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의 해외생활을 지켜보며
어느 맑은 가을날 평일 점심, 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을 하다 한창 유튜브를 열심히 보고있는 배우자에게 짜증을 냈다. 스위스에서 그렇게 허송세월 보낼거야? 유튜브 좀 줄이고 나가서 산책도 하고, 새로운 동네 탐방도 하고, 햇볕 좋으면 조깅도 하고, 스위스를 좀 잘 누리려고 해봐. 모두가 다 부러워하는 스위스 생활인데 왜 그렇게 보내는거야? 몇주간 참았던 짜증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사실 배우자에 대한 짜증이라기 보단 새로운 업무 적응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고, 당연히 모르는게 많으니 정규 업무 시간 이외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늦은 저녁 퇴근하는 날도 많았다. 피곤해서 저녁만 먹고 쓰러져 잔 적도 많았고, 그냥 피곤했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환경, 아무리 노마드 생활이 익숙해졌다고는 해도,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시간은 늘 필요하다.
도착한지 세달도 안됐을 때니, 배우자도 한창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바빴을 시기다. 내가 출근을 하면 많은 행정처리와 집안일들을 도맡아 하느라 본인도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첫 해외생활이니 낯선게 얼마나 많을까 싶었다. 내가 출근한 사이에 많은 집안일들을 하고 잠깐 틈이나 유튜브를 본 걸 수도 있다. 나도 사무실에서 잠깐 짬이 나면 네이버 뉴스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돌아와 앉았는데,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스위스라지만 나말고 아무도 없는 머나먼 타지에 나만 믿고 따라와줬는데, 굳이 그렇게 말할 필요가 있었을까. 모든 사람은 다 각자의 고민과 어려움이 있기 마련일텐데. 그러다 문득 내가 왜 짜증이 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난 그가 내심 부러웠던거다. 내가 그의 상황이라면 산책도 하고, 동네 탐방도 하고, 햇볕 쬐며 조깅도 하는 그런 삶을 살았을텐데. 야근도 없고, 상사도 없고, 보고서의 마감기한도 없고, 어색한 대화를 나누며 업무를 해야할 파트너도 없는 상황이 너무 부러웠다.
사실 나의 오래된 꿈 중 하나는 '주재원 배우자'였다. 너무 간절하게 바래서인지 하늘이 소원을 들어주긴 했다. 주재원은 시켜줬는데, 주재원 배우자는 시켜주질 않아서 문제였지만 말이다. 반쪽이라도 들어줘서 감사하다고 해야하는걸까. 주재원 배우자로서의 삶의 계획은 내 연간 업무계획 보다 더 잘 짤 수 있을것 같았는데 말이다. 어쨌든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을 배우자가 대신 이루었다. 참 부러웠다.
나의 꿈을 대신 이뤘기에,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배우자가 살기를 바랬다. 아침엔 운동을 하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오후엔 다른 동네 구경을 갔다가, 마트에 들러 꽃과 먹을 것을 사고, 평소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고, 글도 쓰고 책도 읽는. 내 환상속의 주재원 배우자 삶인데 사실 그건 환상이었다. 실제로 나의 배우자는 내가 일을 하러 간 사이에 우편물을 보내고, 쓰레기를 버리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집안 정리를 하기에 바빴다. 그가 내가 하는 일이 무슨 일인지 100%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도 그의 생활을 모두 알지 못했는데, 단순히 내가 그리던 삶대로 살지 않는다고 그를 다그친것이다.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그는 내가 아닌데 내가 하고 싶은걸 그에게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짜 그가 하고 싶은게 뭔지 물어봤어야 했는데 말이다. 그래서 며칠 후 그에게 지금의 생활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지금의 삶이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스럽다고 했다. 집안일을 하면서 만족감을 느끼고, 배우자가 기뻐하는 모습을 같이 즐기고, 첫 해외생활로 스위스에 살면서 주말에 여행을 다니고, 주중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이 생활이 너무 즐겁다는 것이다.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이기적인 내 생각을 접었다. 그는 내가 아니고, 나도 그가 아니다. 우리는 부부지만 다른 사람인데, 내가 이루고 싶은걸 그가 이뤘다고 해서 나의 생각을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지금 스위스 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테라스의 낙엽을 정리하고, 나의 셔츠를 다리고, 뽀독뽀독하게 그릇을 씻기 위해 식세기를 고집하고, 어떻게 효율적으로 가구 배치를 할지 고심하고, 식료품을 사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Coop이 아닌 Denner를 간다. 그를 방식을 이제 존중하기로 했다. 나의 울퉁불퉁한 질투와 시샘도 그만하기로 했다.
내가 일을 하는 시간 동안 당신이라도 즐겼으면 좋겠다. 내 방식이 아니라 당신만의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