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어디 갈까?
이번 주는 어디 갈까?
정신없는 월요일, 살짝 지친 화요일을 지나고 나면 자연스레 배우자에게 묻는다. '이번 주는 어디 갈까?' 우리에겐 아직 수목금 3일이나 남았지만 마음이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진다. 스위스에 사는 직장인이라면, 그리고 여기서의 근무 기간이 정해진 직장인이라면 급해질 수밖에 없다. 이 아름다운 스위스를 조금이라도 더 즐겨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몰려온다.
해외에서 일하는 직장인에게도 휴가는 한정되어 있다. 스위스는 유독 공휴일이 적다. 칸톤(주)별로 다르긴 하지만 연 9-11일 정도이니 짠 편이다. 개인휴가 20-25개를 붙인다고 해도 여유롭지는 않다. '한국에 비해서 많은데 뭐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 업무 파트너들의 휴가를 보면 여름은 거의 한 달, 겨울은 2-3주씩이다(모든 건 상대적이니까). 그들에 비해 나의 휴가는 짧은 편이다.
모든 일에는 시즌이 있는데, 나의 일은 시즌을 더 타는 편이다. 바쁜 시즌이면 정말 매일 대면, 비대면 회의부터 시작해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대형회의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휴가를 쓰라고 해도 제 발로 반납할 정도다. 바쁜 시즌에 며칠간 휴가를 쓰면 할 일이 쌓여있어 한꺼번에 쳐내기가 힘들고, 일이라는 게 흐름이 있어서 한번 끊기면 다시 맥을 잡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일을 하는 기계 중에서도 나는 쉬었다가 다시 시동을 걸려면 연료가 더 드는 유형이다. 여름철 에어컨도 껐다가 다시 켤 때 가장 많은 전력을 소모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직장인에게는 토, 일요일을 잘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일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누릴 수 있는 단 이틀. 소중할 수밖에 없다. 나와 배우자는 주말 기상시간이 더 이르다. 출근할 때는 보통 7시 반쯤 기상하는데, 주말엔 4시 반, 5시 반, 늦어도 7시다. 티켓값을 아끼기 위해 당일치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더 한가하게 즐기기 위해 첫 차를 타고 여행을 시작한다. 돌아올 땐 이미 어둑어둑한 밤이 되어있다.
직장인의 주말여행은 바쁘다. 언제쯤이면 느긋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을까. 스위스에 있는 직장인도 쫓기듯 여행을 한다. 스위스에 산다고 하면 주말마다 융프라우, 그린델발트, 마테호른, 취리히를 갈 것 같지만 주말 이틀로는 힘들다.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경제적으로도 쉽진 않다. 1박 2일이라고 해도 숙박비 40만원, 2인 한끼 최소 15만원, 교통편 20만원이면 100만원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공휴일을 이용해서 3박 이상의 여행을 종종 가긴 하지만 아직 지도를 보면 못 가본 곳이 너무나 많아서 또 조급해진다. 언제쯤 이 압박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스위스에 아름다운 곳이 너무 많은 탓일까. 내 커리어에서 스위스는 다시는 없을 근무지여서 일까.
문득 십수 년 전 인도 배낭여행 중 우연히 만났던 사람의 말이 생각났다. 1년 반 넘게 세계여행을 한 그는 이제서야 여행에서 자유로워졌다고 했다. 무슨 말인가 하니, 그동안 자기가 가고 싶었던 여행지를 다 가봐서 이제 어딜 가든 상관이 없다는 거다. 그래서 자기는 비로소 여행에서 자유로워졌고 마음이 편해졌다나. 20대 초반의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이제 이해가 된다. 나도 스위스 전역을 다 여행해야지 이 조급함이 없어질까? 그러기엔 내 휴가 일수가 너무 적은데 어쩌지.
스위스 직장인은 평일도 9-6 바쁘지만, 주말은 더 바쁘다. 오늘도 퇴근 후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구글맵을 켜본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열심히 확대해 가며 주요 명소를 찾고, 경로를 검색하고, 그 여행지에서 평점 높은 맛집을 찾고, 다시 네이버를 켜서 한국인이 잘 정리해 둔 블로그를 열어본다. 스위스에 사는 직장인으로서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숨겨진 명소를 찾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두세 개 정도 가고 싶은 여행지가 생기면 그때 배우자를 불러본다. 물론 내가 가고 싶은 여행지는 정해져 있지만 예의상 그에게도 기회를 준다.
'다음 주엔 어디 갈까?'
그리고 이번주 토요일도 5시에 기상해서 6시 기차를 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