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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혼잣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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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아줌마 May 24. 2023

어디 갔다 이제 왔니???

떠돌이개한테 상사병이 나버렸다.

남편과 거의 매일 가다시피 하는 드라이브코스에 어느 날부턴가 정체 모를 개 한 마리가 서성대기 시작했다. 잔뜩 움츠린 모습에 꼬리는 사정없이 안으로 말려 있는 걸 보면 공격적인 개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차가 다가가면 멀리 도망갔다가 지나가면 다시 나오고 그렇게 경계심 가득하게 길 위에서 두리번거리기만 한다. 처음엔 들개인가 싶어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들개치곤 야생화가 덜 된 거 같다. 목줄이 없는 걸 보면 누군가가 키우는 개인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저 자리에 버려진 건가.. 의문만 가득한 채 몇 번을 지나쳤다. 그러던 중 지난번에 절에서 만난 개에게 주고 남아 있던 개껌이 생각났다.


차 문을 열고 개한테 던져 주었다. 옆에 까마귀들이 득실대는데 까딱하면 뺏길 판이다. 그런데도 미동도 안 하고 눈치만 보고 있다.


"여보야, 우리가 보고 있어서 그런 가보다. 지나가보자"


그렇게 차를 움직이니 슬금슬금 다가가 개껌을 낚아채서는 안전한 수풀 옆에 자리 잡고 앉아서 즐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 뿌듯해서 캣맘들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고나 할까? 캣맘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살아있는 생명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그 마음이 순간 너무 이해가 갔다.


그날 오후 들린 다이소에서 개껌 한 봉지를 더 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비가 제법 내리는 날씨에 자연세차나 하자 싶어서 늘 하던 루틴대로 드라이브 길로 들어섰다. 세찬 빗줄기에 이런 날은 없겠지? 싶던 찰나 비를 쫄딱 맞은 채로 길 위를 헤매고 있는 그 녀석을 다시 만났다. 창문을 열고 인사를 했더니 슬금슬금 다가온다. 다이소에서 사 둔 개껌을 길 가쪽으로 던져 주었더니 조심스럽게 물고는 갓길 수풀 속으로 가서 먹기 시작했다. 고개만 빼꼼히 내민 채 말이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에 쿠로짱이라고 내 마음대로 이름을 지어버렸다. 진돗개 믹스견 같은데 주둥이가 시커멓기도 하고 갑자기 그냥 그 단어가 생각이 나기에 정말 내 마음대로 말이다. 어차피 목줄도 없고 견주도 알 수가 없는 아이이니 내 맘대로 이름 짓든 무슨 상관이겠나. 그렇게 독맘이 된 기분으로 그 아이의 안녕이 매일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다음 날, 다시 그곳을 찾았다.

늘 있는 그 근처 길 한 복판에 앉아서 우리 차가 보이자마자 벌떡 일어선다.


"이 녀석아! 거기 그렇게 있으면 위험하잖아!"


창문을 열었더니 더 가까이 다가와서는

'왜 이제야 왔냐? 목 빠지게 기다렸잖아'라는 표정으로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한층 가까이 다가온다. 개껌을 주니 머뭇거림도 없이 받아 들고는 길가 안전한 곳에 다시 자리를 잡고 한참을 바라본다.

'나 이제 너 알아. 잘 지내보자' 그런 느낌?

나를 기억해 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먹먹해졌다. 백미러로 보니 우리가 어느 정도 사라지자 개껌을 즐기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열흘이 훨씬 넘도록 쿠로짱을 만나지 못했다.


'어디 유기견 센터에 잡혀 갔을까?'

'원래 주인이 이제 목줄을 풀지 않고 집에서만 데리고 있는 건가?'

'혹시 개장수한테 끌려간 건 아니겠지??'

'설마...... 사고라도 난 거 아냐???'



별의별 생각을 다 해보지만 쿠로짱의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주변에 절이 많으니 그 어디선가 살고 있는 아이일 것이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쿠로짱이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거라고 빌어주기로 했다. 보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그동안 쿠로짱의 흔적 찾기에 실패했기에 별 기대 없이 그 장소를 지나가고 있었다.


"여보~~ 저기 발~~ 개발~~!!!" 남편이 손끝으로 가리키는데 내 눈엔 보이지 않는다.

"에이~ 나뭇가지 아니가?"

"아니다. 봐봐~~ 있네~~"


어디 어디~~ 나는 목을 있는 대로 빼고 녀석을 찾느라 몸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어머나~~ 얘야~~~"

1년 동안 못 본 친구를 만나도 이보다 반갑지는 않았을 거 같다. 건강하게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 그 생각만 들었다. 우리를 알아본 건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차 쪽으로 겁도 없이 다가온다. 그리고, 내가 차 문을 열어도 도망가지도 않고 나랑 눈 마주치기에 바쁘다. 개껌을 손에 쥐고 이리 와라고 불러봤지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하기사 몇 번 봤다고 지도 나도 덥석 친한 척하기엔 뻘쭘하다. 최대한 멀리 던져주니 후다닥 물고는 늘 가는 수풀 속으로 속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한참을 우리가 떠나는 걸 지켜보고는 개껌을 즐기기 시작한다.

어쨌든 너무 다행이다~상사병도 이런 상사병이 없다. 떠돌이 개의 안부가 이렇게 궁금해질 줄이야. 개껌을 좀 더 사둬야 할 것 같다. 간식도 좀 살까? 혼자 오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신이 난다. 유기견으로 신고하면 일주일 공고를 한 후에 입양도 가능하다던데 그건 지금 현실에서 너무 힘들겠지?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니 내가 이 아이에게 엄청 정이 들었나 보다. 정 붙일 곳은 어쩌면 이 떠돌이 개가 아니라 나인지도 모르겠다.


"내일 또 올게 쿠로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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