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풍경을 보기 위해 내가 지불해야 하는 것들
스위스 '좋겠다'. 맞다. 앞에 글에서 말했듯이 좋다. 근데 비싸다. 스위스 물가가 비싸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얘기고, 블로그만 찾아봐도 햄버거가 3만원이니 김치찌개가 5만원이니 외식물가를 친절히 알려준다. 어쨌든 여행자의 시각으로 볼 때 비싼 건 맞다. 여기서 직장생활을 하는 나는 작고 소중한 월급을 아껴가며 집밥을 열심히 해 먹고, 스트레스를 덜 받기 위해 10프랑(약 17,500원)을 만원으로 생각하며 환율을 잊은 채 살고 있다.
어느 하루였다. 직장에서 너무 힘든 하루를 보내고 퇴근을 했다. 정해진 시간보다 훨씬 늦은 시간에 퇴근을 했고, 배우자가 저녁을 해두었다고 했지만 도저히 밥 먹을 기분이 아니어서 산책을 나섰다. 직장인들이라면 그런 느낌 다들 알지 않나. 배우자나 친구에게 그 상황을 다시 말하기가 싫어서 오히려 피하게 되는 상황. 밖으로 나가야만 내 시선과 생각들이 분산될 것 같았다.
새로 이사 온 동네라 익숙하진 않았지만 공원처럼 보이는 곳을 정처 없이 걷다 저 멀리 몽블랑을 발견했다. 프랑스에 있는 산인데도 날이 맑으면 여기서도 볼 수 있다. 아니 이렇게 5분 거리에 몽블랑이 보이는 공원이 있다니, 꽤 근사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몽블랑에 대한 언급은 다른 글에서 하겠지만 이 이후에 몽블랑은 내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다)
몽블랑을 보고 기분이 나아졌냐고? 아니다. 기분이 나빠졌냐고? 그것도 아니다. 그저 저 아름다운 몽블랑을 보기 위한 대가를 내가 치르고 있구나, 비싼 값을 치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아름다움 풍경에 내가 지불해야 하는 몫이 있구나. 수직적인 조직생활과 그 조직 안에서 내 몫을 해내고, 모나지 않은 사람인척 원활한 대인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을 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그래야지 월급을 받고, 그 월급으로 몽블랑이 보이는 공원 옆의 집을 구하고, 차 보험료를 내고, 한달에 한 두번 외식을 하고, 배우자와 저녁에 산책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저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 내가 유형의 돈, 무형의 내 노동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너무 진부한 말이지만 이보다 더 정확한 말은 없다. 어쩌면 나의 합리화일수도 있다. 저 아름다운 풍경을 위해 내가 무언가를 지불했다는 생각을 해야지만 내일도 출근할 힘이 생기기니까 말이다. (돈을 벌러)
사람들이 스위스의 삶을 부러워하며, 조금만 나가면 아름다운 공원이 있고, 호수가 있고, 알프스 산맥이 보이는 삶을 동경하지만 그 뒤에는 노동과 어느 수준 이상의 프랑이 필요한 것이었다. 스위스에 살게 된건 분명 좋은 기회지만 공짜는 아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9-18 근무를 해야지만 퇴근길에 몽블랑과 주말 나들이가 가능한 것이었다.
일주일 여행하는 여행자가 아니라 여기서 몇 년을 살아야 하는 직장인은 알프스 풍경에도 노동과 월급을 연결 지으며 산다. 그날 이후로 몽블랑을 볼 때마다 그래도 조금은 힘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