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정리하다 보면 알게 됩니다
어릴 때는 화가 나면 무조건 참았습니다.
그러다 속에 화가 한가득 차면 밤새 울거나 또 밤새 울거나 혼자 삭이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지요.
그건 지금까지도 크게 바뀌지 않은 제 성격입니다.
나도 사람인지라 화가 나면 욱하고 버럭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뒷감당을 할 여력이 없어서 늘 참고 지나갔다가 후일을 도모하는 게 버릇이 되었습니다. 제대로 화를 낼 줄도 감정 표현도 할 줄 모르는 채 사십 대 중반이 되어 지쳐버렸습니다.
오늘 냉장고 청소를 했어요. 며칠 전부터 거슬렸던 야채칸을 뒤엎었습니다. 싹 난 감자와 삐쩍 말라버린 당근을 버리고 검은 비닐봉지 안에 숨겨져 있던 부추도 버렸습니다. 마치 지금의 내 감정이 문드러진 걸 들킨 것처럼 야채들은 제각각 색과 향을 잃은지가 오래되었더라고요. 그것도 모른 채 방치했던 내가 오늘 화가 났던 그 상황보다 더 미워졌습니다.
나도 완벽하지 않으면서 누구에게 완벽을 요구하는 것인지. 순간 부끄러웠습니다.
그렇게 냉장고 청소를 시작으로 버릴 옷들 몇 가지와 때 묵은 가스레인지 주변과 아무렇게나 넣어 둔 그릇들을 정리하고 나니 감정이 내려앉고 똑바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물론, 상대방의 진심 어린 사과가 있었기에 완벽한 마지막이 되긴 했지만, 정리의 힘은 생각보다 큼을 저는 많은 경험에서 이미 터득했습니다.
사람의 감정은 늘 들쑥날쑥입니다. 자존감, 자신감이 아무리 높아도 내 기분을 망칠 이유는 도처에 널려 있어요. 생각지도 못한 도로의 정체도 갑자기 끼어드는 차도 내 기분을 망치기엔 충분합니다. 거기에 가까운 이들이 저의 없이 내뱉는 말들조차도 내 기분을 갑자기 망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너무나 머릿속이 복잡하면 모든 걸 내려놓고 휴식의 길을 찾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저처럼 귀와 눈이 모두 열려 있는 다시 말해 심각하게 예민한 사람들은 집중할 수 있는 일거리가 그 순간 모든 감정을 내려놓을 수 있는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몸은 쉬지만 머릿속은 계속 뱅뱅 돌아가기 때문이에요. 이럴 땐 몸을 좀 움직여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화장실 묵은 때를 벗기면서 깨끗해진 화장실을 보는 순간 잠시나마 나빴던 감정이 사그라드는 걸 느낄 수가 있거든요. 또, 미루고 미뤘던 세차를 하면서 무아지경의 순간이 되면 언제 그랬나 잊기도 합니다. 또는 묵혀 둔 종이들을 찢기도 하고 말이죠.
사람마다 화를 삭이는 방법은 다 다를 겁니다.
저는 정리와 청소를 추천드려요. 과정은 힘들지만 그 과정 속에서 감정은 감정대로 내 주변은 주변대로 정리되고 깨끗해짐을 느낄 수가 있어요. 그리고 나를 화나게 만든 상대, 또는 사물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어요.
혹시나 스스로 화 조절이 안되신다면 이 방법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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