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좋긴 좋다.
"엄마, 감독관 선생님이 내가 답안지 내니까 고생했다며 웃으셨어요. 힝. 다시는 안 칠래요."
"왜 웃으셨을꼬?"
"내가 문제 풀면서 한숨을 엄청 많이 쉬니까. 또 내 사진 보고도 빵 터지시고. 힝."
사진.. 그렇다. 집 복도에서 자세만 잡고 급하게 찍다 보니 조명도 없고 빙구미 뿜뿜으로 나오는 바람에 나도 보고 '이 사진 아들의 흑역사가 되겠는걸' 했었다. 그래도 어쩌랴 시험 때문에 돈 써가며 사진 찍긴 그렇고, 에라 모르겠다. 등록해 버렸지 뭐. 처음 본 한국사 시험은 나도 어려웠다. 통과나 할 수 있으려나. 초 6에 맛본 한능검 심화니 쉬울 리가 없다.
"엄마도 너무 어렵더라. 너 그거 몇 번 했어?"
"저는 3번요."
"나는 1번. 둘 중 하나는 틀렸겠네. 하하. 아니다. 둘 다 틀렸을지도."
"어쩔 수 없죠. 뭐."
나는 시험 치기 이틀 전부터 감기증상으로 고생한 터라 아침에 먹은 약기운이 슬슬 떨어져 가는 탓인지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런데, 뒷좌석에 앉은 아들이 혼자 뭐라 뭐라 중얼중얼 거린다.
"뭐라고?"
"아니~~~~ 제가요~~~~~비록 이번 시험은 통과를 못 할 것 같긴 하지만요. 노력은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맞지, 노력했지. 아마, 3일?"
"아니거든요. 일주일은 했어요."
'그래, 이 녀석아. 문제 하나 풀고 게임 한 시간 하고, 그래 일주일 했지.' 속으로만 되뇌며
"그래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 거 같은데요 아드님?"
"아니~~~~ 그니까, 노력보상 이런 거 없나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뇨.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요."
"그럼?"
"편의점 기프트카드 사주세요"
시험 치면 누나랑 편의점 플렉스를 하고 싶다고 말했었다. 만오천 원짜리 기프트카드면 된다는데 안 사줄 건 또 뭔가 싶었다. 기프티콘으로 주면 안 되냐니까 굳이 가서 사야겠단다.
'고집은 더럽게쎄요. 하여튼, 아빠 같으니라고. 쳇.' 오늘 길에 편의점 앞에 잠시 주차하고 같이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내가 생각한 기프티콘이 아니었다. 구*플레이... 하...........
"만 오천원짜리면 돼요. 더 이상은 필요 없고. 다시는 안 살 거예요. 약속해요."
다음 달이면 생애 첫 수학여행을 가는 아들. 가는 차 안에서 친구들이랑 하기로 한 게임이 있는데 아이템이 없다 보니 매일 꼴찌라며 '한 번만, 사 주세요'라는 애달픈 눈동자로 얘기하는데 안 들어줄 수가 있나. 마지막이라는 약속을 받고 집으로 왔다. 대충 진통제 한 알을 털어놓고 시험 보고 온 가방은 처박아둔 채 누워 있는데 아들이 볼멘 표정으로 왜 안되는지 모르겠다며 곧 울 것처럼 얘기한다. 등록은 했는데 게임머니가 활성화가 안된다나 머라나. 돈 주고 샀는데 안된다는 말에 벌떡 일어나 여기저기 검색을 해보기 시작했다. 아놔. 우리 아들 핸드폰은 아이폰이었던 것이다ㅜㅜ 카드를 자세히 보니 안드레이드용이라고 버젓이 쓰여있고, 심지어 아이폰은 구글 플레이카드로는 안된다는 친절한 블로거분들의 설명을 보고 나니 이런 젠장....... 아이는 시험 치고 와서 종일 뒹구르르 게임의 세계에 빠질 낙으로 왔을 텐데.. 마음이 급해진 나는 후다닥 신용카드로 만오천 원을 결제해 주고 나서야 아들의 백제의 미소 불상같은 표정을 볼 수 있었다.
현질은 위대했다. 3개월 동안 꼴찌를 못 면하던 아들은 어느새 랭킹이 올라가 하루종일 싱글벙글이다.
'돈이 좋구나. 좋아.'
돈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현실에서 없으면 비참해지는 돈. 죽기 전까지 이 친구와의 숙제에 매듭을 지어야 할 텐데. 브런치북 신청이나 해볼까? 에이, 언감생심이지. 매일 아침 브런치 작가님들 글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하는데 늘 나는 언제쯤 저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쪼그라들기만 한다. 일단, 병원부터 다녀와야겠다. 아프다. 주말 내내 아팠는데도 차도가 없다. 콧물 줄줄 흘리며 월요일 뭐라도 하나 시작하자 싶어 기록이라도 남겨본다. 세상살이 쉽지 않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