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스키장에서 뒹굴며 배우는 스키

오랜만에 시도한 새 취미, 스키

by 월급쟁이 노마드

나의 취미는 테니스, 수영, 하이킹 정도인데 가끔 탁구를 치거나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적당한 운동신경을 물려받아 운동을 곧 잘하기도 하고 즐기기도 하는데 선호하지 않는 운동도 있다. 온몸으로 속도감을 느끼는 운동을 잘 못한다. 특히 스키, 서핑 이 두 가지는 정말 못한다. 몸의 미세한 균형을 맞추는 것과 맨몸으로 속도를 감당하는 게 무섭다. 운전의 속도감은 즐기는 편인데 맨몸으로 속도를 맞는 스키와 서핑은 늘 아찔한 속도 때문에 애정이 가지 않았다


스위스에 살다 보니 겨울에 사실 할 일이 없다. 조깅을 하자니 공원이 축축하고, 비가 오고 흐리니 테니스장도 자주 문을 닫고, 공립 테니스장은 2월 말이나 되어야 다시 연다고 한다. 트레킹을 가려고 해도 모든 코스가 스키장으로 변해있다! 알프스 스키 시즌이 12월 말부터 4월 초까지라고 하니 결국 남은 선택지는 스키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스키를 시작했다. 한 번 하고 정말 못하겠다 싶으면 그만두려고 스키 바지와 헬맷만 사서 첫 스키장으로 출발했다.


솔직히 말하면 4번째까지는 스키의 재미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레슨도 받아보고 하루 종일 연습도 했지만 실력은 제자리였다. 아니 내가 이렇게 운동신경이 없나 싶기도 하고, 아니 리프트권과 스키 렌탈 값이 얼만데 이 돈을 주고도 즐길 수 없다는 게 안타깝기도 했다. 근데 또 곰곰이 생각해 보면 스키를 4-5번 타고 유튜브에 나오는 사람처럼 탄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스위스에 살지만 주로 French Alps 쪽으로 스키를 타러 간다. 프랑스 알프스 리프트권은 하루 35-50유로/보험, 실물카드 포함, 장비렌탈은 25-30유로 정도 한다. 물론 초보자 기준이니 참고!)


테니스를 친지는 10년이 넘었다. 10년을 친 테니스도 완벽하지 않은데 4-5번 탄 스키가 완벽할 수가 있겠나. 그래서 다섯 번째부터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하나씩 자세를 만들어 가보고 자연 풍경을 즐기며 몸에 힘을 빼보기로 했다. 그저 슬로프를 흘러간다는 마음으로 타보자고 마음먹으니 한결 더 편했다. 스키가 잘 안 되면 그냥 서서 설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런데 스키를 타다 보니 스키뿐만 아니라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거창한 건 아니지만 내가 그동안 일상생활 속에서 몰랐던 부분들을 생각하게 됐다. 아래는 알프스 스키장에서 몸으로 구르면서 배운 교훈들이다.


먼저,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 넘어지게 되어 있다. 스키를 타다가 넘어지는 순간이 있는데 공통점이 있다. 두렵다고 생각한 순간 균형을 잃고 넘어진다. 속도가 너무 빠른 것 같아 무서워서 넘어지고, S턴을 하다가 내 다리가 지탱하지 못할 것 같아서 두려워서 넘어지고, 뒤에서 지나가는 스키어가 나와 부딪힐까 봐 무서워서 혼자 넘어진다. 내 신체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데 두렵다는 그 마음이 나를 넘어지게 하는 것이다. 두려움을 떨쳐내고 나서야 나는 더 이상 넘어지지 않게 되었다.


슬로프를 내려가는 것은 오로지 나의 몫이다. 가파른 슬로프든 빙질이 좋지 않은 슬로프든 어떻게든 올라왔으면 내려가야 한다. 사실 다른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누가 도와줄 수도 없다. 배우자와 늘 같이 가긴 하지만 나를 업고 갈 수도 없고, 손을 잡아 줄 수도 없다. 오로지 나만이 이 슬로프를 내려갈 수 있다. 블루(중급자) 슬로프에 실수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데 너무 무서워서 10분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 아..내가 직접 내려가는 거 말고는 이 상황을 극복할 방법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발을 뗐다. 그 뒤로 다시는 블루에 올라가진 않지만 삶에 대해서는 생각하게 됐다. 힘들고 두려울지라도 내 삶을 헤쳐나가는 건 나밖에 못하는 것이구나.


몸이 감각을 익히는 그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경험하면 그 뒤론 그 동작이 내 것이 되어 있었다. 스키는 감각이 조화롭게 작동되어야 하는 운동이다. 발바닥의 힘, 어깨와 골반의 균형, 자연스러운 팔 동작, 양발의 균형 이동이 없이는 탈 수가 없다. 초보는 탈 때마다 계속 생각한다. '엄지발가락 밑에 힘을 주고, 턴을 할 때는 한쪽 발에만 힘을 주고 팔은 스키 앞부분을 포인트 하듯이'...


계속 이러다 보면 그 어떤 순간이 온다! 아! 이거다. 이 동작을 조화롭게 했을 때 스키가 자연스럽게 잘 나아갔구나! 그런 순간이 오는데 한번 제대로 오면 그 동작은 내 것이 되어 있다. 그래서 다음에 다시 시도했을 때도 내 몸에 남아있게 된다. 이게 진짜 말 그대로 '체화'한다는 것이구나. 몸에 그 균형과 감각을 익히는 것이 필요하고 그건 끝없는 연습을 통해서만 나오는 것이었다.


새로운 취미가 된 스키. 물론 아직도 초보다. 알프스는 부활절(4월 초)까지는 스키 시즌이라고 하니 주말마다 열심히 다녀볼 예정이다. 슬슬 재미를 붙였는지 스키 자켓, 양말도 사고 장신구를 갖추는 중이다. Apres-ski를 즐길 힘은 없지만 좀 더 익숙해지면 스키를 마치고 와인 한잔 하는 호사도 누려봐야겠다.(참고로 전에 한번 집에 도착해서 맥주를 마셨다가 너무 피곤해서 훅 간 적이 있다)


알프스 스키장이 아니었다면 이런 생각들을 못했을 것이다. 겨울이라고 집에서 웅크리고 있으면서 책이나 영상을 보며 다른 것들을 배울 수도 있었겠지만 이렇게 온몸으로 재밌는 것들을 깨닫지는 못했을 것이다. 몸으로 깨닫는게 머리로 깨닫는 것보다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새로운 취미를 통해 새로운 것을 또 배운다. 다음 주에는 또 새로운 동작들을 익히고, 내 몸의 균형을 더 잘 맞출 수 있기를.

p.s. 다음 글들에서는 알프스 스키장 투어 이야기를 풀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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