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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아줌마 Aug 22. 2024

아들! 다 필요 없어!

딸만 셋 우리 엄마의 항변

 우리 엄마는 형제 많은 집 막내아들과 결혼했다. 위로 형님 두 분과 나이 차가 많이 나다 보니 아빠와 큰 형님과는 거의 부자지간이라 보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큰 집에 아들, 아들, 딸, 작은 집에 아들, 아들, 딸, 고모집에 딸, 딸, 딸, 아들, 아들, 우리 집에 딸, 딸, 딸.

 앞서 말한 적 있듯이 우리 아빠는 조선시대 성리학자 뺨 여러 대 때릴 정도로 가부장적인 양반이다. 첫째 딸은 살림밑천이라며 웃어넘기고, 다음 자식은 아들을 바라며 첫 딸의 이름을 남자 이름으로 지으셨다. 우리 엄마는 연년생으로 아이를 가졌지만, 안타깝게도 아빠의 바람은 산산 조각난 채 딸아이가 태어났다. 어지간히도 미워했었나 보다. 누군가가 자신을 미워한다는 걸 태어나면서부터 알았는지 둘째는 예민하기 이를 데 없었고, 그런 예민함에 분노한 아빠는 아기 때부터 그렇게 미워했다고 한다(엄마는 그래서 둘째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다). 그에게 왜 그랬냐고 물으면 내가 언제 그랬냐는 말 밖에 들을 수 없으니 진실은 당한 사람과 목격자인 나나 엄마 정도나 알겠지. 아이의 성별은 남자에게 있음을 이제 우리는 어느 정도 상식으로 알고 있지만, 상식은 우리 아빠에겐 통하지 않으니 그의 똥고집에 이길 수 있는 건 세상천지에 없다. 99프로 확신한다.

 그렇게 둘째가 태어나고 3년 뒤에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낳은 아이 역시 딸이었다. 하지만, 웃긴 건 3년 새 마음이 바뀐 건지 이제 아들을 포기한 건지. 막내딸은 엄청 이뻐했다는 사실이다. 어릴 때 인형처럼 이쁘기는 했다. 딸 셋 있는 집 막내딸은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말이 그 아이 스무 살 때까진 인정! 이후 격변의 시대를 보내며 이제 아줌마의 길로 들어섰으니 과거의 모습은 과거일 뿐. 추억을 들출 때나 얘기할 뿐이지만 말이다.


 아빠의 입장은 그렇다 치고, 엄마는 어땠을까? 아들을 못 낳은 설움은 엄마에게 더 컸다. 할머니가 유독 막내며느리를 이뻐해서 아들을 꼭 낳아야겠다는 생각에 넷째까지 욕심냈던 엄마는 "아들 안 낳아도 안되나"라는 할머니 말에 셋째에서 멈추셨다. 그 많은 손주들 가운데 유독 우리 세 딸을 이뻐하셨던 할머니였다. 그래도 엄마 마음에 아들은, 없으니 서러운 명품 백 같은 느낌이었달까? 남들 다 있는데 나만 없는. 명절 때만 되면 며느리라도 있으면 음식이라도 같이 할 텐데(그렇게 하지마라 해도 명절이면 튀기고 볶고 찐다).. 한숨이 늘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두둥. 내가 막내아들을 낳은 것이다. 그때 우리 엄마의 기쁨이란, 로또 당첨 되면 그런 표정일까? 핸드폰엔 손자의 사진으로 도배가 되었고, 모임만 나가면 손자 자랑하느라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즈음 엄마 친구 중에 아들만 셋 있는 분이 계셨는데 아들들이 장가가고 나더니 집에 걸음도 안 한다고 속상해했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동갑인데도 우리 엄마는 타고난 멋쟁이에다가 딸들의 코칭을 받으니 날이 갈수록 세련미를 장착하고 나타났고, 그분은 갈수록 촌스러운 동네 할머니처럼 변해가니 친구분의 부러움이 극에 달했었나 보다.

"아들 새끼들 다 필요 없다. 니는 딸 많아서 좋겠다. 딸들이랑 통화도 자주 하제?"

"매일 하지. 딸내미들 돌아가며 아침저녁으로 전화온다이가."

"이 새끼들은 1년에 한 번 전화 올까 말 까다. 명절 때도 이제 오지도 않는다."

"우리는 밖에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같이 미용실도 가고, 딸이 최고다. 어쩌고 저쩌고."

그런 얘기를 한참 늘어놓는데 듣다 듣다 우리가 한 마디 했다.

"엄마, **이모 열받으라고 그랬나? 엔가이 하지."

"너희는 모른다. 가시나.  옛날에 내 아들 없다고 얼마나 무시했는지 아나? 아들 있으면 뭐 하니노. 기둥뿌리 다 뽑아가 사업한다고 말아먹고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아, 그래 말하면 우리도 다를 건 없는데."

"너거는 다르지. 엄마의 기쁨이다. 나는 딸만 있어서 너무 좋다. 여기 아들 하나 있었어봐라. 지금 너거처럼 사이가 좋겠나? 나도 올케 있지만. 오빠들은 장가가고 나니 다 소용없더라. 올케들은 저거 끼리 싸우고. 아들 다 필요 없다!"

그 얘기하며 한참을 웃었다. 엄마의 정신승리인지 아들 없는 설움을 손자 둘로(막내도 딸, 아들) 퉁치셨는지는 알 수 없으나 주위를 둘러봐도 딸은 엄마에게 필요한 존재임은 부인할 수가 없다. 나도 마찬가지니까.

 

 그렇게 미워하던 둘째 딸은 지금 아빠 엄마와 함께 산다. 미운 사람을 닮고 태어난다고 했던가? 둘째는 아빠의 외모와 성격까지도 판에 박은 듯 빼다 박았다. 누가 누굴 모시고 사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여하튼 지독히도 미워했던 둘째 딸의 세심한 케어로 회춘하고 있는 아빠. 딸에게 미안한 마음은 있는지 딸이 좋아하는 건 기가 막히게 알고 사다 놓으신다. 어릴 때 좀 그렇게 하셨더라면, 둘째의 자존감이 바닥이진 않을 텐데.  어찌되었든 미워하던 둘은 관계의 시작점에서 다시 출발했다.

 우리 엄마에게 딸은 어떤 느낌일까?  "우리 딸들이 최고제."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과연 그 속에도 같은 마음일까? 진심인지 스스로에게 거는 슬픈 주문인지. 후자가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는 하지만, 지난 세월 쌓인 응어리가 이제 와 풀리기는 할까? 지금도 밤새 당직하고 온 둘째 딸 먹이려고 밥상을 준비하고 계시겠지. 엄마에게 우리 세 딸은 언제쯤 이 빚을 다 갚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어려운 숙제같다. 평생 안고 가야 할 숙제를 일단 전화 한 통으로 시작해본다. "아이고, 우리 큰 딸 아이가."라는 첫 번째 문제에 "사랑하는 우리엄마 아인교."라는 답을 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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