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 직장인을 위한 자연산 에너지바
튀니지에서 디저트나 간식으로 대추야자를 많이 먹었다. 삼시세끼 외에 간식 먹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추야자는 늘 집이나 사무실에 놔두었다. 정말 너무 피곤할 때, 힘이 없을 때 한두 알 먹으면 손과 발끝까지 에너지가 전달되는 기분이었고 금세 기력을 회복했다.
이 말은 나름 사실인 게, 사하라 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멀리 갈 때나 여행을 떠날 때 대추야자를 들고 다녔다고 한다. 가볍기도 하고 오래 보관할 수 있고 당도 충분하니 가져 다니기 좋았을 것이다. 사막의 에너지바 같달까.
또 여성들이 출산 후에 회복을 위해 대추야자를 먹는다고 한다. 코란에도 나와있는데 기독교의 성모마리아에 해당하는 마르얌(Maryam)이 출산할 때 “야자나무 줄기를 너 쪽으로 흔들어라. 그러면 신선한 대추야자가 네 위로 떨어질 것이다. 먹고 마시고 마음을 편안히 하라.”라고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산모들은 출산 후 에너지 회복을 위해 대추야자를 먹는다는데 종교적인 의미도 있겠지만 산모의 기력 회복에 큰 역할을 하는게 분명하다.
다른 글에서도 금식월인 라마단에 대해 말하겠지만, 라마단 때 공복 상태를 깨기 위해 가장 먼저 먹는 것이 대추야자다. 공복을 깨는 첫 식사인 이프타(Iftar)를 먹게 되면 꼭 대추야자가 식탁에 올려져 있다. 장기간 에너지가 고갈된 몸에 대추야자를 먼저 넣어 기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렇듯 내가 당이 부족할 때마다 찾아 먹었던 대추야자의 효능이 이미 다 검증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현지에서는 데이츠(Dates, 불어로는 datte 다뜨)라고 부르는데 야자나무 열매를 말려서 그대로 먹거나 그 사이에 견과류나 페이스트 등을 넣어서 먹는다. 처음엔 갈색에다가 친숙하지 않은 생김새를 보고 꺼려하지만 한번 맛보면 계속 먹게 된다(물론 호불호는 있다). 처음 맛보는 한국인들은 엇? 곶감 맛인데?라고 보통 말하는데, 실제로도 달달한 곶감인데 곶감에서 상큼한 향을 빼고, 묵직한 갈색 맛을 추가 한 맛이랄까. 대추야자의 맛을 표현할 만큼 어휘력이 풍부하지 않아서 안타깝지만 아무튼 사막의 햇살과 수분을 농축시켜 놓은 맛이다.
대추야자도 철이 있는데 주로 겨울이 되면 농장에서 줄기를 묶어서 내놓고 그걸 취향에 맞게 건조해 먹거나 보관해 둔다. 그리고 종자가 다른데 맛도 다 다르다. 어떤 건 맛이 묵직하고, 어떤 건 안에 섬유질이 더 잘 느껴지고, 어떤 건 가볍다. 대추야자를 골라먹는 재미도 있고, 특히 겨울철에 두즈(Douz)나 토주르(Tozeur) 지역으로 놀러 가면 길거리에 대추야자를 파는 풍경을 볼 수도 있고, 대추야자 밭을 구경할 수도 있다.
척박한 사막땅에서 오아시의 물에 의존하여 열매를 맺는 야자수들이 만들어낸 대추야자를 보며 신기함과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사막의 에너지가 응집된 맛이라 그렇게 먹으면 힘이 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사무실에서 오후에 기력이 부족해 머리가 돌아가지 않을 때, 테니스를 치고 와서 온몸에 힘이 없을 때, 주말 아침 일어나서 밥 먹기가 귀찮을 때 자주 먹었다. 물론 자연 그 상태의 대추야자도 맛있었지만 가끔 두유에 바나나와 대추야자를 함께 넣어서 갈아먹으면 든든한 한 끼가 되었다.
지금은 더 이상 튀니지에 살지 않아서 대추야자를 먹을 일은 없지만 가끔 공항에서 마주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공항에서 파는 것들은 화려하다. 견과류들이 박혀 있거나 꿀에 절인듯한 생김새인데, 튀니지 사막에서 자연스레 건조해서 자연의 맛이 잘 농축된 그런 자연의 대추야자가 그리워 그 기억을 해칠까봐 실제로 사진 않는다.
튀니지 직장인에게 에너지를 주었던 사막의 대추야자, 한 번쯤 경험해 볼 만하다. 당이 정말 부족할 때, 기운이 없을 때 그때 먹으면 사막의 열매가 주는 신비함을 더욱 잘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