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by 열정아줌마

정동향인 경서의 집은 아침부터 해가 거실 끝까지 밀려 들어온다. 밤새 가득 찬 소변보다 거실 바닥에 뿌옇게 뜬 먼지가 거슬린 경서는 막대 청소기 끝에 부직포를 두 장 겹쳐 붙이고 온 힘을 가해 바닥을 끌어당겼다. 아직 육신과 정신은 합해지지 못했다. 집 안 어딘가 부유하고 있을 그녀의 정신이 제 자리를 찾을 때까지 부직포는 바닥에 있는 먼지들을 한 톨 한 톨 잡아낼 것이다. 몸에 밴 익숙한 행동은 눈을 감고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아이들이 깨기 전에 끝내야 모닝 주스 한 잔 만들 시간이 될 것이다. 아빠와 싸운 날에도 밥은 차려주던 엄마를 그대로 보고 배운 경서는 간밤에 남편의 억지가 되새김질로 올라와도 평소와 같은 아침을 맞이하려고 애를 써보았다. 어젯밤 일을 떠올리자, 감았던 눈이 떠지고 정신이 몸 속으로 쑥 빨려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감정은 여전히 그 시간에 머물러 있음을 깨달았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머릿속은 애써 비워냈다. 아이들이 깨어나면 먹일 아침과 어린이집 등원 가방, 큰아이의 물병 등을 준비하느라 손은 바쁘고, 미간에는 어느새 주름이 잡히기 시작했다. 화장실은 아직 다녀오지 못했다. 다 끝내고 나면 짬이 있겠지…. 어느 틈엔가 다가온 막내아들이 경서의 다리를 붙들고 얼굴을 비벼 댔다. 엄마의 살냄새가 좋은가보다. 이 녀석은 늘 그녀에게 찰싹 붙어서 떨어지질 않는다. 그 감촉이 마치 찰떡같아서 경서도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곧이어 연년생 누나가 일어나고, 큰딸이 제일 마지막에 일어났다. 경서의 엄마가 그러했듯이 아이들을 차례대로 끌어안고 눈을 맞추고 뽀뽀했다. 초등학교 5학년인 큰아이는 알아서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아이들은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아빠를 깨우느라 분주하다. 침대에서 일어난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 둔 주스를 마시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건다. 시큰둥하게 대답했다가는 또 언성이 높아지겠지. 그가 원하는 아내, 그가 원하는 상냥하고 다소곳한 여자가 되어 주어야 한다. 머리에 쪽만 지지 않았을 뿐, 조선시대 여인과 다를 바가 없다.


“오늘 병원 간다고?”

셔츠를 입으며 그녀에게 묻는다. 침대 위에는 양말, 손수건까지 준비되어 있다. 물론, 경서가 미리 준비해 둔 것이다.

“응.”

“애들은?”

“엄마가.”

슈트로 거대한 몸뚱이를 가린 남자는 더 이상 아무런 말이 없다. 표정을 보아하니 당연한 일이라는 듯하다. “장모님까지 고생이 많으시네.”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 죄송한 마음은 들어야 하지 않나? 배알이 꼴리다가 티 내봤자 어제 상황의 반복이다 싶어 애써 섭섭한 마음을 눌러 내렸다. 남편은 늦었다며 차 키와 핸드폰을 챙겨 들고 급히 집을 빠져나갔다. 현관에서 형식적인 배웅을 하고서야 화장실 생각이 났다. “개새끼.” 변기에 걸터앉으며 자기도 모르게 입속에서 욕이 나와 버렸다. 아이들이 듣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오전 10시에 병원 예약이 있다.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각각 보내고 옆 동 입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십 년 전, 생애 처음으로 신축 아파트에 입주했다. 신날 겨를도 없이 시부모님이 같은 아파트로 따라오셨다. 그 이후, 아이들 하원 시간에 시댁에 가는 건 당연한 하루일과가 되었고, 수시로 문제가 생길 때마다 불러대는 통에 하루에 서너 번 가는 건 별스럽지 않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오늘은 그럴 여유가 없다. 시간 개념이 철저하신 경서의 시아버지는 경비실 앞까지 벌써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힘든데, 천천히 나오셔도 되는데….”

힘겹게 차에 오르며 말이라도 “네가 고생이 많다.”라고 해주시니 아침에 허둥지둥했던 그녀의 꼴이 조금은 위로받는 것 같아 마음이 누그러졌다. ‘아버지 덕분인 줄 알아.’ 남편 앞에서는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할 말을 속으로 조용히 읊조렸다. 남편은 지워내고 애써 밝은 목소리로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말을 꺼냈다.

“아침은 드셨어요?”

“나는 두부 먹었지.”

어머니께 여쭤본 게 아닌데, 불쑥 치고 들어온다. 룸미러로 시아버지를 쳐다보자,

“대충, 항암 약이 메스꺼워서 아침을 많이 먹으니까 힘들더라고.”

그제야 시아버지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렇죠. 아버님 뭐 드시고 싶은 건 없으세요?”

“없다. 신경 쓰지 마라.”

시아버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어머니가 또 차 안 공기의 흐름을 끊는 말을 한다.

“아버지 항암 주사 맞을 동안 너는 나랑 점심 같이 먹자.”

“예? 아, 예.”

시어머니는 병원에 점심 드시러 가시는 모양이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가는데 아버지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그 한숨은 경서의 귀에만 들릴 것이다. 차 안엔 세 사람이 있는데 말이다. 병원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경서는 익숙한 항암 주사실로 먼저 뛰었다. 접수 번호 하나 차이로 30분 이상 밀리는 건 예삿일도 아니다. 대학병원 항암 주사실엔 빈 침상이 없을 때가 많다. 역시, 한참 기다려서야 빈 침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최소 두 명은 제쳤을 것이다. 앉아서 맞으시겠다는 시아버지를 겨우 말렸다. 시간이 늦어지면 어린이집에서 기다릴 아이들을 걱정할 며느리를 염려하는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아버님, 오늘 저희 엄마가 애들 봐준댔어요. 걱정 마시고, 주사 잘 맞고 가요.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그제야 “아, 그렇구나. 감사하게. 늘 신세를 져서 어쩌냐.”고 미안해하신다. 시어머니는 그새 의자에 앉아서 꼴딱 잠이 드셨다. 왜 따라오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집에서 애들이나 봐주실 것이지. 아니다, 그것도 마음이 놓이지는 않는다. 차라리 친정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백번 나을지도 모른다. 아버님이 주사를 다 맞으시려면 대여섯 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주사를 꽂고 나니 11시가 훌쩍 넘었다. 혹시 불편한 데는 없나 지켜보고 있는데 옆에서 툭툭 친다. 그새 쪽잠을 자고 일어나신 어머님이 그녀에게 눈짓을 보냈다. 밥 먹으러 가자는 신호다. 그걸 또 보신 아버님이 신경 쓰지 말고 다녀오라고 하셨다. 발길이 떨어지지도 않고 입맛도 아예 없었다. 시어머니 밥 동무가 되러 온 게 아닌데, 늘 이런 식이다. 이 대학병원 식당 밥이 그녀의 입에 맞나 보다.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는 모습에 경서는 자기 것까지 덜어드렸다. 심한 당뇨를 앓고 있어서 식이요법이 중요함에도 다른 사람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분이다.

“하루에 한 끼 먹는데 이 정도 먹는 건 괜찮아.”

거의 2인분에 가까운 양을 드시는 걸 보고 경서는 걱정이 앞섰다. 한 달 전에도 혈당 쇼크로 며칠 입원을 하셨던 터라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두 분이 아프면 결국 경서의 할 일이 늘어날 뿐이다.

“어머니, 그렇다고 저녁에 밥 대신에 과자 드시지 마시고, 두부라도 드세요. 아셨죠?”

“시끄럽다. 내 알아서 한다.”

‘알아서는 무슨, 오늘도 저녁에 강냉이 한 봉지 드실 거면서. 엄마랑 아들이랑 아주 똑같네.’ 경서는‘알아서 한다.’ 이 말만 들으면 화가 치솟았다. 그러면 진짜 스스로 알아서 하던가. 병원 입원만 몇 번째인지 모른다. 저 고집은 죽어야 꺾을 수 있을 거라는 시아버지 말씀이 갑자기 스치고 지나갔다. 아버님 입장이 되어보니, 경서가 느끼는 답답함은 고목 나무에 매달린 매미만도 못할 거란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주사실로 돌아와 보니 시아버지는 곤히 주무시고 계셨다. 항암제가 힘들면 잠자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속이 안 좋으니 앉지도 서지도 못하셨다. 그나마 오늘은 좀 편한지 주무시는 모습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경서의 시아버지는 방광암 6차 항암치료 중이다. 이번 항암 결과가 좋으면 바로 수술할 수 있다. 초기에 발견한 게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지난밤, 군것질이 심한 남편에게 음식조절 좀 하라고 한마디 했다가 안방 방문이 부서질 뻔했다. 그도 그의 엄마처럼 당뇨가 있다. 조절해야 함에도 약 먹으니 괜찮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산다. 어릴 때 엄마가 자기만 먹고 자식들은 모른 척 해서 못 먹고 자라 한이 많다나? 피곤한데 이렇게라도 해야 스트레스가 풀린다나? 아무리 건강식으로 식단을 차려줘도 현미는 까끌까끌하고, 카무트는 모래 같다고 화를 내더니 기어이 수저를 내려놓는다. 바쁜 와중에 이렇게라도 해주면 정성을 봐서라도 맛있게 먹어주면 안 되냐고 했더니, 왜 혼자 다 하면서 바쁘다고 생색내냐고 난리다.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있냐?”고 대꾸했더니 갑자기 형 욕을 한다. 형이 희한한 여자랑 결혼하는 바람에 네가 맏며느리 역할을 하는 거 아니냐며 격분했다. 자기감정에 취해 화를 주체하질 못했다. 이유도 없이 거친 욕을 들어야 하는 도돌이표 상황을 경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네 부모 일을 네 형수나 내가 맡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자식들은 너희잖아?’ 15년째 참아 온 그 말이 그녀의 머리 꼭대기까지 치고 올라왔다. 순간, 시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님 때문에 내가 또 참는다.’ 조용히 다용도실로 가서 재활용 쓰레기를 챙겨 나왔다. 평소 같으면 그 시간도 아까워서 ‘다다다다’ 하고 뛰어올라갔을 텐데 서운함이 몰려와 집에 가기가 싫었다. 세월아 네월아, 하나씩 하나씩,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데만 십 분이 걸렸다. 경서는 아파트 앞을 천천히 걸었다. ‘이 집에서 나라는 사람은 어떤 의미로 살아온 걸까?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아내, 엄마, 며느리는 있는데 나 자신과 우리 엄마 아빠의 딸이 없었다. 내일도 손주들 봐주러 올 친정엄마한테 미안해서라도 잘 살아야 하는데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아이들은 잠들었고, 집에 들어가봤자 남편 역시 이미 자고 있을 것이다. 경서의 기분 따위는 상관없는 사람이니까.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이렇게 살 줄 알았다면 결혼 따윈 안 했을 텐데….


경서는 대기실에 앉아 어젯밤 일을 곱씹고 있었다. 그녀가 지난밤을 생각할 동안 시어머니는 편의점에서 새우깡 한 봉지를 사 오셨다. 한 번 권하더니 본인 앞으로 가져가 쉴 새 없이 드신다. 묻지도 않았는데 심심해서 드신다며 한 봉지를 순식간에 비워내었다.

“어머님, 아버님 저녁에 드실 건 좀 있어요?”

“어, 있지. 어제 반찬 사다 놨어.”


병원 침대에 누워 암막 봉투에 쌓인 이름 모를 주사약을 맞고 있는 칠십팔 세 노인이 불쌍하지도 않을까? 새우깡이 다시 그녀의 졸음을 불러왔나 보다. 의자와 물아일체가 된 노인의 아내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어찌 보면 그녀의 삶이 부럽기도 하다. ‘어머니에게는 걱정이라는 게 있을까?’ 싶던 차에 다섯 시간이 그새 지났는지 간호사가 시아버지의 마른 팔뚝에서 바늘을 빼고 있었다. 간호사는 잠시 앉아 있기를 권했다. 경서의 시아버지는 속이 거북한지 표정이 힘들어 보였다. 최대한 브레이크를 조심히 밟으며 아파트 앞에 도착하니 땅거미가 어느새 앉아 어둑어둑하다. 죽이라도 좀 드시면 좋겠는데 싶었다. 물론, 어머님이 해주실 리가 없지만 말이다. 시아버지가 직접 그의 저녁을 챙길 모습을 상상했다. 지금은 그보다 우리집이 더 급하다. 서둘러 집으로 오니, 경서의 엄마는 애들 셋을 씻기고 먹이고 청소까지 다 해놓고 빨래까지 개고 있었다. 이 세상의 모습이 아닌 것처럼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엄마, 하지 말라고 해도 참. 내가 와서 하면 되는데.”

“언제 와서 해. 놀면서 했지. 우리 애들이 너무 착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 서방 안 닮고 너 닮았나 보다.” 경서는 순간 울컥해서 주방으로 돌아섰다. 냉장고 문을 열고 이것저것 뒤적거리는 척을 하며 빨리 가라고 재촉했다.

“엄마, 이제 가. 택시 불러줄게.”

“택시는 무슨, 버스 타면 한 번에 가는데. 간다. 나오지 마.”

급하게 가방을 챙기더니 경서의 주머니에 돈을 찔러준다.

“이 서방한테 타 쓰기 힘들잖아. 친구들 만나서 커피라도 마셔.”

“아, 엄마. 뭘 타 쓰기 힘들어. 택시 불러줄게.”

“나오지 마, 간다.’

휑하니 사라진 엄마를 붙들지도 못하고, 그녀는 현관에서 한참을 망부석처럼 서있었다. ‘마룻바닥에 패인 자국을 본 걸까? 안방 벽에 움푹 들어간 곳을 본 건 아닐까?’ 잘살고 있다고 말하는 딸이 미덥지는 않았을 거다. 퀭하게 말라가는 걸 엄마가 모를 리가 없다. 묻기가 힘들 것이다. 딸이 괜찮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게 두려울지도 모른다. 딸이 괜찮다고 하니 괜찮은 거겠지. 가끔 집에 와 보면 아이들이 밝게 크고 있으니 큰 문제는 없겠지. 그렇지만, 안쓰러운 마음, 푼돈이나마 찔러주고 가면서 그 안타까움을 대신할 것이다. 엄마가 남기고 간 여운과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경서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다.


시아버지의 방광암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 아이들이 어려서 경서가 계속 옆에 있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 먼저 하겠다고 나서는 이도 없다. 아홉 살 어린 아내는 당뇨병 때문에 할 수가 없고, 아들들은 바빠서 안 되는 모양이다. 경서의 형님은 차만 타면 멀미 때문에 힘들다니 방법이 없다. 아이들이 어리지만 않았다면, 경서가 도맡았을 것이다. 어쩔 수 없어 간병인을 두었다. 간병인이 있음에도 입원해 계신 일주일 동안 매일 아침 찾아갔다. 드시고 싶은 게 있는지 물어서 싸가기도 하고, 자잘한 심부름꾼 역할도 했다. 아주버님과 형님도 한 번 면회를 다녀갔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큰아들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모양이다. 큰아들은 귀한 아들이고, 작은아들은 성질머리 더러운 아들이다. 그래서, 큰아들의 아내는 더불어 이쁜 모양이었다. 그 정도만 해도 알아들을 텐데 큰아들 편들기는 끝이 없다. 집이 멀어서 어쩌고 바빠서 어쩌고…. 같은 시내에 살고 형님도 가정주부인데 뭐가 멀고 뭐가 바쁜지 알 수는 없다. 경서는 가까이 사는 죄란다. 너도 멀리 가서 살지 그랬냐며.


시아버지가 퇴원하던 날, 경서는 새벽부터 설쳐서 오전 8시에 병원에 도착했다. 빨리 퇴원하고 싶은 마음을 너무 아는지라, 원무과와 간호실을 오가며 재빨리 퇴원 절차를 마쳤다. 그날의 퇴원 1번 주자인 셈이다. 일주일이라고 해도 퇴원 짐이 제법 많았다. 기운 없는 아버님을 집까지 모셔다드리고 현관문을 닫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데 문 안에서 새어 나오는 아버님의 고조된 언성이 경서의 귀에까지 들렸다.

“밥이 없다고? 밥도 안 해놨어? 내가 아침 안 먹고 올 거라고 했잖아!”

“이렇게 빨리 올지 몰랐죠.”

남편보다 아홉 살 어린 아내는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징징댄다. 문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음에도 들은 척을 해야 하나 마나 고민하던 차에, 어머니가 현관문을 열고 후다닥 나오신다. 마침 잘 됐다며 시장 앞까지만 좀 태워달라고 한다. 경서는 지금이라도 뭘 만드시려나 보다고 생각했다. 시장 앞에 내려드리고, 집으로 왔다. 집안일이 산더미같이 쌓여서 점심도 거르고 말았다. 아이들을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갔더니 둘째가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한다.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경서는 다음에 가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이의 눈을 보니 그럴 수도 없었다. 주무시면 바로 나오자고 아이들이랑 약속하고 올라갔더니, 여든이 다 된 아이들의 할아버지는 소파에 앉아계셨다. 한참 못 본 손주들을 기다리셨는지 표정이 더없이 밝아지셨다. 아이들이 잠시 그림그리기에 빠져 있는 동안, 경서의 시아버지는 그녀를 주방으로 살짝 부르셨다. 좀 전까지 밝았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깊은 주름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네 시어머니란 사람이 나한테 오늘 편의점 도시락을 사다 주더라. 암 수술하고 온 남편한테…. 내가 어디서 이런 얘기를 하겠냐.”

자기 흉을 보는 걸 알아챘는지 주방으로 다가오는 어머님 때문에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으셨다. 곧장 방으로 들어가시는 아버님을 보고 아이들을 데리고 시댁을 나왔다. 큰아이에게 동생들을 잠시 맡기고 경서는 시장으로 달려갔다. 코다리와 꼬막, 시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반찬거리를 몇 가지 사 들고 와서 한참을 만들었다. 저녁 드실 시간에 맞춰서 부리나케 만들어 드리니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다. 어머니도 애썼다며 고맙다고 하신다. ‘그래, 내가 더 신경 쓰자.’ 어쩌겠는가? 경서는 그게 자기 몫이라고 마음을 다시 잡았다.


경서의 남편은 아내가 대신 한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병원도 찾지 않았다. 전화 통화 한 번 했을 뿐이다. 그래도 찾아봬야 하는 거 아니냐고 경서가 말해도 네가 했으니까 괜찮다고 했다. 무슨 논리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 네 몫까지 내가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경서의 존재가치는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남편은 폭언과 무시로 그녀를 길들였다. 그녀가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최선을 다해 살다 보면 언젠가는 남편도 그녀의 노력을 알아주겠지…. 올림픽을 앞둔 선수들처럼 그날만 살았다. 그들은 금메달이라는 목표라도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목표가 없었다. 미래는 없는 당일치기 인생. 그 당일치기가 반복되어 마음속에 그녀의 공간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십오 년이 지나도 그녀의 가치를 알아주는 이는 시아버지밖에 없었다. 시아버지가 퇴원하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였다. 정오가 좀 지난 시간,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너 여기 좀 와야겠다. 꼼짝도 못 하겠다.”

경서는 무슨 일인가 싶어 부랴부랴 오라는 곳으로 갔다. 그녀는 집 앞 버스 정류장에 퍼져 있었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다. 급히 119를 부르고 어떻게 된 거냐 물으니, 버스에서 넘어졌는데 기사가 그냥 내려주고 가버렸단다. 그런데 꼼짝도 할 수 없어서 그러고 있다가 생각나는 게 가까이 사는 며느리밖에 없더라나. 119는 가까운 종합병원에 내려주었다. 고관절이 부러졌단다. 자기들은 수술할 의사가 없으니, 대학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사설 구급차를 부르고 경서는 친정엄마에게 또 전화했다. 아이들 하원 시간이 다가오는데 다른 방법이 없었다. 급히 시어머니가 다니시던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응급실은 미어터지고, 기다림은 하염없이 늘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검사를 마치고, 다음날 바로 응급수술을 잡았다. 인공고관절을 삽입해야 하는 수술이라 회복하는데 한 달 이상 걸릴 거라고 했다. 대학병원에서는 3주 이상 있기 힘드니 재활병원을 미리 알아보는 게 좋을 거라는 팁도 알려 주었다. 급하게 간병인도 알아보았다. 대학병원은 간병인 찾기가 쉽지 않다. 이미 여러 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연락처에 있는 간병인들에게 연락을 돌려 보고 간병인 협회에도 전화를 해보았지만, 당일 투입할 수 있는 인력 찾기는 쉽지 않았다. 여차하면 오늘밤은 가까이 사는 며느리가 간병인으로 있어야만 한다. 혹시나 해서 경서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루 정도는 연차를 써도 될 일이다. 자기 엄마를 마주하기도 싫어하는 사람에게 간병을 맡으라고 하긴 힘들 것 같았다. 애들이라도 봐주면 내일 수술 때까지 경서의 걱정을 좀 덜 수 있을 것이다.

“계신 김에 장모님이 내일까지 봐주시면 안 돼? 내일 바쁜데.”

“하루 정도 연차 써도 되잖아.”

“장모님께 하루만 더 봐달라고 해. 장모님 불편하시니까 회사 근처에서 자고 내일 바로 출근할게.”

간병인은 다음 날, 수술 끝날 시간에 맞춰 올 수 있다고 했다. 오전 8시 수술이니까 점심시간 전엔 끝날 것이다. 잘 준비도 없이 온 엄마에게 아침에 등원까지 떠맡겼다. 경서의 엄마는 사위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눈치가 빠른 분이다. 장모가 불편해서 집에 오지 않겠거니, 이미 예상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밤이 길었던 적이 있을까? 경서의 시어머니는 통증 주사를 맞고 잠이 드시고, 경서는 가슴에 아린 통증을 부여잡고 간병인 대기실에 앉았다. 점심 이후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배고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가 지금 느끼는 감정조차도 애써 지워내 버리려고 했다. 버거운 짐 덩어리였다.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 빨리 오길. 너무 힘들어서인지 지금의 고통보다 다가올 편안함을 그리게 되었다. 그러는 편이 마음이 더 편하다는 것 또한 경험으로 알고 있다. 회피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지 않고서는 오늘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많은 날의 오늘을 버리며 살아왔다. 그녀는 강압적인 아버지를 벗어나 주체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꿈도 많았다. 서른이 넘어가기 직전 만난 남편은 그녀에게 이상적인 남자였다. 술꾼인 아빠와 달리, 술을 마시지 못했고, 가방끈이 짧은 아빠와 달리 유학까지 다녀왔으며 늘 남 탓인 아빠와 달리 자기 객관화가 빠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이기적이었다. 이기적인 남편은 경서를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만 살게 했다. 결혼이란 새로운 시작점에서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고자 했던 경서는 사십오 년째 보이지 않는 억압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 날, 시어머니의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간병인에게 당부할 것들을 부탁하고 병원을 나섰다. 급히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하원 시간은 이미 지나있었고, 선생님께 몇 번이나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만 하고 돌아 나왔다. 큰아들이 다녀갔다고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작은 애야, 고생 많았다. 애들은 데리고 왔냐?”가 아니었다. 곱디고운 그녀의 큰아들이 그녀를 만나고 갔다고 말해야 했을 것이다. 작은 며느리에게 부끄러워서, 그래도 당신이 아끼는 큰아들이 찾아왔음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둘째 아들은 자기를 보러 오지 않지만, 큰아들은 그의 역할을 했음을 알려야 했을 것이다. 저녁 식탁에서 마주 앉은 남편에게 자기 엄마의 고관절 수술 결과를 알려 주었다. 어머니에게 증오만 남아 있는 남편이다. 대답 없이 듣고만 있다. 이기적인 엄마와 이기적인 아들들. 어쩌면 내가 그들이 효자 될 기회를 앗아버렸는지도 모른다. 착한 척하는 내가 그들을 나쁜 아들들로 몰아세우며 내가 다 해야 한다는 억지 책임을 홀로 떠안고, 힘들다고 눈물 흘렸던 건지도 모른다. 누구도 나에게 시킨 적은 없으니까. 가까이 살아서 어쩔 수 없다는 논리 이전에 거리와 상관없이 움직일 수 있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끔 내가 만들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하룻밤을 꼬박 지새웠는데도 잠은 쉬이 오지 않았다. 커피를 많이 마셔서도 아니었다. 그렇게 두서없는 자책만 깊어 가는 밤이었다.


대학병원에서 3주가 지났다. 바나나우유를 드시고 혈당이 350까지 치솟은 거 외에는 큰 문제 없이 퇴원 절차가 이루어졌다. 경서의 시어머니는 아직 걸을 수가 없다. 그녀는 시아버지와 의논해서 집에서 가까운 병원으로 옮기기로 했다. 병원을 예약하고, 새로운 간병인을 구했다. 다시 사설 구급차로 새로운 병원으로 이동했다. 아침부터 서둘렀는데도 오후 4시가 넘었다. 오늘도 경서의 엄마는 딸 집에서 손주들과 함께 있다. 지난 3주 동안 형님은 두 번의 메시지를 동서에게 보냈다. 고생한다는 이모티콘 한 번, 그리고, 퇴원은 언제냐는 간단한 물음. 그마저도 그녀의 남편이 시켰을 것이 분명하다. 형님은 혼자서 시댁에 온 적이 한 번도 없다. 명절이 아니면 볼 수 없었고, 그 외에는 시댁에서 아예 마주칠 일이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경서가 매일 아침 시어머니의 부름에 병원을 찾아간 것과 달리, 주말에 한번 아주버님과 함께 왔었다고만 전해 들었을 뿐이다. 오늘 전원하는 것도 이미 메시지로 알려 주었다. 그러나, 아침부터 오후 4시가 될 때까지 어머니에 대한 걱정은 경서 하나로 족했다. 경서는 구급차 안에서 형님에게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 옮깁니다.’ 읽지도 않고, 답도 없다. 병원을 옮기고, 미리 섭외해 둔 간병인과 얘기를 나누고 집에 오니 저녁 6시가 넘었다. 우리 엄마는 고생했을 딸을 위해 저녁밥까지 하고 있다. 뜨거운 게 넘쳐 오르기 전에 엄마를 보내야만 했다.


친정엄마가 가고 나자, 그녀는 발끝까지 힘이 빠졌다. 안방 바닥에 주저앉아서 잠시 넋을 놓고 있었다. 구급차가 급히 회전할 때의 묵직한 진동이 아직도 그녀에게 남아 있었다. 남편이 오기 전에 일상으로 돌아가 있어야 하는데 몸이 바닥에 붙어 버렸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때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메시지를 이제야 봤네. 이제 집 가까워서 동서가 편해지겠다. 고생했어.’

겨우 다스렸던 서러움의 봉인을 이 문장 하나가 단숨에 해제시켜 버렸다. 안방 화장실에 들어가 수도꼭지를 올렸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얼굴은 터질 듯 빨개지고, 목은 이내 쉬어 버렸다. 물리적인 거리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시댁은 애초에 남이었다. 맏며느리고 나발이고, 처음부터 시댁의 일은 자기 소관이 아니었다. 그녀는 아들이 알아서 하길 원했고, 경서는 아들을 대신했을 뿐이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알량한 그녀의 선함이라는 가면이 자신을 탓하고 남편을 탓하며 며느리 병을 자초한 것이다. 몹쓸 놈의 착한 척이었다. 착한 가면은 쉽게 벗어낼 수 없었다. ‘나는 이제 나로서 살겠으니 더 이상 나에게 기대지 말라.’고는 할 수 없었다. 이제 와서….

한동안 조용히 지나가나 싶었다. 퇴원한 경서의 시어머니도 어눌하긴 했지만, 두 발로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경서는‘가면 그까짓 거 필요할 때만 쓰자,’ 선택적 가면,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훨씬 홀가분해졌다.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려고 노력했다. 남편에게도, 시댁에도. 그들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형식적인 행동이 늘어갔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바뀐 건 경서의 마음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무거운 책임감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2년이 흐른 어느 날, 경서의 시아버지는 그녀와 함께 간 정기 검진에서 혈액암 판정을 받았다.


이번 암은 쉽게 물러날 것 같지 않았다. 혈소판 수치는 계속 떨어졌고, 맞는 혈소판이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는 날이 많아졌다. 주변 지인들에게 지정 헌혈까지 부탁할 정도가 되었다. 항암제는 더 독했다. 팔십이 되어버린 노인의 기력은 날로 쇠해가고, 입원을 해야만 항암제를 맞을 수 있었다. 경서는 가면을 버렸다. 시아버지에게만은 진심이었다. 며느리로서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 벗에게 나누는 사랑 같은 느낌이었다. 그에게 받은 사랑은 넘치고 넘쳤다. 시어머니와는 완전히 다른 인격이었다. 아내의 불륜과 도박도 눈감아준 분이고, 이기적인 엄마를 미워하는 아들마저도 이해하고 포용하신 분이었다. 그녀에게 그는 성인(聖人)이었다. 경서는 시아버지의 혈액암 완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주변에 부탁해 헌혈 증서까지 모으기 시작했고, 간호사마다 따라다니며 다른 환자들보다 자신의 늙은 아비를 좀 더 봐주십사 부탁하고 또 부탁했다.


남편이 그녀의 진심을 알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고맙다고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이라는 변화를 겪어서일까? 그의 상황적 변화가 그의 뇌까지 침투해 이기적 유전자에 변이를 일으킨 것일까? 코로나가 절정을 달리던 시절, 면회조차 힘들었던 그때, 섬망이 조금씩 시작된 노인은 둘째 아들의 얼굴을 보러 병원 로비까지 내려왔다. 그리고, 그 모습은 둘째 아들에게 생전 마지막 아버지의 초상(肖像)이 되었다. 2차 항암 도중 폐에 문제가 생겨 급하게 중환자실로 옮기던 날, 경서는 마지막으로 의식이 남아 있는 그를 만났다. 하지만, 그는 아끼던 작은 며느리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초점은 이미 잃었고, 팔다리는 늘어져 지금 당장 유명을 달리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그가 혈액암 진단을 받은 지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경서와 남편, 그리고 남편의 형, 셋은 병원 근처 카페에 앉아 있었다. 경서의 형님은 그때도 나타나지 않았다. 두 시간째 기다림이지만, 경서는 이 시간이 좀 더 길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오늘은 십팔 년 지기 친구 하나를 하늘로 보내는 날이다. 그의 마지막을 보는 게 두렵고 무서웠다. 그녀의 두려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큰아들은 처음으로 경서 앞에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동안 고생한 거 너무 잘 알고 있다며 감사하다고 했다. 다 부질없었다. 그는 오늘 안에 숨이 멎을 것이다. 의사가 예측한 시간에 중환자실에서 호출이 왔다. 다급히 찾아간 그는 의식도 없고 인공호흡기로 숨만 겨우 쉬고 있었다. 약 투여를 중지하면 그의 심장은 영원히 멎을 것이다. 몇 분 후, 그의 심장이 멈췄다. 일직선으로 존재를 드러낸 ‘삐’ 소리는 베토벤 교향곡 <운명>보다 더 장엄하게 다가왔다. 아들들은 오열했고, 경서는 덤덤했다. 그녀는 그의 지척에서 그의 생각과 삶을 공유했다. 그는 때론 문자로 때론 전화로 힘들 때 그녀에게 솔직하게 그의 감정을 꺼내놓기도 했었다. 경서는 그에게 유일한 소통 창구였는지도 모른다. 남자로서 아빠로서 힘들었을 것이다. 경서는 그녀가 썼던 가면에 고마움을 느꼈다. 그 덕분에 그와 교감하고 그의 힘듦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었다. 이 순간, 인간의 껍질을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는 지금이 그의 팔십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행복한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마지막까지 아들들에게 짐을 떠넘기지 않기 위해 당신보다 어린 아내를 위한 금전적 장치까지 마련해 두었다. 오십을 바라보는 남자 둘이 “아버지, 아버지.”를 목 놓아 부르는 소리가 기이하게 들렸다. 만약, 그가 내려다보고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안타까울까? 아니면 허탈할까?


큰아들의 아내는 시아버지를 영안실로 옮기고 장례식장 호실이 정해지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맏며느리의 역할에 충실했다. 조문객이 올 때마다 울었고, 밥을 먹다가도 울었다. 염할 때는 심지어 꺼이꺼이 울었다. 반면에 경서는 울지 않았다. 묵묵히 도우미들에게 부족한 걸 확인하고, 수육을 더 시키고 밥때가 되면 밥을 찾는 시어머니를 챙겼다. 화장장에서 큰아들의 아내는 화장터 안까지 들어갈 기세로 울었고, 경서는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을 뿐이다. 슬프지 않았다. 슬픔이란 감정이 아닌 더 이상 보지 못하는 그리움에 온몸이 아팠다. 그는 팔십이 되어서야 자신을 찾아 긴 여행을 떠나는 것일 뿐이다. 더 빨리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도 가면이 있었다. 자신의 선택에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완벽하진 않지만 제 손으로 가정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는 소신의 가면. 경서는 뼛가루의 온기가 손에서 가실 때까지 보듬고 안았다. 이제 책임지지 말고, 푸대접받지 말고, 반듯하게 놓인 자신의 길을 가라고 재촉했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가라고. 당신은 당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었다고.


시아버지의 소천 후, 경서는 불면증이라는 또 다른 친구가 생겼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걱정해 주는 새로운 남편이 생겼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가 떠난 곳을 매일 찾고, 그를 보낸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때론 자책하고, 때론 자신을 대신해 준 아내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럴수록 그녀의 불면증은 더 심해졌다. 이제 가면을 벗으려고 했는데, 벗을 수가 없었다. ‘십수 년, 나는 너무 힘들었고, 당신들을 모두 미워했노라.’ 말해야 하는데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팠다. 그녀의 시아버지처럼 팔십이 되는 날까지 이 망할 놈의 가면을 쓰고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그는 가능했을지 몰라도 경서는 그럴 깜냥이 못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찾아온 병이 그걸 증명하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지 않으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녀는 제 발로 정신과를 찾았다. 처음 본 사람에게 자신이 쓰고 있는 가면과 친구를 잃어버린 상실감과 미워했던 이가 갑자기 변해서 어쩔 바를 모르겠다는 말을 터놓았다. 처음 본 사람은 하얀 가운을 입고 제법 신뢰가 가는 말을 그녀에게 해주었다.


“버리세요. 시어머니는 그녀의 핏줄이 돌보게 하세요. 그리고, 형님이라는 분 참 나쁘네요. 물리적 거리가 아닌 마음의 거리를 두세요. 아무도 당신 탓을 하지 못할 겁니다. 이제 본인의 이름으로 사는 법을 찾아보세요. 그게 뭐가 됐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당해지세요. 아이들도, 남편도 이제는 응원해 줄 겁니다.”

병원에서 돌아온 경서는 세 사람의 일본 여행계획을 세웠다. 엄마 아빠와 처음으로 함께 가는 여행이다. 아이들은 남편이 돌보기로 했다. 그새 다 커서 엄마의 여행을 응원해 주는 아이들을 보니 적어도 나는 우리 엄마의 딸이구나 싶었다. 그동안 미안했던 마음이 한 번의 여행으로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여행은 엄마의 딸로 아빠의 딸로 다시 돌아가는 여행이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다. 이제야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첫걸음을 뗀다. 거창한 목표 대신 본질을 향해 가기로 했다. 나로 살아가는 것. 내 이름을 찾는 것. 내가 나를 존중해 주는 것. 육신과 정신이 떨어져 나를 바라볼 때 ‘후회 없는 삶이었다.’ 말할 수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 그녀는 첫 여행을 떠난다.



사진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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