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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아줌마 Jan 22. 2024

달팽이의 글쓰기

또 상처받았습니다

사진 출처 © anthonytran, 출처 Unsplash




"아이고 많이 기다리셨죠?  그동안 별일 없으셨어요?"


정신과 담당 선생님이 묻는다. 그냥 약만 좀 주시면 안 되나 싶은데 상담이 없음 약처방을 안 해주신다. 약이 필요한 불면증 환자에게 그 시간은 참으로 길다.


"어.. 아.... 아니요. 별 일 없.. 지 않았어요.."

"무. 슨. 일. 이. 있. 으. 셨. 어. 요?


격앙되지도 않고 침울하지도 않다. 그냥 덤덤하게 물어보신다.


그래서인지 조금 용기가 났다. 그냥 누가 들으면 뭘 그런 걸 가지고 고민이라고 쳇.. 할지도 모르는 아주 사소한 비밀을 속삭이듯 말하기 시작했다.


"지난주에 남편이랑 싸웠어요"

"왜요? 무슨 일루요?"

"어플로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화를 냈어요. 듣기 싫다고 신경에 거슬린다며"


"네???"


아이들 영어 공부를 따로 봐줄 수 있는 능력까진 되지 않기에 인강에 맡기고 매일 단어 시험만 내가 직접 챙겨주고 있다. 그런데 이게 중등으로 넘어가니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나는 그새 까막눈이 되어 있었다. 나름 영어 선생님께 촉망받던 학생이었는데..에이... 지난 시간 후회한들 소용도 없고 배우는 거 싫어하지는 않는 나다. 마침 베프가 꽤 괜찮은 어플을 소개해줘서 매일 조금씩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어플이라는 것이 언어를 배우는 어플이다 보니 듣기와 말하기는 기본이고 어플의 특성상 맞고 틀렸을 때의 효과음이 있다. 내 딴엔 죄대한 줄여서 공부 안 하는 척하고 지냈는데 화근은  차 안이었다.

잠시 남편이 운전석을 비웠고 멀뚱멀뚱 있기 싫었던 나는 3분짜리 영어 앱을 틀고 하고 있었다


"아 진짜 그거 좀 안 하면 안 되나 신경 거슬려 돌아버리겠다"

"??........???????"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밤새 티브이를 틀고 자는 남편이다. 소리 좀 죽여달래도 자기는 안 들린다며 무시하기 일쑤였다. 요즘 그래도 방문을 닫고 보기에 많이 달라졌나 싶었는데. 아놔 개뿔(웃기고 있네)


그 이후 나는 말문을 닫았다. 이 이기적인 유전자는 답이 없다.. 내가 왜 내 시간 들여 알파벳을 외우고 발음을 연습하고 하기 싫은 공부를 하는지 이해조차 못하는 인간이 답답하기만 했다. 아이들 앞에서 발음하나 제대로 못해 사전을 찾아대는 엄마의 모습이 부끄러운걸 그는 알까? 내가 이 나이에 다시 영어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자체가 기특하다 이해해 주고 격려해 주면 안 되는 걸까?


"그래서 그 뒤론 어떠셨어요?"

"곧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제 비위를 맞추려는 건지 제가 좋아하는 음식도 사주고"


"풀리셨어요?"


그 단출한 물음에 눈물이 터졌다. 남들도 알아주는 그 마음을 왜 이 사람은 모를까? 그깟 먹는 거 나부랭이로 풀리지 않는다는 걸 20년 사는 동안 모르는 이 남자를 도대체 나는 어디까지 이해해야 할까?


요즘 계속 무기력하다. 그래서 어떤 일에도 감흥이 없다. 사실 병원에서 우울증 검사할 때마저도 나는 거짓말로 체크했다. 나는 우울한 사람이면 안되니까 말이다. 그냥 잠이 안 올뿐.


그 뒤로 이어폰을 끼고 앱을 본다. 오늘도 단어 시험을 치다가 모르는 단어 발음 때문에 사전의 힘을 빌렸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엄마도 모르는데 니들 대단하다며 웃어넘겼지만 내 자존심은 바닥을 친다.


한참 단어 시험 중인데 어슬렁거리며 왔다 갔다 하더니 자기는 하나도 모르겠다며 옛날에 어찌 무역회사에 다녔는지 기억도 안 난단다. 지랄도 염병이다.


"***님. 감정을 자꾸 감추면 안 돼요. 말씀하셔야 해요"


'그걸 내가 모르면 이렇게 살까요 선생님? 벌써 이혼했겠지요! '


관계마다 정답은 없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느낀 점은 있다. 평등한 인간관계? 우리는 아직 멀었다.

어느 한쪽의 추가 기울어야 무리 없이 돌아간다. 나만 아니라 꽤나 많은 곳에서 추의 평형은 한 쪽으로 기운다. 우리집만의 얘기는 아니라는 말이다.


평등? 개나 주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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