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말하는 내 장례식~쿨 노래가 흘러나오면 좋겠구나~
시어머니가 상태가 좋지 않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까지 걸리셨다. 음압병동으로 옮겨졌고 폐에 물이 차 시술까지 받아야 한다. 아무리 해도 잊히지 않는 그날이 자꾸 생각난다. 중환자실에서 시아버님을 떠나보냈는데.. 어머님은 제발 잘 견뎌주시길.. 평생을 무속신앙인으로 사신 어머님은 기독교식으로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아직 돌아가시지도 않은 분의 장례를 먼저 생각하는 게 불효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님을 마지막 말 한마디도 듣지 못하고 떠나보냈기에 시누가 미리 엄마와 의견을 나누고 결정했단다. 제발 조금은 더 먼 훗날의 일이 되길 바랄 뿐이다.
며칠 전[천 번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들-김여환]이란 책을 읽었다.
호스피스 병동의 의사로서 보고 느낀 점을 담담한 필체로 써내려 간다. 하지만, 책을 덮을 때쯤 묵직하게 와닿는 알 수 없는 느낌으로 며칠간 깊은 생각에 빠져 살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종이짝 같은 거라서 오늘은 살아있지만 내일은 어찌 될지 모르는 곧 터져버릴 것 같은 풍선 같은 삶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한 번이라도 겪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인간의 마지막 모습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예고 없이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이도, 긴 병으로 고생하다 마지막까지 아프다고 울부짖던 가족의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오늘 하루 잘 버티고 살아내는 일이, 그 평범한 하루가 너무나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말이다. 병에 걸리면 그나마 마지막을 준비할 수라도 있지. 갑작스러운 변고에 닥친 이들에겐 그런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으니 안타깝다고 생각했었다. 사고보단 병에 걸리는 편이 낫다고 말이다.
하지만,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음에도 본인의 병이 억울하고 지나간 세월이 야속해서 마지막을 준비하기보다 통증과 마음의 상처만을 가진 채 끝끝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이도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기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음을, 만약 그게 나의 일이라면 나 또한 원망과 상처에 싸여 하루밖에 없는 오늘을 아깝게 보내버릴지도 모른다.
이 책을 보면서 작년 동생을 호스피스 병동에 넣으며 죄책감에 시달리던 친구가 생각났다. 이 책에서 김여환 의사는 호스피스 병동은 죽으러 가는 곳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통증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친구가 동생을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시키고 울면서 전화했을 때
"아마도, ** 마음은 지금이 더 편할 거야. 더 이상 언니 고생 안 시켜도 되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이 친구에게 위로가 되었을까? 나 역시 그런 상황이 되면 친구와 똑같이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을까? 어떤 말이 그를 위로할 수 있단 말인가.
3년 전 2차 항암 치료를 받던 시아버지가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드라마에서나 듣던 전화를 받고 중환자실에서 시아버지의 임종을 맞이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는 청력에 기대 고생하셨다고 이제 더 아프지 말고 마음 편하게 놓고 훨훨 날아가시라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아들들은 정신없이 울기만 했고, 그 상황에서 어쩌면 내가 가장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남이라서가 아니라 이제 더 이상 아버님의 몸은 생물학적 기능을 할 수가 없었다. 약투입을 중단하면 바로 심장이 멈추어 버리는 상황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기억에 울음소리만 들려 드릴 수는 없었다. 항상 철저하게 준비하고 하루하루를 계획하고 사셨던 완벽주의자 시아버지는 자신의 마지막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셨다.
갑자기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매일 하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내 나이쯤 되면 어제까지 멀쩡하던 지인이 갑자기 쓰러져 유명을 달리하기도 하고 큰 병에 걸리기도 한다. 그런 소식을 전해 들을 때만 잠시 우리 가족은 건강해야 하는데 하다 말기가 일쑤다.
삶에 대해 미련이 많은 건 아니지만 막상 내가 곧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된다면 어떨까?
나는 지금 얼마큼 그 상황에 준비되어 있을까?
아이들에게 내 장례식은 하루만 치러달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상복도 입지 말고 내 사진은 검은 띠도 두르지 말고 최고로 환하게 웃고 있는 걸로 해달라고. 그리고, 내 장례식엔 가족 외엔 아무도 부르지 말라고 말이다. 가족들만 모여서 나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충분히 슬퍼하고 친절하게 마지막을 지켜달라고 말이다. 엄마의 덜렁거림을 떠올리며 깔깔 웃어도 좋고, 다시 보지 못할 엄마에게 애틋함이 있다면 실컷 울어도 좋다고 말이다. 남 눈치 보느라 아이고 아이고 할 필요도 없다.
내 마지막 모습이 어떨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최대한 슬프지 않은 장례식이길 바란다. 죽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과정이다. 살아온 세월 동안 즐겁고 행복했던 일만 기억해도 모자라다. 우린 꽤나 많은 즐거운 추억들이 있고, 나는 어디서든 가족들을 응원할 것임을 믿고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면 된다. 슬픔에 휩싸여 본인들의 앞날에 누가 되지 않기를. 충분히 슬퍼하고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좋았던 기억들만 곱씹으며 살길. 내 장례식장엔 곡소리보다 내가 좋아했던 노래가 울려 퍼지면 좋겠다. 지금 생각엔 쿨이나 지오디의 밝은 곡이 좋을 것 같지만 좀 더 나이가 들면 트롯을 원할지도~훗~취향은 바뀌는 법이니까~
© brett_jordan, 사진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