까.

사람들은 특정 시점의 분명함에 대해 궁금해한다.

저 사람의 마음은 어떨지, 내 미래는 어떨지, 투자한 주식은 어떻게 될지, 지금 다니는 회사는

어찌 될지 등등. 

다만 이 모든 조건들은 늘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미국에서 석박사까지 나온 친구들이 취업이 안돼서 청소 관련 사업과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직업에 귀천은 없으나 그 친구들이 전공과 완전히 다른 분야의 일을 하게 될 거라는 건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마 그들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아니, 그 이야기를 듣고 되려 나는 멋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시점의 나는 이런 일을 해야만 하고 이만큼의 돈을 벌어야만 해"라는 선에서 스스로 벗어난 셈이다.


인생에서 생길 수 있는 다양한 불확실성과의 조우에 대한 현실을 인정하고 다른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은

누구나 당연히 가져야 하는 힘이다.

하지만 이게 없어서 술과 마약, 도박, 유흥에 빠지곤 한다. 요즘 마약이 얼마나 구하기 쉽냐면 고등학생들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경로야 모르겠지만 한국이 마약 청정국은 아닌 셈이다. 


문제는 학생들마저 마약을 구할 수 있고, 꾸준한 수요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불확실한 변동에서 발생하는 충격에 대한 여파를 상쇄할 힘이 없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큰 그림을 그린다는 표현이 있다. 빅픽쳐라는 말을 농담처럼 쓰지만 이 말은 정말 중요하다.

작은 그림은 정말 작아서 이미 결론이 명확한 거다. 

다만 큰 그림은 전체적인 배경이나 흐름을 좀 더 주목한다.


지나치게 미시적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거시적 관점에서의 관찰력과 통찰력을 필요로 한다.

어떤 예상외의 현상이나 사건에 대해 정의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 거기서 내가 어떤 인간으로 변모하는지에 대해 좀 더 주목한다.


이 과정은 내 감정과 생각을 구도자의 관점으로 바라보게 한다. 내 의지와 욕망에 충실하기보단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좀 더 자연스러워지는 셈이다.


타인에게 말 못 할 거지 같은 현실들은 오늘도 내일도 다음 주에도 닥쳐온다.

그때마다 스스로를 책망하며 무기력과 무능력에 빠질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내가 가장 별로라고 생각하는 말은 무턱대고 "넌 잘될 거야"라는 말이다.

잘 안되면 좀 어떤가. 남들이 생각하는 [잘 돼야만 하는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야 말로 진정 성공한 삶이 아니겠는가.


상황이나 사물이 분명해지길 바라기보다, 모든 순간에 머무는 당신의 생각과 마음이 수긍하고 감당하려 하는 선명함 속에 머물기를 바란다.


내외의 모든 사물과 현상의 결과값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는 사람들을 반면교사로 삼기 바란다.

무엇을 언제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 결정하는 주체는 그 누구도 아닌 당신 자신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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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내 경험에 의하면 불명확, 불분명 속에 스스로의 명확함과 분명함이 만들어지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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