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정아줌마 Aug 26. 2024

우리 엄마와 남편의 엄마

비교는 사물을 정확하게 정의하게 한다.

비교( 比較)
둘 이상의 사물을 견주어
서로 간의 유사점, 차이점, 일반 법칙 따위를 고찰하는 일.

 신혼 초, 일에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남편은 하루 종일 일밖에 몰랐다. 같은 회사에서 근무를 하는데도 함께 퇴근한 적이 거의 없을 정도니까. 내가 남편보다 일찍 와서 밀린 집안일을 하고 저녁을 준비해 두면 남편은 밤 10시경 곤죽이 되어 들어와 허겁지겁 밥을 먹고 쓰러져 자는 날들이 일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생각보다 빨리 끝난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은 밥 말고 치킨에 맥주 한 잔 어떠냐고 말이다. 감사하게도 나는 꺼내던 식재료를 다시 냉장고에 밀어 넣고 그 당시 남편이 좋아하던 치킨을 미리 주문해 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치킨보다 10분 정도 늦게 도착한 남편은 씻고 먹겠다며 샤워하러 들어갔고, 사건은 그 사이에 일어났다.

 

 문 밖에서 똑똑똑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가보니 시어머니였다. 그녀에게선 술 냄새가 진동했고, 시어머니의 늦은 귀가로 화가 나신 아버님이 3층 문을 잠가두신 바람에 2층인 우리 집 문을 두드리신 모양이었다(3층짜리 주택 위아래에서 살았다).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 드렸다. 차려진 밥상에 놓인 치킨을 보시더니 "내도 좀 묵자" 하시며 거침없이 포장을 뜯고 날개 두 개, 봉 두 개. 목 하나를 눈 깜짝할 사이에 드셨다. 그리고는 "맛있네." 한 마디 남기고 홀연히 나가버리셨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마침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남편이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상황을 이내 알아차렸는지 소리 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남은 치킨과 어리둥절한 나. 그날의 이야기는 남편에겐 수많은 '엄마괴담' 중의 하나일 뿐, 어떻게 보면 그에게는 사실 별 일도 아닌 일일지도 모른다. 단지, 나에게 그런 엄마를 보여 부끄러웠을 뿐. 그녀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결혼한지 1년도 안 된 시점이었는데도 시어머니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경악한 게 한두번이 아니었는데 그의 성장시기는 오죽했을까 싶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치킨을 먹을 때 항상 날개와 봉, 목은 그에게 먼저 넘긴다. 싫어하는 엄마의 식성마저 닮은 남편.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건 우리 엄마의 배려와 관심, 때론 집착 같은 엄마의 사랑이다.

 

 남편이 그의 엄마와 친하지 않은 걸 처음에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 해, 두 해가 지나 시어머니의 과오를 더 알게 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목도하며 남편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알아채기 시작했지만, "어떻게 엄마라는 사람이 그럴 수가 있지?"라는 근본적 물음은 해결되지 않았다. 모든 엄마는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줄만 알았다. 생선은 대가리만 좋아하고 짜장면은 싫어해야 했다. 그리고, 항상 자식이 또는 남편이 우선인 줄만 알았다. 내가 가진 모성애란 가치관은 그래야만 하는 거였고 당연한 것이었다.

 우리 엄마는 예나 지금이나 가족이 먼저다. 내가 애 키울 땐 당신이 봐줄 테니 그 사이 꼭꼭 천천히 먹으라고 하셨고, 지금은 손주들 생선 발라주시느라 늘 당신의 식사는 뒷전이다. 평범한 우리네의 엄마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엄마 밑에서 자라 온 나로선 이기적인 시어머니의 행동은 어차피 남이라는 전제하에서나 버틸 수 있는 그것이었지만, 그밑에서 자라 온 남편은 얼마나 많은 상처와 아픈 기억들과 함께 하고 있을까? 그가 나르시시스트인 것도 나에게 모성애를 바라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도 한다.

 

 언제였더라? 큰 애가 네댓 살쯤 됐을 땐가? 초복인지 중복인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하여튼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미 예상했다. 또 닭 먹으란 얘기겠지. 아니나 다를까,

"복날인데 닭 한 마리 먹어라. 김서방 힘든데 든든하게... 엄마가 저번에 준 마늘 있잖아. 그거 남해마늘이다. 많이 넣고 푹 고아서 백숙처럼 해서. 나가서 먹는 거 안 좋아하잖아."

"엄마, 우리 백숙 그런 거 안 먹는다. 닭은 기름에 담가야지 물에 담그면 맛없다."

"지랄한다 문디. 삼계탕은 김 서방 열 많은데 삼 넣고 번거로우니까 그냥 닭 한 마리 푹 고아서... 그게 몸에 얼마나 좋은데, 여름엔 먹어줘야 된다."

"에이, 무슨 그런. 아무거나 먹으면 되지."

"성의없구로. 맨날 안 먹는다고 안 하면 안 된다. 오늘은 한 번 해봐라. 안 어렵다. 쉽다."

우리 엄마는 내가 하기 싫어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백숙을 싫어하는 이유>에 대한 부연 설명을 결혼하고 처음으로 덧붙여야 했다.

"그게 아니고, 김 서방이 백숙을 싫어한다."

"참말로, 그걸 왜 싫어하노?"

"자기 엄마가 집에서 계모임 하는 날, 놀러 오는 친구들한테 애들 잘해 먹이는 거 보이려고 해준 거란다. 그래서, 백숙 안 먹는다."

한동안 우리 엄마는 내 말을 이해 못 하신 거 같았다.

"그런 날 아니면, 반찬이 없었다는데? 왜곡된 기억인 줄 알았는데 시누도 똑같이 말하는 거 보면 맞는 말인 거 같기도 하고."

한참 말이 없던 엄마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까, 작년에 너거 시누 결혼식 날, 왜 스테이크 나왔잖아. **할머니가 한 조각 잡숫드만 김서방한테 접시를 휙 밀더라고, 내하고 너거 동생하고 둘이 순간 눈이 마주쳤다이가."

"그래, 엄마. 한 조각 맛보고 맛없으니까 니나 무라하드라. 엄마는 먹기도 전에 손녀 더 먹일려고 덜어줬잖아. 김서방이 그날 얼굴이 달아올라가지고. 사람들 많으니까 화는 못 내고."

그날 이후 우리 엄마는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을 더 잘 챙겨주신다. 그럼 남편은 장모님이 해 주시는 건 다 맛있다며 잘도 먹는다. 그러면서 장모님이 자기 엄마였으면 진즉에 판검사 됐을 거라나.

"아니, 이 양반아. 나는 당신 장모님 밑에서 태어난 딸인데 당신 와이프밖에 못 하고 있다." 그렇게 웃어넘기지만, 둘 다 다른 생각으로 씁쓸했을 것이다.

 

 엄마라고 다 같은 엄마는 아닌가 보다. 우리 엄마는 아빠나 딸들이 감기만 걸려도 배에 파뿌리에 생강을 넣어서 끓여서 먹인다. 하지만, 우리 시어머니는 아버님이 암수술 후 퇴원하고 오셨을 때에도 편의점 도시락을 사 오신 양반이다. 내가 퇴원수속을 하고 모셔오느라 정신이 없어서 미리 준비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적어도 밥은 해두셨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밥도 없었다. 그 길로 장 봐서 반찬 해다 드리며 처음으로 시어머니에게 '밥이라도 좀 해두시지'라고 한 마디 했다. 어쩌면 모성애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이에 대한 공감이나 배려자체가 없는, 정말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인지도 모른다. 내가 우리 엄마에 대해 격하게 감사하게 되고 죄송하게 된 데는 시어머니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엄마들은 다 우리 엄마 같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극단적인 비교대상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엄마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가지게 된 셈이다. 본인의 즐거움을 위해 한평생 밖으로만 도셨던 시어머니와 자식들을 위해 밖으로 일나가야 했던 우리 엄마. 이런 극단적인 비교대상을 또 다른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도 어쩌면 내 운명일지도 모른다. 20대에 사춘기를 앓았던 나에게 적어도 더 늦지 않게 엄마에 대한 감사함을 깨우쳐 주려는 뜻이 있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엄마의 감사함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은 채 어려웠던 어린 시절에 대한 원망만 주절주절 늘어놓고 있을지도...

 

 몇달 전, 시누와 긴 통화를 한 적이 있다. 지난 해 나와 남편이 집에 쓰러져 있던 어머니를 하루 만에 발견해 병원으로 모신 적이 있었다. 그 이후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시다 지금은 시누가 집 근처 병원으로 모셔셔 곁에서 지키고 있다. 시누에게도 좋은 엄마는 아니다. 남자에게 엄마라는 존재보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 바라보는 엄마에 대한 느낌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도 시누에게 그녀의 엄마는 보통의 친정엄마와는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미워하지 않기로 했으며, 신앙심으로 극복하고 용서했다고 했다.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도 그녀의 이타적인 성격이 지난 아픔을 극복한 모양이었다. 또한, 시누의 그 말은 나에게 아직도 엄마를 용서하지 못한 내 남편에게 원초적인 모성을 전달해야 할 무언의 압박으로 다가왔다. 신앙을 대신해 그에게 엄마를 용서할 기회를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무감 같은 것 말이다.

"엄마가 오빠한테 사과하고 싶어해요."

"어머니가요? 먼저 손 내밀어 주시면 좋을텐데... 아가씨, 오빠 위해 기도 좀 해주세요. 그에게 미움과 원망이라는 감정이 없어질 수 있도록." 나와 시누는 한 시간가까이 그녀의 오빠이자 나의 남편을 위해 축복하고 기도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엄마에 대해 애기하길 꺼리고, 그의 어머니는 나에게만 한 차례 전화 했을 뿐이다.

 우리 엄마는 내게 늘 말한다.

"그래도 엄마 아이가. 김서방한테 잘 말해 주라. 나중에 돌아가시고 후회안하구로."

 "젊은 나이에 남편 배태우고 긴 시간 어린 애들 셋 데리고 힘들었겠다." 하다가도, "어떻게 엄마라는 사람이 그럴 수가 있냐."며 분노한다. 그런 남편을 보면 나는 외나무다리에 오른 기분이 든다. 그냥 가만히 들어주는 것 뿐. 엄마복 많은 내가 할 수 있는 건 외로웠던 아이가, 엄마품이 그리웠을 아이가 둥지에서 벗어나 어엿한 성인이 되길 기다려 주는 것 뿐이다.

 가끔 날보며 부럽다고 한다. 그런 엄마 밑에서 자라서 좋겠다고.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그 말 끝에 항상 눈이 허공에 있는 걸 보면,  남편의 마음 속에도 그의 엄마가 왔다 갔다 하는거겠지. 원망이고, 분노이고, 그리움이고, 사랑이고, 안타까움이기도 한...

 오늘도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늦게나마 모성이 피어나시길. 그리고, 마지막이 오기 전에 용서하길.

 



 

이전 06화 아들! 다 필요 없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