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이 제격이지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핑곗거리는 여러 가지 일터.
지난주엔 비가 오기에 등산을 하고 왔고 이 날은 날이 너무 좋아서 산에 올랐다. 비가 오는 날은 미끄럽기도 하고 우산을 쓰기도 애매하고 여러 가지로 상그럽다. 다행히 보슬보슬 내리는 비여서 큰 탈은 없었다. 눈앞에 움직이는 해무를 바라보며 신비로운 기운을 느껴보는 것도 좋지만, 역시 맑은 날 가는 등산이 제 맛이다. 어제 하루 내가 먹고 마신 나쁜 것들이 초록내음으로 다 씻겨 내려가는 듯하다. 두 팔 벌려 가슴을 열고 맑은 공기를 몸속 깊숙한 곳까지 넣어보려 애써본다. 그러다 날파리떼에 놀라 나자빠지기도 하지만, 어쩌면 한두 마리는 이미 입속으로 들어갔을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그런 사이 정상은 가까워오고 늘 가는 곳 늘 보는 곳이지만 특히 이렇게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엔 지금 여기 내가 서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든다.
등산을 시작한 지가 1년 가까이 되어 간다. 그전엔 무조건 삼보탑승 주의자였던 남편도 이제 제법 산악인(?)의 폼이 나기 시작하고 나 또한 어린 시절 아빠 따라다녔던 새벽등산에 질릴 법도 한데 몸이 기억하는지 산에서는 날다람쥐가 된다. 그렇게 땀 한 번 쫙 흘리고 나면 내가 신선이고 여기가 극락이다. 인생 뭐 별거 있나 잠시 생각하다가 하산하면서부터 다시 현실임을 깨닫기는 하지만 잠시 나에게 주는 이 땀 한 방울이 더없이 감사하다. 조급증을 버리고 미리 걱정하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거부터 하나하나 이루어내다 보면 언젠가는 실체에 닿아있겠지. 불안한 마음보다 잠시 내려놓고 인생의 반환점에서 어느 쪽으로 방향을 틀지 고민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쫄 필요도 없다.
예전에는 남편의 여름휴가와 추석 아이들의 방학 등으로 계절 가는 걸 알았다면 요즘은 꽃이 피고 나뭇잎이 바뀌는 것으로 계절을 가늠한다. 달력이 아니어도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있구나. 이제 곧 이 나무들도 벌거벗게 되겠지. 나도 모르는 감탄사를 내뱉어 가며 말이다. 나뭇잎 하나도 허투루 볼 수 없다. 그 나뭇잎도 피고 지고 떨어지기까지 치열하게 살아내지 않았나? 낙엽이 되어 다시 자기가 태어날 나무에 영양분을 제공하는 그 한 살이마저도 대견하다 싶다.
저녁 무렵 근처 공원에 아이들과 산책을 나왔다. 크루즈선이 하룻밤 정박하고 곧 떠날 모양이다. 이제 곧 뿌뿌~~~ 기적 소리를 내며 출항을 알리겠지. 환상적인 날씨에 취하고 크루즈에서 뿜어내는 불빛과 부내에 취하고, 여러 가지로 술이 땡긴다. 정지아 님의 책처럼 오늘은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다. 고작 날씨와 크루즈에 취하는 나라는 아줌마. 갱년기 시작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