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정아줌마 Nov 24. 2021

타버린 크로플

딸이 아침 식사로 크로플을 주문한다. 냉동 생지를 와플 기계에 넣고 눌러주기만 하면 끝인 아주 간단한 메뉴다. 기분 좋게 오케이를 외치고 냉동실 문을 열어서 냉동 생지를 꺼내 와플 기계에 넣고 어젯밤부터 계속 흥얼거리는 노래 한 조각을 입에 담아 본다. 3분 타이머를 돌리고 꺼냈는데.. 조금만 더 구울까.. 그냥 이 정도로만 할까....

'찰나'다.. 정말 아주 조금만 더 굽기로 결정한 그 찰나의 선택에 사랑하는 딸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크로플은 이별을 고한다..

크로플이야 다시 구우면 되지만, 내 인생에서 무수히 반복되었던 그 찰나의 순간들이 지금 내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본고사가 있던 날, 아빠에 대한 원망이 극도에 찼던 그 찰나만 참고 시험을 쳤더라면 나는 더 좋은 대학을 갔을지도 모른다. 전화 한 통만 더 해봤더라면 사기도 당하지 않았을 거고, 할까 말까 고민하던 순간에 그냥 사랑합니다 한마디 했더라면 돌아가신 시아버지께도 조금 덜 미안할지도 모르겠다. 터널을 탈까 도시고속도로를 탈까 와 같은 앞으로도 엄청나게 많은 찰나의 선택이 내 앞에 놓이겠지.. 가보지 않은 길은 모르는 거고 그 찰나의 선택 또한 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그 무수한 찰나의 선택들이 지금 나에게 다른 의미로 '경험'이란 것을 만들어 주었으니 쌤쌤인 건가...

크로플 하나 태워먹고 아침부터 아줌마는 생각이 많아진다.

작가의 이전글 잔소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