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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아줌마 Nov 28. 2021

40, 시작하기 좋은 숫자야!

1. 자격증에 도전해보기로 마음먹다  #공인중개사 

큰 아이 5살 때 사표를 내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둘째를 갖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나는 전업 주부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둘째를 핑계로 현재까지 나는 전업주부 중이다. 아이들 엄마 모임을 즐기느라 초반엔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렇게 동네 아줌마들끼리 모여 수다 떠는 재미로 몇 년을 보냈나 모른다.

그런데.. 이게 슬슬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육아는 아직 미완성인 인간이라 모르겠고 보육만큼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큰 애가 6살 때 둘째가 태어났고 연년생으로 셋째까지 태어났다. 독박 육아로 세 아이 다 키웠고, 아이들 없는 시간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던 것도 어느 순간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엄마들과의 모임이 즐겁지 않았고 의미 없는 수다와 쓸데없는 아이들 사교육 정보만이 내 교육관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러다가 나이만 먹겠구나.. 현실감도 강하게 몰려왔다.


나 엄청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나는 아무것도 없지? 

집 명의는 남편이고 자동차 두대도 다 남편 명의다.. 어라.. 생각해보니 내 명의는 렌털 중인 비데뿐이네.. 난 도대체 뭘 한 거지 그동안? 

물론 아이들 키우느라 엄청나게 바쁘게 살았다. 그 와중에 지척에 계신 시부모님 병시중도 했다. 아침저녁으로 부르면 달려가고 병원에 모시고 가고 아이들 보여드리러 매일 그렇게 왔다 갔다 했으니 바빴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 하지만 뭔지 모를 공허함이 가득했다.


그즈음 부동산 시장이 들썩거리고 있었다. 그전부터 들썩거렸겠지만 아이들 키우느라 눈 돌릴 여력도 없었다. 아줌마들 모임에서 요새 거기 핫하다며? 주워듣기 시작했고 열심히 찾아보기 시작했다. 어렵게 장만한 36평 아파트 대출금도 다 갚았겠다.. 아이들 더 크기 전에 집 평수도 좀 넓혀서 가고 싶고, 조금 더 핫한 아파트로 이사도 가고 싶었다. 마침 아랫동네엔 재개발 바람이 불고 있었고 남편을 꼬시기 시작했다.

"여보야, 3천만 원만 있으면 딱지 하나 살 수 있단다. 그거 하나 사두자"

"돈이 어딨노?"

"대출 좀 받으면 되지~"

"싫다. 대출 지긋지긋하다.."


하긴... 외벌이로 대출 갚느라 고생했지.. 첫 아파트도 내가 우겨서 대출 70프로로 샀으니까.. 그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눈앞에 떡밥이 나 먹어줘요 하는데 답답할 노릇이다. 몇 날 며칠을 꼬드겼지만 재테크 쪽은 완전 문외한인 남편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비상금이라도 좀 만들어 둘 걸.. 어디 가서 좀 빌릴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포기해버렸다. 대출을 받아서 재테크를 한다는 걸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은??? 땅을 치고 후회하는 남편이다..


애들은 계속 크고 이 집 하나만 가지고 아이들 교육에 노후 대비까지는 어림도 없다. 주식도 하면 큰일 난다고 생각하는 남편이다. 그렇다고 이제 5살인 막내를 두고 일을 하러 가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내가 부동산을 공부해보자. 일단 흐름을 알고 전문적으로 설득하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직장인인 남편은 언제 회사를 그만두게 될지도 모르고, 장기 대비책으로 보험처럼 자격증을 따 두자. 막내가 초등학생이 되면 일을 해도 되지 않을까.. 나중에 남편이랑 같이 해도 되겠지?..' 

그래 이거다 싶었다.


그렇게 나는 내 나이 40이던 해에 국가자격증에 도전하기로 했다. 저질러야 한다. 평생회원으로 붙을 때까지 인터넷 강의를 들을 수 있는 회원권을 결재했다. 그때가 6월... 시험은 10월 말인데.. 저지르고 나니 잘못했구나 싶었다.. 하지만 되돌리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붙을 때까지 해보지 뭐.. 이 얼마나 무식한 생각이었는지 나는 일주일 안에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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