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스 야경은 늘 아름답다

어둠과 반짝임이 주는 위안

by 월급쟁이 노마드

도시의 야경은 늘 아름답다.

낮에 보는 것과 똑같은 건물과 풍경들인데 왜 더 아름다울까. 야경의 아름다움은 반짝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보기 싫은 것들을 어둠이 적절히 가려줘서 아름다운 빛만 남았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 날 유럽에서 아름다운 야경으로 손꼽히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갔다. 저녁에 도착해서 바로 야경을 볼 수 있었는데, 아름다운 국회의사당과 도심을 가로지르는 다뉴브강, 조명에 비친 건물들은 빛을 받아 생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창밖으로 본 풍경은 전날 저녁과는 달랐다. 회색 빛 건물, 생활 쓰레기가 보이는 도로, 관리가 잘 되지 않은 곳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허무했다. 그 당시 나는 속은 느낌이었다. 어둠이 불쾌한 부분들을 다 가려줘서 야경이 아름다운 거지 진짜 아름다운 도시는 아니었잖아.


난 그 이후 야경에 대한 기대나 환상은 없었고, 야경이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여행지를 선정하는 일은 없었다.


튀니지에서 살게 되면서, 튀니지 야경에 대한 기대는 정말 단 하나도 없었다. 정착기에는 모르는 동네가 무서워서 나가지 않았고, 무더운 여름에는 밤에도 더워서 나가지 않았고, 모래바람이 부는 날은 모래가 많아서 나가지 않았고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중요한 저녁 행사를 마치고 그냥 집에 들어가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몇 주 동안 준비한 일을 별 탈 없이 끝낸 나와 동료는 이 순간을 즐기고 싶었다. 근처에 갈 데가 없는지 이리저리 찾다 근처 호텔에 바가 있다고 하여 갔다. 별 기대 없이 무알콜 맥주나 한잔 들이키러 갔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튀니지의 야경이 훤히 보이는 곳이었다. 튀니스 호수와 메인거리가 빛나고 있었다.

Novotel Tunis에서 본 풍경

*(https://maps.app.goo.gl/dZj61GrLxJsNrsRc9) (Novotel Tunis, 아직도 영업 중인 듯하다, fancy한 바는 아니니 너무 기대는 하지 마시길)


바 중간에 수영장이 있고, 라이브 노래 무대가 있고, 반짝이는 튀니스 도심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는데, 첫날 우연히 들린 이후에 한 달에 두세 번은 찾는 곳이 되었다. 동료나 지인들과 퇴근 후 가기도 했지만 가장 좋았던 때는 혼자 들렸던 때다. 아무에게도 업무 얘기를 하고 싶지 않고, 밝은 한낮의 튀니스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 이방인에 대한 시선도 있고 가끔 인종차별을 느낄 때면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때가 있었는데 그때가 되면 튀니스의 야경이 보고 싶어졌다.


아름답지 않은 것들이 어둠으로 가려진 튀니스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이 도시에서 살아야 하는 이방인으로, 도시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만 보고 싶은 순간이 있었고 그건 야경만이 줄 수 있는 것이었다. 야경을 보며 많은 위안을 얻었다. 고요하고 반짝이는 순간들. 특히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에는 메인 거리에 차가 거의 다니지 않았는데, 야자수가 이어진 고요한 거리와 빌딩들을 보면 묘한 안정감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방인의 도시생활에서 야경을 바라보는 일은 묘한 만족감을 주었고, 튀니스의 야경을 본 이후에야 그 도시를 더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 위의 사진은 튀니스에서 짐을 싸서 떠나오기 전에 찍은 것이다. 내게 위안을 주었던 튀니스 야경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고, 사진으로 마지막 순간을 근사하게 남겨주었다.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살면서 그 도시에 사는게 지칠때가 있다. 그럴때는 그 도시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보고 마음을 달래곤 한다. 도시의 못난 부분들을 가려주는 야경에서 위안을 느낀다.



p.s 아래 사진은 도심의 야경은 아니지만 저녁 지중해를 즐기기 위해 자주 찾았던 Four Seasons Tunis인데,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부터 완전히 바다색이 검은색으로 변할 때까지의 시간이 환상적이었다.

Four Seasons Tun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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