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모든 걸 알 필요가 있을까
스위스는 네 개의 공용어가 있고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로망슈어 중에 난 프랑스어만 뜨문뜨문한다. 한국인 특유의 시험 집중력을 발휘해 DALF C1 자격증을 땄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A2 수준이 될까 말까. 스피킹은 어렵지만 그래도 글을 읽거나 일을 할 수준은 되니 만족하고 산다. 내 뇌의 깊은 곳에 박혀 있던 프랑스어 단어들이 나올 때마다 인간의 뇌 용량에 감탄하기도 하면서.
스위스의 대부분은 독일어권이고 우리가 잘 아는 취리히, 인터라켄 등 여행지도 다 그렇다. 그래서 독일어를 접할 기회가 많은데 아는 단어는 입구와 출구밖에 없다. 얼마 전에는 포르투갈 여행을 다녀왔는데 포르투갈어는 안녕이 뭔지도 모르고 고맙다는 오브리가다만 열심히 외치다 왔다. 지난주 그리스 여행에서는 완전 까막눈이었다. 그리스어 알파벳조차 알지 못했다.
(물론 여행지의 간단한 말을 익히면 좋겠지만 직장인에겐 그런 여유가 없다. 그리고 경험상 이제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여행은 여권과 신용카드만 있으면 된다는 걸.)
언어가 다른 세계에 도착한 그 생경한 느낌을 좋아한다. 한마디로 까막눈이 된 느낌. 도시에 적힌 글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 느낌이 자유롭다. 까막눈이니 쓰인 글을 추측할 수밖에 없다. 내 상상력이 더 필요하다. 내 추측과 상상이 틀려도 상관없다. 내가 시험을 쳐야 하는 것도 아니고 보고서를 작성해야 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물론 구글이나 챗지피티 덕분에 요즘 우리는 카메라 렌즈만 들이대면 몇 초 만에 번역이 가능하지만 여행할 땐 잘 켜지 않는다. (일할 때 구글과 챗지피티는 나의 훌륭한 어시스턴트지만 말이다. 여행할 때는 걔네들도 쉬어야 하니까)
식당에서 주문할 때도 그림을 보거나 대충 짐작으로 시킨다. 구글렌즈를 켤까 생각도 하지만 영 재미가 없다. 메뉴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까막눈의 감으로 시도해 본다. 맛있으면 맛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렇게 여행의 추억이 된다.
어디서 읽은 건진 모르겠는데 시력이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보다 스트레스를 더 받는다고 한다.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량이 더 많아서 그렇다고 하는데, 논문이나 연구결과를 찾아보진 않았지만 어째 좀 설득력이 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량이 적은 까막눈 생활이 자유로운 이유가 여기 있었나 보다.
한국에 살다가 다시 해외 생활을 하면 더 자유롭다고 느끼는데 그 이유 중에 하나가 한국어로 가득 찬 도시에서 벗어나서 그런 게 아닐까. 한국에 가면 온통 아는 글자가 나를 압도한다. 이동수단인 지하철에서도 온갖 광고판이 나의 시선을 끌고,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살 때도 영양성분표까지 자세히 읽는다. 그러다 해외에서 살게 되면 모르는 단어들이 내 주위를 둘러싼다. 그 아늑함이 난 좋다.
모든 단어와 문장을 다 이해할 필요가 있을까. 너무 많은 이해가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해외생활에서 못 알아 들어서 받는 스트레스도 있긴 하지만 한국에서 같은 언어를 쓰는데도 서로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으니 이건 논외로 하자.
세상을 탐구하고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고 다른 문화의 언어를 배우는 건 물론 중요하고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까막눈 상태로 세상을 즐기는 것도 자유로운 일이다. 그건 언어가 아닌 내 감각으로만 세상을 이해하는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