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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터뷸런스 Jan 04. 2018

그 롱패딩, 입기전에 알아두세요.


이 사진은 요즘 잘 팔리는 다운 패딩들을 위해 산채로 털이 뜯긴 거위들의 모습이다. 이러한 참혹한 참상에 대해"그럼 너는 삼겹살 안 먹냐"라는 댓글들을 보며 실소가 나오더라.

물론 먹는다. 왜냐하면 삼겹살은 내가 생존에 필요로 하는 동물성 단백질을 대체할만한 다른 대안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른 종류의 동물들을 더 괴롭히지 않기 위해 삼겹살을 택할 뿐이다. 

그런데 다운소재의 충전재들은 대체제가 얼마든지 존재한다.


1. 웰론 (Wellon)

폴리에스터를 마이크로 섬유로 가공한 웰론은 오리털과 비교 테스트 결과 보온성과 필파워(다운을 압축했다 풀었을 때 부풀어 오르는 복원력) 면에서 크게 차이가 없다. 다만 무게는 1.2배 더 나간다. 하지만 웰론은 ‘저렴하다’는 인식 때문에 내수는 많지 않고 해외 수출이 더 많다. 


2. 3M 사의 신슐레이트(Thinsulate)

원리는 웰론과 비슷하다. 폴리에스터를 가공해 만든 마이크로 파이버를 사용하는데,  디스커버리, 코오롱 등 아웃도어 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패딩뿐 아니라 이불 속통으로도 많이 쓰인다. 보온성도 상당히 뛰어나다.


3. 프리마로프트(Prima loft)

병사들에게 지급한 오리털 침낭이 습기 때문에 보온력이 떨어지자 미군이 개발한 합성 솜이다. 압축력이 뛰어나고 물을 1% 이하만 흡수해 아웃도어 의류에 많이 쓰인다. 역시 잘 가공되면 보온성은 상당하다.



위 소재들로 만들어진 패딩의 가장 중요한 점은, 다운(거위나 오리의 깃털)으로 충전된 패딩과 착용하여 비교했을때 실제 느끼는 방한 효과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다.

(두소재를 모두 동일한 양으로 충전했다는 전제하에) 


물론 미세한 차이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체제가 될 수 없다고 말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위 소재들을 잘쓰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가 있다. 

천연 동물소재가 들어가면 더 좋은가보다 하고 사람들이 많이 사주며, 비윤리적 방법으로 채취하기 때문에  제작단가도 많이 줄일 수 있다.


RDS(Responsible Down Standard·책임다운기준) 라는게 있다. 강제급여를 하거나 산채로 털을 뜯는 등의 행위를 하지 않고, 인간이 세운 윤리적인 기준에 맞게 채취한 다운소재를 말한다. 

하지만 시중의 패딩들에 들어가는 깃털은 이 RDS를 거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장사꾼들은 이익률도 나쁘지 않고 더 잘팔릴만한 깃털충전 패딩들을 더많이 만든다.  


오리와 거위들이 산채로 털이 뜯겨져 나가는 끔찍한 고통에는 "가성비" "과시하려는 욕망" "기분탓" "장삿속" 같은 철저히 1차원적인 욕망들이 내재되어 있다.




솔직히 말해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물이 느끼는 고통에 대해 관심이 없다.


우리가 치킨을 시켜 먹을 때 "와 맛있겠다"를 생각하지, "아 얼마나 닭이 힘들었을까"를 생각하진 않는다. 

뭐 그것까진 좋다. 

다만 굳이 고통받지 않아도 될만한 대상들에게까지 고통을 강요하는 모양새는, 인간으로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만한 여지가 있다.


단순히 동물이 받는 고통에 대한 이야기만 하자는 게 아니다. 

작금의 상황을 보며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성"이 무엇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냐는거다.


사회생활만 해봐도 동물보다 못한 인간들이 참 많다. 서울에서는 눈뜨고 코 베어간다는 말이 예부터 내려올 만큼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은 어디서든 항상 존재해왔다.

그런 인간들은 동물 보호가 아니라 인간의 고통에 대해서도 무감각하다.


누군가가 느끼는 고통에 대해 공감을 하지 못하는 객체야말로 인간성을 상실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처럼, 굳이 필요하지 않은 거위와 오리의 생털을 뜯어 입고 다니며 아무렇지 않게 입고 다니는 현실은 인간성이 없는것에 가까워 보인다.


나는 동물 애호가가 아니다. 이러든 저러든 고기는 먹는다. 

단지 내가 인간으로서 느껴야 할 최소한의 미안함과 동정심이라는 것 이 있다는 것에 애써 만족하는 삶을 살아낼 뿐이다.


그리고 대체제라는 추가적인 선택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생명의 고통을 "굳이"  

더 많이 소비하려는 태도에는 불편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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