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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아줌마 Sep 12. 2023

김씨 아재의 새로운 취미생활

취미생활은 역시 장비빨이제~~

이사하고 가장 좋은 건 집에서 바다가 보인다는 것이고 그다음은 지밖에 모르는 남편이 새로운 취미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게 무엇인고 하니 바로 청소!!!!


같이 산 지 20년이 다되어 가지만 자기 몸뚱아리 소제(掃除)에만 신경 쓰던 양반이다. 자기 몸, 자기 옷, 자기 모자, 자기 물건만 깨끗하면 된다는 주의라 자기 옷 세탁을 부주의하게라도 한 날이면 하루 종일 잔소리와 짜증에 참을 인을 새기며 못 들은 척 마음을 다스리기도 했다. 안방을 거의 혼자 쓰는데 침대 주변에 널브러진 쓰레기를 치우는 것조차도 하지 않았다. 분리수거, 청소, 빨래는 물론이거니와 웬만한 남자들이 하는 집안일(대형쓰레기 내려놓기, 전구 갈기, 못 박기 등)도 다 내가 해 왔다. 


그래서 불만이냐고? 아니 나는 기대가 없어서 불만도 없다. 그럼 그렇지 내가 치우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잔소리해 봤자 돌아오는 건 같은 말이라 할 필요도 없고 말이지. 


몇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에도 이사가 마무리되면 몸만 달랑 들어왔기 때문에 이사준비며 이사까지의 여정을 알 리가 없었다. 이전에도 나는 혼자 이사를 했고 청소를 했고 짐정리를 했다. 심지어 김씨 아재는 이사 당일 호텔에서 하룻밤 묵고 온 적도 있다. 번잡스러운 거 딱 싫어하는 사람이라 내가 먼저 권하기도 했지만 내 입장에서 손 하나 까딱안하고 누워있을게 뻔한데 거추장스러울게 뻔했다. "그럼 그럴까?" 흔쾌히 받아들인 김씨 아재.. 어쨌든 나도 편하게 밤새 짐정리를 했고 그도 만족하며 이사한 집으로 귀가했으니 그럼 됐지 뭐.


하지만, 이번 이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와 함께하면서 거의 셀프로 진행했다. 힘들었겠네 혼자 하느라 이렇게 힘들 일이가를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모른다. 사람은 역시 지가 직접 해봐야 안다. 한 달 정도 오가며 집에 애정을 쏟더니 많이 깨달았는지 갑자기 장비를 좀 사야겠단다.


"왜? 내가 사달란 때는 없어도 된다며? "

"아이다! 청소도 장비빨이다. 있어야겠다"


그렇다. 이사하면서 셀프로 입주청소를 하며 좋은 장비가 필요하다고 깨달은 것이다. 최신 청소기를 사서 아침저녁으로 돌리더니 또 다른 장비가 필요하단다.


"특가로 샀는데 기대된다"

"뭘 샀는데?"

"그런 게 있다~~~"


너무나 신난 목소리. 나 원 참. 이 인간이 뭘 또 산 거지? 서당개 주제에 댓글에 속아서 쓰잘데기 없는 물건을 산 건 아닌가? 걱정할 새도 없이 하루 만에 도착한 의문의 장비!

자동으로 유리창 닦는 청소기란다. 


"이런 걸 왜 샀노? 이게 잘 닦이겠나?"

"있어봐라. 내가 신세계를 보이주께. 청소도 장비빨이데이~"


그러더니 척척 걸레를 끼우고 전선을 연결하고 안전고리를 끼우더니 유리창에 딱 붙여 닦기 시작하는데

오~~~ 이거 물건이네~~~~ 감탄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기계가 나보다 더 잘 닦는 거 같다. 그렇게 거실과 안방 아이들 방까지 거의 서너 시간 동안 공들여 유리창을 닦는 남편을 보니 우습다. 


일회성 이벤트로 끝났더라면 '그럼 그렇지 이기적인 인간아' 하고 다시 내 차지가 되었을 청소다. 그런데 두 달이 다 되어가는 동안 나는 저 두 기계의 사용법조차 제대로 모를 정도로 김씨아재가 기회를 주지 않는다. 즐거워하면서 하는 걸 보면 취미생활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나에겐 너무나 하기 싫은 집안일이었는데 재미있어하니 감사할 일이다. 좀 오래만 가주면 좋겠다. 취미는 계속 바뀔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잘한다고 고맙다고 치켜세우지도 않는다. '이제 당연히 니가 할 일이다' 그렇게 보이지 않게 마음속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다. 


그나저나 저 인간은 왜 자꾸 기대하게 만드나 몰라. 기대하지 말자 기대하지 말자..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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