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결같이 다 맛없다고 하는 걸까
배우자에게 제목이 어떠냐고 물었다. 왜 그렇게 논문 제목처럼 딱딱하게 쓰냐고 핀잔을 들었지만 그래도 가방끈 긴 박사로서 논문 쓰던 경력을 되살려 음식에 대한 고찰을 해보고 싶었다. 거창하게 말해서 고찰이지 그냥 혼자 떠오르는 생각들을 써보고자 한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접할 때, 의식주 중에 우리는 '식'을 가장 수월하게 받아들이고, 경험해 보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도 K푸드를 강조하고 있는 걸 보면 문화 전파에는 식문화가 최전선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여행을 다닐 때 그 나라의 유명 음식부터 찾는다. 태국의 팟타이, 일본의 라멘, 홍콩 에그타르트, 인도 커리, 튀르키예 케밥, 이탈리아 파스타처럼 말이다.
그럼 스위스의 대표음식은 뭘까. 일단 스위스를 떠올리면 퐁듀가 떠오른다. 어느 날 그뤼에르 지역을 여행하고 그뤼에르 치즈로 만든 퐁듀를 처음 먹었다. 1인 30프랑(5만 원가량)이니, 2인에 60프랑을 주고 주문을 했다. 나온 것은 퐁듀 냄비, 삶은 알감자, 빵이 전부였다. 스위스 물가가 비싼 건 이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요리인데 뭐가 좀 더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다들 그게 전부였다.
사실 퐁듀는 스위스 산골 마을 사람들이 겨울에 굳은 치즈와 빵, 남은 와인을 먹기 위한 것이었고, 일종의 산골마을 겨울 음식이 탁월한 마케팅 덕분에 이렇게 스위스의 대표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퐁듀 이외에 라클렛도 있지만 재료는 같다. 얇게 썬 치즈를 작은 프라이팬에 녹여서 감자, 고기, 빵 위에 뿌려먹는 것이니 거의 같은 구성이다.
맛을 말하자면 일단 맛은 있다. 화이트 와인이 들어가서 술향이 좀 셀 수는 있지만 그래도 짭조름하니 푹 찍어 먹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옆나라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식문화에 비하면 다소 단촐하다. 물론 세계화의 영향으로 다른 요리법들이 들어와서 다른 요리들도 즐길 수 있지만 그래도 뭔가가 부족하다.
사실 부유한 스위스 이미지는 만들어 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 18세기만 해도 스위스는 가난한 산악동맹국으로 경작지가 없어 먹거리가 풍족하지 않았다. 반면 주변국들은 식민지를 개척하고 향신료와 설탕, 차를 거래하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차이가 생긴 것이 아닐까. 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내가 그동안 맛본 스위스 음식들은 대체적으로 심심하고 감칠맛이 없었다. 중국, 인도와 신대륙에서 들여온 향긋한 향신료들이 부족하다. 가끔 스위스 음식이 맛없다고 투덜거리는 동료들이나 지인들에게 이 얘기를 하면 열이면 열 다 끄덕인다. 내 분석이 인정받은 것 같아서 연구자의 입장으로 뿌듯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맛없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또 한 가지 있다. '이 맛에 이 가격을?'이란 생각 때문이다. 스위스에서 점심은 보통 메인-디저트-커피까지 하면 40-50프랑, 저녁 메인-와인-디저트까지 하면 70-80프랑이 나온다(현재 1프랑=약 1,830원). 이 정도면 현지에서는 적정가라고 보는데, 한화나 달러로 계산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느 평범하고 소박한 식당에서 배우자와 퐁듀 1인, 스테이크, 와인 2잔을 마시고 140프랑(25만원)이 나왔으니, 25만원이면...내가 한국에서 한우도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데...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더 이상 내가 먹었던 스위스 음식의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늘 나오면서 하는 말이 있다. '맛은 있었어, 근데 이 가격은 좀 아니지 않나?' 만족도가 내려가면서 맛있었던 기억마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스위스 음식을 탐험하고 있다. 노마드로 살면서 정착지의 음식을 맛보는 건 늘 새로우니까 말이다. 올 겨울에는 라끌렛 기계를 집에 들였다. 네모난 치즈를 작은 팬에 녹여서 감자, 빵, 구운 채소 위에 올려 먹는데 치즈를 녹여먹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집에서 먹으니 확실히 가격도 합리적이다. 여러 채소와 샐러드 재료 이것저것 사면 10프랑, 치즈 4인분 20프랑, 빵 5프랑, 와인 15-20프랑이면 4명이 배부르게 즐길 수 있다.
맛없다고 생각했던 스위스 음식에 정을 붙이고 있다. 화려한 외식은 아니지만 집에서 소박하게 즐기는 재미가 있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후추도 넣고 마늘도 굽고 나름 커스터마이징을 해서 먹으니 감칠맛이 더 좋은 것 같다. 물론 퐁듀나 라끌렛을 먹은 다음날은 꼭 국물이 얼큰한 라면을 먹어야하긴 하지만 말이다.
노마드로 살면서 이전의 정착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들은 그 나라의 음식들이었다. 맛없다고 생각했던 스위스 음식도 떠나고 나면 고소한 치즈향이 그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