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것들을 떼어내며 내년을 계획하는 순간
거의 한 달 반 가까이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취해 지냈다. 11월 중순부터 집을 꾸미고, 연말 여행 계획을 세우고, 크리스마스 마켓을 다니며 유럽 크리스마스의 낭만이라고 생각한 것들을 경험해보았다. 가을 내내 우중충했던 도시가 이렇게 반짝일 수 있다는 게 신기했고, 칠흑 같은 유럽의 겨울밤을 반짝이는 빛들에 의지해서 잘 견뎌왔다.
크리스마스이브엔 직장에서의 점심 파티를 즐기고 오후엔 가까운 지인들을 불러 라끌렛과 파네토네, 적당한 와인을 곁들이며 즐겁게 보냈다. 크리스마스와 신년 연휴가 기다리고 있어서 그런지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를 정도로 흥겹게 식사를 했다. 연말에만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이니!
자정이 되어서야 파티를 끝내고 피곤해서 바로 잠들었다 일어나니 크리스마스 아침이다. 반짝이는 건 없고, 그냥 평범한 구름 낀 흐린 아침이다. 느지막이 일어나 파티 뒷정리를 하고, 손님들이 선물해 준 꽃을 감상하며, 그들이 남기고 간 음식들을 데워먹으며 배우자와 어제 파티에 대해 한참을 얘기한다. 그리고 집안 곳곳에 있는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보며 이제 내일이면 떼어내야겠구나라고 생각한다. 유튜브를 열어보니 온통 크리스마스 플레이리스트다. 이제는 지났으니 다른 잔잔한 음악을 틀어 본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떼어내면 2026년이 성큼 다가온 게 너무 선명하게 느껴질 것 같아서 아찔하다. 매년 집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지만 그걸 떼어낼 때면 마음이 울렁거린다. 미련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고 아쉬움도 아니고 그 모든 게 섞인 감정이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도 조금 추가된.
올해가 끝났다는 묘한 안도감도 있지만 내년을 맞이하기에 내가 준비가 되었나, 아직 그럴듯한 계획을 세우지 못했는데 어쩌지라는 걱정과 조급함, 이렇게 세월이 빨리 흐르는 것에 대한 아쉬움. 갑자기 내게 남은 크리스마스는 몇 번이나 될까를 생각하며 생의 유한함을 느끼기도 하고, 내년은 올해보다 더 나았으면 하는 소망이 뒤죽박죽으로 얽혀 있다. 책의 목차처럼 내 머릿속에서도 이런 감정들이 순서대로 정리되면 좋으련만.
어지러운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하나씩 천천히 떼어 본다. 스탠딩 조명에 달린 빨갛고 하얀 볼들을 떼면서 올해 노마드의 삶에 대해 정리한다. 박사를 졸업하고 새로운 스위스에서의 삶을 시작했고, 그 모든 과정에서 나와 함께해 준 배우자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다. 그럴듯해 보이는 이력서 뒤로 많은 고난과 애환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 기억들을 뒤로하고, 감사함만 남겨본다.
창가에 있던 산타 할아버지들을 다시 서랍 속으로 넣을 때는 내년의 계획에 대해 생각한다. 내년도 마냥 쉬운 해는 아닐 것 같다. (물론 이때까지 쉬운 해는 단 한 해도 없었다) 반년 간의 워밍업을 끝내고 이제 본격적으로 업무에 뛰어들 해이기도 하고, 배우자의 진로와 투자 등 현실적인 고민들을 해야 하는 해이기 때문이다.
산타 밑에 달려있는 장식을 마저 떼어내며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또 생각해 본다. 걱정은 늘 있어왔고, 언제나 모든 것들을 해결해 왔고, 그 과정에서 나는 즐거웠고 또 성장했으니 말이다. 걱정한다고 안되는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되는 일이 안되는 것도 아니다. 삶에 적당한 긴장감을 줄만큼의 걱정만 하자고 다짐한다.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하나씩 정리하면서 자연스레 생각이 정리가 됐고, 아까의 그 울렁거림도 사라졌다. 모든 장식품을 한 상자에 넣고 나서 생각한다. 올해도 의미 있었고, 내년도 의미 있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크리스마스의 반짝임과 구름 낀 하늘이 동시에 존재하듯 내 인생도 가끔은 흐리고, 가끔은 반짝일 것이다.
우중충한 겨울을 빛내주었던 장식들을 다시 넣어줄때가 되었다. 더 빛나는 새로운 한 해를 위하여!
p.s.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도 올 남은 한 해 따뜻하게 보내시고, 내년 한 해 즐겁게 시작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