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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아줌마 Oct 30. 2024

타로 상담사 꽃비

오늘은 예약자가 없다. 한동안 물 마실 틈도 없이 예약이 몰려들더니 하루가 통째로 비어 있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예약이 없는 날은 굳이 나가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아침 귓가에서 소리가 울렸다. “나가!”

그래서 나오긴 했는데 점심 때가 다 되어 가는데도 조용하다. 예약 전화도 없다. ‘괜히 나왔네. 일찍 접고 들어갈까?’ 하다가 카드를 펼쳐서 한 장 뽑았다. ‘운명의 수레바퀴’…….


 그녀는 타로 상담사 꽃비다. 

십 년 전, 스물두 살 봄, 남자 친구와 벚꽃 구경을 나섰다. 그 어느 때보다 화창했고, 봄바람은 적당히 그녀의 원피스를 아슬아슬하게 날려주었다. 이날 처음으로 남자 친구와 손을 잡았다. 만난 지 일주일, 풋풋한 이십 대 초반의 사랑이었다. 때 이른 개화 소식에 여기저기 꽃이 핀 나무 아래는 사진 찍는 커플들로 북새통이었다. 하루 종일 인파에 치여서인지, 남자 친구와의 만남에 긴장했던 탓인지 그녀는 그날 밤 고열에 시달렸다. 하루 정도 앓고 나면 괜찮을 줄 알았다. 이튿날이 되어도 사흘째가 되어도 그녀의 증상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한 달이 넘도록 엄마는 그녀를 데리고 병원이란 병원은 다 돌아다녔고, 제대로 된 병명을 진단해 주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정신과까지 찾아갔으나 예민한 성격이라 그럴지도 모른다며 신경안정제 정도만 처방해 주었을 뿐이다. 원인을 모르니 치료법도 없었다. “제발, 그것만은 아니어야 할 텐데….”엄마는 그녀 옆에서 한시도 떠나지 못하고 매일 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잠시 옛날 생각을 하던 중에 핸드폰이 울렸다. 

“혹시 타로 상담 지금 받을 수 있나요?”

젊은 남자의 목소리다. ‘운명의 수레바퀴…,’

“네, 방금 한 분이 취소하셔서요. 지금 바로 오실 수 있으신가요?”

“근처인 거 같아요. 바로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꽃비는 한참 생각에 잠겼다. ‘무슨 고민이 있을까?’ 만나보면 알겠지만, 그녀가 가진 특별한 촉은 심상치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CCTV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했다. 잠시 후, 상담실 벨이 울리고,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이런 곳은 처음이라는 듯한 몸짓으로 쭈뼛거리며 들어온다. 

“빨리 오셨네요. 여기 앉으시면 됩니다.”

꽃비는 그에게 자리를 권하고, 차 한 잔을 내주었다. 타로는 점성술이 아니다. 내담자와 상담자가 어느 정도의 신뢰가 형성되어야 제대로 카드를 해석할 수가 있다. 그래서 꽃비는 항상 예약 시간을 한 사람당 두 시간 정도로 넉넉하게 잡는다.

“천천히 드시고, 시작할게요.”


남자는 차향을 음미하며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꽃비는 그 남자의 생각을 읽어보려고 했지만, 읽을 수가 없었다. 보통은 내담자의 생각이 먼저 읽힌다. 그녀는 평범한 타로 상담가가 아니었다. 신들렸다고 해야 할까? 엄마마저도 딸의 고통스러운 모습에 신내림을 받는 게 어떻겠냐고 먼저 권했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온몸의 고통이 그녀를 힘들게 하면 할수록 자신을 더 강하게 매질했다. 악재가 넘치고 사건 사고에 휘말리는 상황은 아니었다. 유튜브에도 블로그에도 그런 고통을 겪다가 결국 무당이 되었다는 사연들이 넘치고 넘쳤다. 그 와중에 다행히 가벼운 신병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다니던 절에 가서 조상제를 지내고, 그녀는 신내림 대신 타로를 선택했다. 그러나, 신내림을 받지 않았는데도 그녀에게 전에 없던 이상한 능력이 생겼다. 마주 앉은 이의 짤막한 과거나 단편 단편의 미래들. 무당들의 그것과는 다른 촉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내담자들에게 보이는 것들과 카드 해석까지 더해 진심으로 그들의 고민을 공감했다. 꽃비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꽤 유명한 타로 상담가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이 남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십분 째 앉아서 차만 마시고 있다. 그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상담에 임할 자세를 보일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마음의 준비가 되면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

꽃비는 아로마 한 방울을 그의 손등에 떨어뜨렸다. 메이창 오일은 심리 안정에 도움을 준다. 

“이제 된 것 같아요.”

남자는 억양이라고는 없는 말투로 말문을 열었다.

“상담받고 싶은 내용은 어떤 건가요?”

“그러니까, 그게 제 운명을 알고 싶어요.”

운명이라, 너무 광범위하다.

“전체적인 인생의 길흉은 카드로 해석해 드릴 수는 있지만, 구체적으로 운명이라는 게 뭘 의미하는 건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예를 들면, 결혼이라든가, 직장이라든가.”

“전부 다요.”

꽃비는 눈을 감고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좀처럼 과거가 보이지 않는다. 미래는 안 보일 때가 가끔 있지만 과거의 모습은 대부분 스쳐라도 지나가는데 이 남자는 예외였다. ‘칠성 줄이 센가?’

“일단, 카드를 먼저 뽑아보죠. 어떤 고민이 있는지.”

꽃비는 카드를 반원형으로 펼쳤다. 그리고, 세 장을 뽑게 했다. 상담사마다 방법은 다 다르다. 꽃비는 두루뭉술할 때는 상담자의 현재 기분부터 살핀다. 

“지금 고객님 감정이 어떤지를 먼저 볼 거예요. 펼쳐진 카드 중에서 세 장만 뽑아 주세요.”

남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세 장을 골라냈다.

달 카드, 탑 카드, 죽음 카드…. 꽃비는 심각해졌다. 

“혹시 지금 두려운 일이라도 있나요? 피하고 싶다거나?”

남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잠시 후, 

“결정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그런데, 조금 망설여집니다.”

꽃비는 이 남자의 속마음을 더 들여다봐야 할 것 같았다. 그녀는 펼친 카드를 모아서 다시 한번 더 펼쳤다.

“지금 망설이는 일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세 장을 골라주세요. 정말 진지하게 고민하셔야 합니다.”

남자는 지팡이 5번과 컵 7번, 그리고 별 카드를 뽑았다. 꽃비는 여섯 장의 카드로 이 남자가 가진 생각을 읽어보려고 애썼다. 

“차 한 잔 더 드릴게요.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요.”


꽃비는 남자에게 캐모마일 차를 한 잔 더 내왔다. 이 남자는 담담하게 앉아 있지만, 불안한 감정에 쫓기고 있다. 그리고, 포악한 폭력성이 드러나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망설이고 있는 순수한 모습도 보였다. 도대체 무슨 고민이 있는 걸까? 꽃비는 그에게 차를 건네고 앉으며 무의식적으로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손이 어떤 여성의 손을 붙잡고 있는 게 보였다.     

“그 여자 안 돌아와요.”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시잖아요. 그 여자분 지금 만나는 사람이랑 결혼까지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남자는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얼굴이 붉어지면서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했다.

“제가 오늘 그년 놈들 만나서 다 죽여버리려고….”

꽃비는 남자의 말을 끊었다.

“진짜 지금 만나면 정말 두 사람 해칠지도 몰라요. 얼마나 억울하면 그런 생각까지 하셨을까…. 너무 안타까워요. 하지만, 그러지 마세요. 그 두 사람 죽인다고 화가 없어질까요? 덜 억울해지나요?”

남자는 괴로운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울기 시작했다.

“5년을 만났어요. 결혼 생각까지 했었고, 그런데, 그 여자가 그 남자를 만나면서 저를 성폭행범으로 고소까지 했어요. 혐의없음으로 종결되긴 했지만,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어요.”

남자는 더 격하게 울었다. 한참 울도록 내버려두었다. 그 어디서도 이런 얘기를 쉽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꽃비는 그에게 오일 한 방울을 더 떨어뜨려 주었다.

“기억을 다 지울 수는 없겠지만, 잊어버리도록 노력해 보세요. 그리고, 곧 좋은 분이 나타날 거예요. 그런 인간들 때문에 인생 망칠 수는 없잖아요? 억울함도 화도 곧 지나갈 겁니다. 그 여자는 과거에요. 떠나보내세요. 아셨죠?”

“네, 감사합니다. 아는데도 마음대로 안 돼요….”

“이제부터 하면 되죠.”


남자는 말을 끝내고 한 시간을 더 상담실에 머물렀다. 꽃비는 잔잔한 음악을 틀고, 그에게 적당히 차를 더 내주고, 달콤한 간식도 권했다. 남자는 나갈 때 얼굴에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살인사건 하나를 막은 셈인가?’ 꽃비는 남자의 깊은 분노와 파괴력에 기가 뺏긴 것처럼 힘들었다. ‘오늘 이 남자 때문에 나가라고 하셨나 보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가 넘었다. 집에 가려고 자리를 정리하는데 상담실 벨이 울렸다. 자그마한 체구의 아주머니였다. 이제 육십을 조금 넘긴 것 같다. 오늘은 상담이 끝났다고 말했음에도 상담실 입구에서 돌아서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온화한 얼굴 뒤로 고집이 보였다. 뭔가 이미 결정하고 여기까지 왔음이다. 꽃비의 눈에 그녀는 위태로워 보였다. 

“예약 없는 상담은 안 하는 게 제 원칙입니다만, 무슨 일로 찾아오셨을까요?”

자그마한 여자는 연신 미안하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일단, 마음을 진정하시고, 이건 베르가못이라는 건데 우울감을 좀 덜어 줄 거예요.”

꽃비는 여자의 손등에 오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다시 카드를 정리하여 펼쳤다. 

“지금 상담자님의 마음을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세 장을 뽑아 주세요.”

꽃비는 선택을 기다렸다. 꽃비의 눈에 남편에게 억눌린 그녀가 보였다.

그녀는 악마 카드, 검 9번, 지팡이 7번을 뽑았다.

“남편분에게서 벗어나고 싶으세요?”


자그마한 여자는 깜짝 놀라 꽃비를 쳐다보았다. 오늘은 이별 운으로 하루를 보낼 모양이었다. 꽃비는 그녀가 살아온 시간을 보았다. 술과 바람, 폭력…. 이 자그마한 체구로 그 세월을 어떻게 버텼을까? 여자는 아무 말 없이 울기만 했다. 늘 이렇게 혼자 울고 속으로 삼켰겠지? 오늘은 꽃비도 유난히 힘이 든다.

“뭐가 두려우세요? 남편의 폭력이 두려우세요? 아니면 혼자 되는 게 두려우세요?”

“이혼하고 싶어요. 그런데, 아이들 때문에 쉽게 결정을 못 내리겠어요.”

“자녀분들이 몇 살인데요?”

“스물여덟 살이랑 스물두 살이요. 둘 다 딸이에요.”

“엄마가 안 챙겨주면 밥을 못 먹나요?”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결혼시키려면 그래도 아빠가 있어야 하니까요.”

“자녀분들도 그걸 원하나요?”

“애들은 아빠랑 같이 안 살고 싶어 해요. 이미 독립해서 살고 있기도 하고.”

“그런데 왜 고민하세요?”

“모르겠어요, 저도. 매일 아침 이혼서류를 꺼내다가 도로 집어넣어 버려요. 여태 살았는데 이제 와서…. 라는 생각도 들고, 아이들 혼사에 흠집 나는 것도 싫고, 매일 죽고 싶고, 잠도 못 자고…. 아이들이 정신병원에 가서 우울증 처방이라도 받으라고 하는데 정신병원은 가기 싫고, 그래서 무턱대고 여길 찾아왔어요. 죄송합니다.”

꽃비는 그녀에게도 남자에게 주었던 것과 같은 차를 내왔다.

“어머님! 내 얘기 잘 들어요. 용기를 내야 해요. 남은 생이 많아요. 쉽지는 않을 거예요. 남편분이 쉽게 이혼을 해주지는 않을 거니까. 그래도 해야 해요. 본인만 강단 있게 버티면 남은 30년은 행복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리고, 엄마가 행복하지 않은데 자식들이 결혼한들 행복하겠냐고요, 엄마가 자녀분들에게 마음의 짐이 될 거예요.”

자그마한 여자는 삼십 분 동안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카드는 더 뽑을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이미 마음을 먹었고, 확신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녀가 돌아가고, 꽃비는 내일 예약된 상담을 확인했다. 내일은 네 건이다. 커플끼리 재미로 오는 경우는 꽃비도 마음이 편했다. 그들은 젊고, 또 다른 선택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깊은 분노와 우울을 동반하고 오는 내담자들은 꽃비도 버겁다. 그들의 감정에 쉽게 동화되어 버리곤 한다. 상담자의 역할을 잊은 채 말이다. 


꽃비가 신내림을 받지 않겠다고 했을 때, 그녀의 엄마는 많이 울었다. 외할머니가 무속인이었다. 자기가 내림을 받아야 하는데 그 기운이 딸에게 간 것 같다며 죄책감에 한동안 우울증을 앓았다. 그래서 더 강하게 버틴 건지도 모른다. 꽃비는 외할머니의 삶을 잘 안다. 신내림을 받았지만, 용한 무속인은 아니었다. 꽤 많은 돈을 써가며 지리산 자락의 굿터 여기저기를 신딸로 따라다닌 모양이었다. 사기였을 거라고 꽃비는 확신했다. 힘든 사람에게 다가가 더 힘든 상황을 만드는 나쁜 인간들. 무속인도 결국 힘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삶의 방향을 주는 사람 아니냐고 나도 그런 길을 가면 되니 걱정하지 말라고 엄마를 설득했다. 그제야 엄마는 웃음을 찾았다. 그리고, 그녀의 신비한 힘은 그녀의 결정에 힘을 실어 주었다. 오늘처럼 힘든 사람들에게 때론 질책으로 때론 위로로 그들을 보듬어 주는 일이 꽃비의 적성에도 맞는 일이었다.


다음날은 아침부터 예약 전화가 끊이질 않았다. 어제는 한 통도 없더니 내 앞일도 모르면서 상담자랍시고 앉아 있는 게 머쓱해지려던 찰나, 예약한 내담자가 상담실로 들어왔다. 꽃비는 차 한잔을 건네고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예쁘다. 그리고, 한눈에 똑똑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일로 오셨을까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집에서 반대를 해서요.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해도 되는지…. 그런 것도 알 수 있나요?”

“글쎄요. 상담자분이 어느 정도 진심인지에 따라 다르겠죠? 일단 한 번 볼까요?”

꽃비는 오늘도 세 장의 카드로 그녀의 마음을 읽어냈다. 그녀는 황제 카드와 힘 카드 그리고, 지팡이 4번을 뽑았다.

“좋아하는 분이 혹시 나이 차이가 좀 있을까요?”

“네, 열세 살이 많아요. 그래서, 집에서 반대가 심해요.”

“상담자분은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저는 서른이에요.”

“남자분 일하시느라 결혼 때를 놓치셨네요. 능력도 있고, 초혼이고, 오호라, 한 성격 하시는데요? 그런데 여성분이 이겨요. 그죠?”

“어떻게 아셨어요? 카리스마가 장난 아닌데 저한테는 안 그래요. 제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부모님이 안 믿어주세요.”

“내담자분이 강한 분이에요. 지혜롭고. 아마 잘 사실 거예요. 부모님도 곧 인정해 주실 거 같은데요?”

첫 번째 예약자는 기분 좋게 돌아갔다. 아마 곧 결혼식을 올릴 것이다. 그녀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기뻐하는 모습이 보였다.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는데, 예측은 빗나갈 때도 있어서 행복한 모습을 보면, 되려 조금은 불안해지기도 했다. 종종, 꽃비 탓을 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선택은 결국 본인들이 해놓고…. 한숨 돌릴 틈이 생겨 봉지 커피 하나를 타서 손에 들었다. 내담자에겐 차를 권하지만, 꽃비는 이 커피가 좋다. 그 달콤 쌉싸름함이 그녀를 찾아오는 사람들 같았다.     


마지막 한 모금을 비워내자, 다음 예약자가 도착했다. 이번엔 커플 손님이다.

“저희 궁합 같은 것도 볼 수 있나요?”

자리에 앉자마자 대뜸 궁합이라니. 발랄해 보이는 여성이다. 스물 대여섯쯤 됐을까?

“궁합이요? 그럼, 번지수를 잘 못 찾으신 거 같은데요. 철학관 이런 곳을 가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니요, 그렇게까진 아니고, 연애운만 봐주세요.”

같이 온 남자가 당황했는지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여자는 실망한 내색이 역력했다. 꽃비는 카드를 섞으며 두 사람을 차례로 훑어보았다. 

“다섯 장의 카드를 뽑을 건데, 여성분께서 뽑아보세요.”

여자는 연인 카드, 은둔자 카드, 심판 카드, 탑 카드. 악마 카드를 뽑았다. ‘왜 같이 왔을까? 이걸 말해줘야 하나?’ 꽃비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남자는 이미 여자에게 질린 상태고 여자는 아직 남자를 좋아한다. 남자는 언제 끝낼지를 고민하고 있고, 헤어진다면 여자는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혹시 동창이세요?” 

둘은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가 분명했다.

“중학교 때 잠시 사귀다가 작년에 다시 만나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예쁘게 연애만 하세요. 아직 결혼 운이 두 분 다 없어요. 혹시나 결혼 생각이 있다면 천천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운이 늦게 오네요.” 한참 고민한 후 꽃비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곧 헤어질 것이다. 


오전에 상담 두 건을 하고, 꽃비는 남자 친구와 만나기로 한 식당으로 향했다. 세 시간 정도 예약을 잡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나기도 하고, 오늘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이지혜, 너 진짜 너무 하는 거 아냐? 우리 한 달 만에 만났어. 알기나 해?”

태수는 꽃비를 보자마자 서운함을 드러낸다. 꽃비는 태수를 너무 좋아한다. 태수도 꽃비를 좋아한다. 하지만, 태수의 엄마가 꽃비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 

“미안, 밥부터 먹자. 말을 많이 했더니 배고파.”

“그래, 그러자. 너 좋아하는 걸로 시켜놨어.”

태수는 감정표현이 지나치게 솔직한 거 빼고는 장점이 많은 친구다. 그래서 꽃비는 태수가 좋았다. 그 감정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녀의 신병을 태수의 엄마는 못 마땅해했고, 꽃비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 아직 삼십 대 초반이니 태수에게 기회가 많다. 꽃비가 놓아주기만 한다면…. 

 태수는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십 년을 봐왔지만 참 한결같은 사람이다. 겉과 속이 같다. 꾸밈이 없다. 그래서 그의 엄마도 솔직하게 싫다고 하시는 걸까?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데도 목이 메였다. 꽃비는 그와 함께 조용한 카페로 이동했다.

“나, 할 말 있어.”

“하지 마. 뭔지 알아. 오늘은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

“뭘 안다는 거야? 네가 무당이냐?”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나는 너 포기 못 해. 그러니까 너도 포기 하지 마.”


꽃비는 할 말이 없었다. ‘놓아줄 때 가란 말이야. 왜 말을 못 알아들어?’

앞에 놓인 커피잔만 만지작거렸다. 꽃비는 다른 사람의 과거와 미래는 그렇게 잘 보면서 정작 자신의 문제는 볼 수가 없었다. 태수의 생각도 태수 엄마의 생각도. 곧 포기하고 받아주실지, 영영 이대로 끝이 나고 말 것인지. 어느 하나도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꽃비가 포기하는 게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태수는 꽃비를 놓아 주지 않았다.

“지혜야, 우리 결혼할까?”

“뜬금없이 뭔 소리야? 내가 무슨 말 하려는지 안다면서 그 반대의 말이 나와?”

“결혼해서 멀리 갈까? 나는 너 없음, 안 되는데….”

꽃비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그를 받아들이면 태수는 엄마와의 관계를 포기할지도 모른다. 꽃비는 그것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우리 관계는 더 생각해 보자.”     

 꽃비는 오후 예약자를 기다리면서 태수 엄마를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태수는 그녀가 겪은 일들을 엄마에게 다 말했고, 태수의 엄마가 그녀를 직접 불러냈다. 그렇게 마주 앉은 둘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다. 꽃비가 정성스레 준비해 간 꽃바구니는 구석 자리로 밀려나 있었다. 삼십 분쯤 지났을까? 그의 엄마는 태수와 헤어지라는 명령조의 말을 한마디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꽃바구니는 구석에 그대로 둔 채로 말이다. 지난 일에 한숨이 새어 나오려는 찰나, 상담실에 낯이 익은 여자가 들어왔다.

“혹시 여기 다녀가신 적 있죠?”

상담이 끝나면 예약자의 모든 연락처를 지워버리기에 재방문 예약을 해도 못 알아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사람은 기억났다. 꽤 오래전에 다녀간 것 같은데도.

“네, 몇 년 전에 다녀갔었어요. 결혼할 사람이랑 같이.”

‘아, 그때 내가 뭐라고 했을까?’ 기억을 떠올려봐도 기억나지 않았다. 지금 그녀는 혼자다. 그것만은 촉으로 알 수 있었다.

“네, 그때 결혼을 안 하셨나요? 지금은 왜 혼자?”

“결혼했는데 지금은 혼자네요.”

여자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채 한동안 조용했다. ‘사별?’‘왜?’‘사고 수는 없어 보이는데?’ 꽃비는 훅 들어온 감으로 그녀의 남편이 망자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여자는 꽃비를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시작해도 되는지 물어보고 싶어서 왔어요.”

 카드를 펼치며 꽃비는 조용히 물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왜 혼자이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자살했어요. 회사 옥상에서 뛰어내렸죠.”

꽃비는 카드를 다시 뭉쳤다. 그리고, 그녀에게 차 한잔을 내왔다. 그녀의 손등에 오일도 한 방울 떨어뜨렸다. 이깟 게 무슨 위로가 되겠냐 만은 달리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감사합니다. 회사 상사 중 한 사람이 남편에게 강압적이었나 봐요. 그가 남긴 일기 같은 게 있는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모욕적인 일도 당했고,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던 모양이에요. 혼자 속앓이했을 거 생각하니까 너무 미안하고,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어요.”

꽃비는 티슈를 그녀 앞에 살포시 놓았다. 그리고, 그녀가 진정되길 기다렸다.

“아까 시작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시작을 하려는 걸까요?”

“남편이 상사 괴롭힘 때문에 자살했다는 걸 밝히려고요. 고소 생각 중인데 쉽게 판단이 서질 않아서요. 증거라고 해 봤자, 그 사람이 남긴 메모가 다인데, 남편의 억울함은 풀어 주고 싶고, 승산이 있을지 사실 자신이 없어요.”

꽃비는 다시 카드를 펼쳤다. 그리고 세 장을 뽑아보라고 했다. 그녀는 신중, 또 신중하게 카드 세 장을 뽑았다. 달 카드, 지팡이 3번 카드, 그리고 심판 카드였다.

“지금 혼란스러운 마음이야 말해 뭐하겠습니까? 두 분 너무 사랑하셨고, 좋은 미래가 펼쳐져 있었는데 안타까울 뿐이에요. 시작하세요. 승산 있습니다. 그리고, 본인의 일도 새롭게 찾아보세요. 분명히 기회가 있을 거예요. 혹시, 재혼 생각은 있나요?”

“아뇨, 아직요.”

“네, 지금은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할 거 같아요. 잘 해결되길 진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꽃비는 그녀가 떠나고, 잠시 애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뒤에 예약된 상담자가 일정 변경을 한 덕분에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사랑하는 이의 억울한 죽음. 행복한 날들이 펼쳐져 있는데 그 달콤함이 채 영글기도 전에 미완성의 숙제 같은 걸 떠안아 버린 아내의 입장을 생각 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는 잘 해낼 것이다. 꽃비는 차 한잔을 들고 창가로 갔다. 지나가는 사람들, 각자만의 사연을 안고 오늘도 치열하게 살고 있겠지? 꽃비가 잠시 바깥 풍경에 넋이 나간 사이 상담실 앞에서 중년의 여성이 벨을 누르려고 하고 있었다.


 꽃비는 갑작스러운 벨소리에 놀라 문을 열었다. 오늘 예약은 끝났다. 누구지? 문을 열자마자, 꽃비는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어 버렸다.

“여긴 어떻게…. 들어 오세요.”

꽃비는 중년의 여성을 상담실 말고 테이블로 안내했다.

“오늘은 손님으로 온 거니까, 자리 안내 부탁해요.”

꽃비는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거렸다.

“무, 무슨 상담을….”

“아들이 하나 있거든요. 그 녀석 장가 갈 수 있는지 한 번 봐줘요.”

이런 전개는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번처럼 호통치고 가실 줄 알았다. 그녀는 여전히 꽃비를 받아들일 마음이 전혀 없다. 그것만은 알 수 있었다. 꽃비가 차를 권하자, 필요 없다는 손 시늉을 했다. 꽃비는 카드를 반원 모양으로 펼쳤다.

“아드님 생각하면서 세 장 뽑아 주세요.”

태수 엄마는 바보 카드와 운명의 수레바퀴, 그리고 죽음 카드를 골랐다. 카드를 본 꽃비는 마음이 오히려 편안해졌다. ‘그래, 그와 내 운명이 이렇구나.’

“아드님이 착하고 순수한 분이시네요. 곧 직장을 옮길 거예요. 승진도 하게 될 겁니다. 거기서 좋은 분도 만나실 것 같아요.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태수 엄마는 그제야 얼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괜히 유명한 게 아니었네요. 아들에게 지금 여자 친구와는 헤어져야 한다고 말하면 되겠죠?”

“…. 네, 그러셔도 됩니다.” 


꽃비는 그녀를 배웅하고, 문을 등지고 한참을 울어야 했다. ‘우리의 10년은 새로운 곳에서 만나는 한 여자에게 밀리는 거였구나. 그런 거였구나. 내가 아니라, 태수가 마음이 바뀌는 거구나. 왜 나는 그동안 보지 못했을까?’ 그의 마음을 더 편하게 해줄 수 있었는데 아쉬웠다. 꽃비는 태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우린 어차피 인연이 아니었어. 내 욕심에 널 보내지 못했을 뿐이야. 그동안 고마웠어.’ 메시지 전송 후, 꽃비는 그의 번호를 차단했다. 그를 떠나보내자마자 예약 전화가 밀려들었다. 순식간에 이주의 예약이 잡혔다. 그녀는 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얻는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히 감사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고 결정을 도와주는 일. 그녀는 타로 상담사 꽃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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