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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터뷸런스 Nov 10. 2019

지금 할 수 있는것을 하면 된다.

거의 모든 고통은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결정이 없어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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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먹으면 미래에 대한 진로가 어느 정도 결정될 것 같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

직장은 어느 정도 조건과 여건에 맞춰 선택하게 되고, 돈을 벌고 싶지 않아도 벌어야 할 때가 오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원래 취지에 맞지 않은 일과 사람들을 곁에 두고 살게 되기도 한다.


사실 회사의 업무는 선택의 한계라는 게 존재한다. 진짜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고 즉각적으로 돈이 되거나 그것과 상관있는 일들만 받게 된다. 

그게 싫어서 사업을 하면 쉬는 날이 사라져 워라벨은 남의 이야기가 된다.


나의 아버지는 삼성에서 부장까지 하시고 컨설턴트, 작가를 거쳐 초등학교 교사까지 하시고 퇴임하셔서 지금은 공공기관에서 한자를 가르치신다. 아버지도 그랬지만 대부분 지금 하는 일을 평생 할 것 같아도 막상 지나고 보면 그때그때 주어지는 일들을 하게 된다.


다만 언제나 돈과 조건에 맞춰서만 일을 하는 삶은 비참하다. 

아무런 목적의식이 없으니 버는 돈에 영혼이 없다. 버는 돈에 영혼이 없으면 소비되는 대상도 영혼이 없다.

스트레스받아서 시 x비용이라며 지른 몇만 원짜리 옷이나 화장품 나부랭이가 내 삶과 꿈의 전체는 아니지 않은가.


내 꿈은 지나치게 원대했다. 누구에게나 굉장한 존재가 되고 싶었지만 그런 존재가 생각보다 되기 어렵고, 되어도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된다는 사실도 목격했다.

지금은 그저 내게 주어진 사람들에게 하루하루의 감사를 나누며 사랑을 주고받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놀라운 점이 있다면 관계의 폭은 줄어들지만, 그 폭 안에서의 관계성은 상상 이상으로 단단해지더라는 사실이다.

혹시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음식이 무엇인지 아는가?

어머니가 가고 싶어 하시는 여행지는?

내 형제나 자매가 지금은 못하지만 언젠가 즐기고 싶어 하는 취미는?


이런 사소한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졌을 때 나는 낙제점이었다. 그래서 불필요한, 감당 못할 연락과 관계들을 모두 털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지극히 평범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일상이 평범하다는 건 그 무엇보다 특별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서다.


나는 평범하지만 내가 타인에게 주는 사랑과 관심은 특별했다. 예전에는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에 대한 물음표가 대부분이었다면 지금은 오늘 내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매일 지각하는 내가 가장 아끼는 직원, 늘 나에게 장난치지만 아껴주는 와이프, 말보다 가져다주시는 음식으로 사랑을 표현하시는 어머니, 누구보다 나에 대해 걱정하시는 아버지.


나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들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들을 외면하며 살아왔다.

무엇이 되는지는 중요치 않다. 

내게 "지금" 주어진 것들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내가 무엇이 될지는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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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존재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대상들에게 할 수 있는 사랑을 전하고 표현하는 것으로 결정된다.

그것을 선택하고나서부터 생각은 심플해지고 행동은 간결해졌다. 잡념이 사라지고 감정을 내가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고 할 수 없는 것들만 잔뜩 머릿속에 담아왔기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신상 신발, 비싼 외제차, 명품, 서울의 내 집 마련, 원하는 그 수많은 것들은 내 인생이 아니었다.


삶은 내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오늘" 사랑하는 방법으로 결정된다. 거기서 발생되는 영향들은 나를 충족시킨다. 그것도 완벽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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