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의 운해를 바라보며
스위스에 살면서 하루에 적어도 서너 번은 날씨 얘기를 하게 된다. 아침에 회사에서 만난 동료에게 제일 쉬운 스몰토크는 날씨 얘기다. 날이 맑으면 맑다, 흐리면 스위스 겨울이 왜 이러냐 푸념을 하기도 하고, 기온이 올라가면 진짜 기후변화가 있는지에 대해 얘기하다가, 기온이 떨어지면 이제 스키 타러 가면 되는지 등 내향인인 나에게 날씨는 없어서는 안 되는 대화 주제다.
안개 낀 날이 2주 연속 이어졌다. 처음엔 아침에 안개가 잔뜩 낀 걸 보고 오늘은 맑을 건가 봐라고 생각했는데, 하루 종일 안개가 머물러 있었다. 아무래도 주변에 큰 호수가 있기도 하고 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라 안개가 빠져나갈 수 없는 구조라 그런 듯하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이렇게 안개 낀 내륙국의 날씨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흐려서 피곤하다, 잿빛 하늘이다라는 하소연을 하도 하다 보니 보다 못한 동료가 주말에 트레킹을 해보라는 거다. 아니 무슨 흐린 날에 트레킹을 해?라고 했더니 오히려 산을 오르면 구름 위의 해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다들 그래서 가을에 하이킹을 하고 겨울엔 스키를 타러 산 위로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한국이었으면 안개 낀 날 등산 할 생각을 했을까?
밑져야 본전이다. 일단 동료의 말을 한번 믿고 주말에 등산 계획을 세웠다.
주말이 왔고, 우리는 한 시간 거리의 산에 하이킹을 가기로 했다. 도시락을 싸면서도 이게 맞아? 이렇게 흐린데?라고 계속 의심이 들었고, 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도 영 믿음이 가지 않았다. 날이 이상하면 중간에 돌아오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출발했다. 보슬비까지 내렸지만 그래도 일단 가보기로 했다. 꼬불꼬불 안개 낀 산길을 오르고 있는데 안개 사이로 밝은 빛이 보였다.
잠시 구름이 걷힌 건가? 생각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진짜 구름 위에 올라온 것이었다. 아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파란 하늘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아주 쩅한 파란 하늘이었다. 내가 몇 주간 그렇게 찾아 헤매던 태양 빛이었다. 동료의 말을 의심했던 게 미안해질 정도였다.
우리는 햇볕을 즐기며 5시간 동안 하이킹을 하며 정상에서 도시락도 먹었다. 정상에서 바라본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정말 구름바다, 운해(雲海)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저절로 알 수 있었다. 하늘의 바다를 본 것 같았다. 넘실거리는 구름이 하늘의 파도 같았고, 내리쬐는 태양 빛에 더욱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다. 아, 정말 신비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고 있는데, 갑자기 거기서 삶의 위안과 희망을 느꼈다. 우리는 늘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걸 가리고 있는 구름 때문에 세상이 흐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산 위로 올라오면 세상을 가리고 있던 구름 위로 태양을 발견할 수 있다. 나의 한계라고 생각했던 구름층을 넘어서면 그 위로는 태양이 빛나고 있지 않은가.
만약 오늘도 날씨가 흐리다고 집에서만 머물렀으면 나는 또 스위스의 겨울 날씨에 실망하며 우울하게 주말을 보냈을 것이다. 근데 산 위를 오르자 파란 하늘과 햇볕이 있었다. 태양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꼬부랑 산길을 오르지 않았으면 보지 못했을 풍경이다.
우리네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가끔 구름들에 둘러싸여 빛을 잃을 때가 있지만 태양은 늘 그 자리에 있고, 내가 구름 위를 올라가거나 아니면 구름이 자연스레 지나가게 되면 다시 태양을 만날 수 있다. 아무리 구름에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태양이 있다는 것에 삶의 위안과 그 구름을 뚫고 나가면 태양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다.
태양은 늘 있다. 다만 가끔 구름이 태양을 가릴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