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물건이 내 삶에 진짜 필요한가?
옷을 안 산 지 반년이 넘었다. 스키복 한벌 외에는 단 한벌의 옷도 사지 않았다. 옷에 대한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옷을 살 시간이 없었다. 스위스에 와서 정착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도 있지만 쇼핑할 시간이 없었다. 퇴근을 하면 오후 6시고 마트, 옷가게들이 다 6-7시에 닫는다. 장볼 시간도 없는데 옷 살 시간이 어딨겠는가. 물론 목요일에는 모든 상점이 8시까지 하지만 퇴근해서 쇼핑을 하기엔 시간이 충분하지는 않다.
그럼 주말은 어떤가. 토요일엔 밀린 식료품 쇼핑을 하고, 해가 나면 무조건 놀러 나가야 한다. 조깅을 하든 여행을 하든 테니스를 치든 야외 활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일요일엔 상점이 다 닫는다. 그렇게 몇 주, 몇 달이 흘렀다.
한국에서의 삶은 어땠는지 떠올려본다. 한국에서는 평일에 퇴근하고 배우자와 외식을 하고 소화시키느라 백화점이나 근처 쇼핑몰을 꼭 들리곤 했다. 그리고 자라에 들려 쓱 한번 둘러본 다음 마음에 드는 옷을 몇 벌 입어보고 대부분 빈손으로 나오진 않았던것 같다. 일요일은 영화를 보거나 아점을 밖에서 먹고 할 일이 없으면 쇼핑몰에 가서 구경을 하고 뭔가라도 사게 된다. 한국은 다 한 곳에 모여 있으니 쇼핑하기가 더 쉽다.
그리고 쿠팡, 마켓컬리 등 인터넷 마켓이 얼마나 잘되어 있는가. 네이버 쇼핑에만 들어가도 살게 널렸다. 이 유혹을 피하기 힘들고, 인스타에서는 공구하는 사람들이 열심히 업로드를 한다. 정말 보면 사고 싶게끔 홍보를 하고 나도 모르게 결제창으로 가있다. 네이버페이 클릭 한 번이면 쇼핑이 끝난다. 그래서 그런지 집 앞에는 늘 택배 박스가 도착해 있고, 필요가 아니라 욕구에 의해 쇼핑을 했었다. 어쩌면 쇼핑이라는 행위가 '여가'생활 중에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여기 스위스에서는 쇼핑은 여가라기보다는 필요에 의해서 한다. 그래서 물건을 살 때 꼭 이게 필요한가를 생각한다. 나의 노마드 생활, 스위스의 높은 물가, 영업시간이 짧은 상점들의 조합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몇 년을 주기로 다른 나라로 떠나야 하는 삶은 짐이 적을수록 마음이 가볍다. 해외 이사를 할 때마다 다짐한다. 다시는 쓸데없는 것을 사지 않기로.
그리고 스위스는 기본적인 물가가 너무 높기 때문에 갖고 싶은 게 있어도 가격 앞에서 망설이게 된다. 마지막으로 살 시간이 없다는 점은 내가 쓸데없는 소비를 하지 않기 위한 모든 조건들을 충족시켜 주었다.
처음엔 그간 하던 쇼핑을 못해 마음이 근질근질했지만 지금은 마음이 오히려 가볍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정말 쓸데없는 것들을 많이 샀구나라고 깨달았다. 특히 옷은 정말 필요가 없었다. 초반에 이삿짐이 오지 않았을 때 캐리어 2개로 3개월을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개월 동안 직장도 잘 다니고, 스위스 내에서 하이킹도 다닐 만큼 2개 분량의 캐리어는 충분했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진 않지만 스위스에서의 생활이 꽤 마음에 든다. 여유 있는 시간엔 나의 가족, 그리고 자연에 집중할 수 있고 쓸데없이 쇼핑몰과 인스타를 들락거리며 필요 없는 것들을 살 필요가 없다. 그 무의미한 시간들과 돈들을 아낄 수 있게 되었다. 스위스의 높은 물가와 짧은 영업시간이 만든 불편함이 나를 물욕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나의 소비습관을 바로 잡아준 스위스에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