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가수 임영웅!!!! 이제 그가 우리 엄마에게 기쁨이자 희망이다.
내년이면 일흔이 되는 양띠 우리 엄마. 노래 부르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당신이 힘들고 우울할때면 그렇게도 노래방에서 노래를 불렀단다. 때론 같이, 때론 혼자. 물론, 그로 인해 귀가가 한두 시간 늦어지고 그것이 아빠의 의처증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지만, 좌우지간 우리 이여사에게 노래란, 눈물이요, 원망이요, 희열이요, 희망이요, 그야말로 삶 그 자체인 것이다. 주로 엄마의 유행가는 그 세대 어머님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트로트 쪽이다. 외가 식구들이 다 노래에 열광하는 분들이라 모처럼 만나 노래방에라도 가면 매번 마이크 점유사건이 터졌고, 이제는 합리적으로 방 두개를 적절히 분배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신다. 처음 그 광경을 봤을 땐 어이가 없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양반들이 스테이지에 오른 가수처럼 마이크를 끝에서 끝으로 잡고 인사를 한 후 본격적인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최소 5곡 이상을 연속으로 예약해 둔 지라 메들리를 이어가고, 다음 순번의 가수는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남은 마이크로 화음을 넣고 있다. 나와 사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뿐이었다. 엄마가 트로트만 들으면 흥이 나는 반면에 나는 어릴 때부터 그 한스러운 멜로디와 꺾임이 체질에 안 맞았는지 엄마가 트로트를 들으면 방문을 닫거나 밖에 나가버리고는 했다. 지금도 산에서 트로트를 틀고 열심히 등산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이어폰이라도 좀 끼시지라는 말이 목구녕까지 치고 올라오지만, 그가 엄마 같아서 그냥 모른 척 지나치곤 한다.
언제부터인가 트로트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돌풍을 일으켰다. 많은 스타들을 탄생시키고, 그들을 바닥에서 상류층으로 끌어올려 주었다. 지금은 좀 잠잠해졌나 싶었는데 이젠 한일가수들까지 트로트로 열전을 벌이고 있다니, 이렇게나 트로트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단 말인가. 아직도 너바나와 비틀스가 좋은 나 같은 사람은 글쎄... 죽을 때가 다 되어도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엄마에게서 이상징후가 발견된 건 트로트 경연 1세대라고 부르는 이들이 등장하면서부터이다. 엄마는 수시로 딸들과의 단톡방에 자연 동영상이나 건강상식들을 보내주는데 그녀의 노력이 무색하게 세 딸은 읽씹의 달인들이다. "오~~ 좋네." 또는" 알았어. 그렇게 할게." 등의 간단한 리액션만으로도 엄마를 보람차게 해 줄 수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또? 하는 물음표에 결국은 못 본 척하고야 만다. 그렇게 보통은 건강상식들이 주를 이루는 엄마의 메시지가 어느 순간부터 노래동영상으로 바뀌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고? 아이돌 경연대회에 이골이 난 나는 TV에 대결, 경연 이런 것만 붙어도 채널을 돌린다. 동영상 밑에 부연한 엄마의 설명을 보자 하니 이번에 트로트대회를 하는데 이 친구가 너무 마음에 든다며 자기는 이 사람을 응원할 거라나 뭐라나. 그러면서 니들도 참가하라는 강압적 분위기! 이 할매가 가리느까 와 이랄꼬? 싶어서 동영상을 열어 노래를 들어 보았다. '트로트 부르게 안 생겼는데?' 일단 인물은 합격. 제목은 지금 생각이 안 나는데, 트로트인데 내 심사가 꼬이지 않는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묘한 매력이 있었다.
"봤나? 들어 봤나?'
성질 급하기로 적어도 부산 바닥은 씹어드신 우리 엄마. 동영상 재생 시간보다도 빨리 전화를 하셨다.
"전화해서 제대로 못 들었다이가. 막 듣고 있었는데."
"꼭 들어봐래이. 나는 야가 1등 한다고 믿는다. 어쩜 이래 노래를 잘 하노. 기럭지도 길쭉길쭉 하이."
"알았다, 알았다. 다시 들어 볼게."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보니 노래가 좋은 건지. 그 이의 기럭지가 좋은 건지. 그러고 보니 엄마는 예전부터 댄디하고 말쑥한 스타일을 좋아했다. 외할아버지가 소개한 젊은 시절 아버지가 딱 그랬으니까. 결혼생활 이후로 '남자는 얼굴 볼 거 없다. 얼굴 뜯어먹고 사나'로 이상형의 기준이 아쉽게도 전향되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사위들이 다 후자쪽인 것은 엄마의 잘못도 있다(하하). 하지만, 그녀의 연예인은 외모가 중요했다. 그리고, 노래도 훌륭했다. 그가 바로 임영웅이다. 결국 그는 그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지난 주였나. 임영웅이 축구를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나 보다. 물론 나는 보지 않았다. 그리고, 뒷날 이여사는 아침부터 전화로 임영웅에 대한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어제 봤나? 참말로 잘하제. 안정환이 아깝다 안 하드나? 머스마가 몬하는기 음따. 얼굴도 우째 그래 잘 생겼노. 착하고, 예의 바르고. 어쩌고, 저쩌고, 영화도 나온다카대? 느그 동생한테 영화나오면 보이달라해야겠다. 집에서 볼 수 있제? 어쩌고, 저쩌고."
엄마 방 침대 옆은 조그마한 갤러리이다. 딸들의 어린 시절 사진이 있었고, 딸들의 결혼사진이 있었고, 그리고, 손주들의 사진이 있더니 이젠 임영웅 사진 밖에 없다. 내가 한 번 농담삼마,
"엄마, 그래도 자식들 사진 다 갖다 버리고 임영웅 사진만 붙여놓고 너무 한거 아이가."
"너거는 많이 붙여놨었다이가. 이제 영웅이만 붙일끼다. 우리 영웅이 참말로 잘 생겼제."
사물이든, 사람이든 열중하고 그에 심장이 두근거린다면 우리 엄마는 아직 이팔청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에 솔직한 우리 엄마. 100세 넘어까지 이렇게 사셨으면 좋겠다.
"감히, 임영웅 님께 부탁드립니다. 건강하고 좋은 이미지로 열심히 살아주세요! 건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