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아한 소리가 벽에 울리며 집 안 전체를 가라앉혀 주었다. 여백이 많은 조그만 아파트는 그 소리만으로 가득 차 놋그릇 같은 작은 물건 안에 집이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켰다. 미세한 떨림마저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한참 동안 작은 집은 그 소리를 붙들고 있었다. 고요를 깬 건 선미의 동작에서 마주치는 옷감의 ‘부스럭’ 소리였다. 1년 전 이사한 집은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 쪽이다. 주방 쪽 창을 열면 산이 달력을 대신해 주고, 거실 앞엔 구불구불한 천이 흘러 날씨에 따라 다양한 색으로 눈을 심심하지 않게 해준다. 늘 파란 색인 줄 알았던 물빛은 날씨에 따라 회색도 되었다가 흙색도 되었다가 빛나는 푸른 색이 되기도 했다. 요가를 끝낸 그녀는 어제 미리 사다 둔 재료로 치킨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조리법은 생각보다 쉬웠다. 약 한 시간의 사투 끝에 제법 그럴싸한 치킨이 완성되었다. 한 번 더 튀길 생각으로 채반에 고이 담아 식탁 위에 두고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1년을 기다렸다. 이제 함께 할 수 있다. 기쁜 마음이 들려던 찰나, 그동안 있었던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차 키를 들고 나서는 그녀의 작은 어깨가 무거워 보였다.
서영이는 누워서 천장을 응시했다. 돌아누우면 삐그덕 소리가 날 것이다. 그럼, 아래층에 있는 채민이가 깰지도 모른다. ‘아, 1층 침대를 내가 선택했어야 하는데….’이층 침대가 좋아 보여서 먼저 하겠다고 한 과거의 자신이 후회스럽다. 최대한 소리 나지 않게 일어나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왔다. 그리고, 침대 맞은편 모서리에 있는 책상에 조용히 앉았다. 어젯밤에 풀다가 포기한 수학 문제를 오늘 아침에 꼭 풀어야겠다는 생각에 잠도 설쳤다. 다행히 채민이는 아직 일어날 낌새조차 없다. 조용히 독서 등을 켜고 문제 풀이에 집중했다. 어제는 그렇게 생각이 안 나더니 5분 만에 풀이가 끝나버렸다. ‘에이, 또 쉬운 거였네.’ 허탈한 마음으로 서영이는 기숙사 공동 샤워장으로 갔다. 양치를 하면서 거울을 보니 얼굴이 부었다. ‘뭐야, 나 살찐 거야? 어떻게 해.’ 양손으로 얼굴을 몇 차례 두드리고 턱 밑에서부터 주먹 쥔 손으로 힘껏 쓸어 올렸다. 채민이가 부기 빼는 동작이라고 알려주었다. 얼굴이 빨개진 채로 수건을 걸치고 방에 돌아오니, 그새 채민이도 일어나 앉아 있었다. 침대에서 눈도 못 뜨고 고개가 반쯤 돌아가 있는 모습이 우습기만 하다.
“야, 강채민, 눈을 떠~.”
“안 떠진단 말이야. 나보다 더 잠꾸러기, 이서영! 너는 언제 다 씻고 온 거야?”
“어제 못 푼 문제가 밤새 생각나서 잠이 와야 말이지. 아침에 5분 만에 풀어버렸어. 멋지지?”
“이서영, 너를 인정하노라, 이제 집에 가거라.”
“뭐래. 오늘 집에 가는 날이거든? 준비해 너도, 정신 차리고 학교 가야지. 짐도 챙겨야 하고, 일어나! 얼른.”
채민이는 서영이의 채근에 마지못해 샤워장으로 향했다. 서영이는 어제 받은 중간고사 성적표를 펼쳐 들고 한숨을 쉬었다. 치킨은커녕 밥이라도 먹을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엄마의 폭풍 잔소리가 귀에 울리는 것 같다. ‘에이, 몰라. 어떻게 되겠지.’
금요일 수업은 이상하게 빨리 끝나는 것 같다. 천천히 끝나도 되련만. 기숙사에 잠시 들러 집에서 세탁할 옷들을 몇 개 챙기고 교문을 나섰다. 집에 가는 발걸음이 지옥문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무겁다. ‘주말에도 기숙사에 있으면 좋겠다. 집 가기 싫어.’ 학교 앞에 일렬로 서 있는 차들 속에서 엄마의 빨간 마티즈를 발견했다. 최대한 굳은 얼굴로 차에 올랐다. 먼저 선수를 쳐야 한다. ‘나한테 아무 말도 걸지 마. 나 지금 기분이 안 좋아.’ 그러나, 엄마에게 통할 리가 없다. 엄마는 차를 출발시키자마자 서영이에게 중간고사 성적부터 물었다. 서영이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집에 가서 보여 줄게.”
“과목별로 점수랑 등급만 말하면 되는데 집까지 뭐 하러 기다려. 말해 봐.”
“한꺼번에 봐. 이번에 못 쳤어, 말했잖아.”
“그러니까, 얼마나 못 쳤냐고? 지난 1학기 기말에도 점수 못 받았는데 지난번보단 나아져야지.”
“지난번보다 못 쳤단 말이야.”
룸미러로 서영을 쳐다보는 엄마의 눈꼬리가 ‘저게 지금 단단히 미쳤구나.’하는 모양새다. 서영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내가 너 여름 방학 때 공부는 안 하고 늦게까지 책볼 때 알아봤다. 고등학생이 지금 책 읽을 시간이 어딨어? 너는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서영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어릴 때는 서영이가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해도 눈까지 마주쳐주며 늘 대답해 주던 엄마였는데,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질문은 엄마가 하고 대답은 서영이가 하는 상황이 되었다. 서영이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서영이 입장에서는 설명이었지만, 엄마에겐 핑계고 말대답이었다. 어느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란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제아무리 말해 보았자, 집에서 자기 말을 들어줄 사람은 없었다. 분명 8차선 왕복 도로였는데 일방통행 길로 바뀌어 있었다. 집에만 가면 숨이 막혔다. 그래서, 모두 ‘불금’이라 부르는 금요일이 서영이에게는 ‘답금’이었다. 답답한 금요일….
서영이는 집에 오자마자 성적표를 내밀고, 독서실에 간다며 집을 나왔다. 등 뒤로 이 따위 성적표를 들고 와서 어딜 간다는 거냐며 소리 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길거리는 그새 어둠이 내려앉았다. 딱히 공부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공부하면 뭐 해. 성적은 매번 떨어지기만 하는데.’ 한참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던 서영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스터디카페 건물로 향했다. 배가 고팠다. 혼날까 봐 재빨리 나오느라 저녁은커녕 교복도 그대로다. 서영이는 1층에 있는 편의점에서 크림빵과 바나나우유를 하나씩 집어 들었다. 오늘따라 계산대에 줄이 길다. 멍하게 서서 기다리는데 누군가가 서영이의 어깨를 툭 친다.
“이서영! 여기서 뭐 해!”
중학교 동창 혜정이었다. 둘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다. 서영이가 특목고를 가고 혜정이는 일반고를 진학하면서 뜸해지긴 했지만, 주말이면 종종 만나서 서로의 애로사항을 이야기하는 오랜 친구이다. 금요일, 집에 오면 유일하게 마음 편한 시간이 혜정이와 만나는 시간인데 오늘은 그조차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만남은 반가움을 몇 배로 더해 주었다.
“야, 진짜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좀 전까지 울적했던 마음이 혜정이 목소리를 듣자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2주 만이네. 그런데 엄청 오래된 거 같아. 넌 잘 지냈어?”
“우리가 잘 지내면 되겠냐? 찌들어 살아야지, 뭐야. 너 이거 저녁이야?”
“응,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나왔거든. 위에 가서 먹으려고.”
“나도 거기 있다가 군것질거리 사러 온 건데. 안에 파는 건 비싸잖아.”
두 사람은 신이 나서 4층에 있는 스터디카페로 올라갔다. 그리고, 가방은 책상 위에 던져두고 휴게실에서 다시 만났다.
“시험 끝나니 살 것 같다. 너희도 시험 어려웠어?”
혜정이는 꼬깔콘을 손가락 다섯 개에 끼우고는 하나씩 입에 넣으며 말했다.
“넌 아직도 그렇게 먹어? 시험이야 당연히 어려웠지. 안 어려운 시험이 있긴 해? 엄마한테 성적표만 던지고 도망 나왔어. 중간고사 망쳤거든.”
혜정이는 덤덤하게 빈 손가락에 꼬깔콘을 다시 채우며 “나도 망쳤어.”라고 말했다.
“그래도 너희 부모님은 혼 안 내시잖아. 우리 집은…. 휴….”
“엄마 아직도 그러셔? 1등을 해도 백 점 아니어서 혼났다고 했잖아. 중학교 때도 너 그 얘기 하면서 자주 울었었는데.”
“사람이 쉽게 변하니? 우리 엄마 그때보다 더 심해졌어. 너는 어때? 성적 잘 나와?”
“여고에서 내신이란, 알잖아? 아무도 못 믿겠어. 지지배들 학교에서는 맨날 공부 못 했다고 징징대면서 시험 치면 다 나보다 잘 쳐. 다 경쟁자야. 친하게 지내는 애가 있는데 이번 시험에서 2등급이 오른 거야. 원래 4등급 정도였거든. 방학 때 족집게 과외라도 받았냐니까 그냥 열심히 했대. 그게 다야. 공유해주면 좀 좋아?”
“우리 학교 애들도 장난 아냐. 금요일만 되면 학교 근처 카페에 과외 선생들이 한 자리씩 다 차지하고 있어. 과외 끝나야 집에 가는 거지.”
“너도 해보지 그랬어?”
“자기가 정해 준 학원이 제일 잘하는 곳이라고 생각해. 나는 거기가 안 맞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통해야 말이지. ‘네가 성의가 없어서 그래! 열심히 안 하니까. 거기 다니는 애들은 다 1등급이라던데.’ 그렇게 말하니까 반박할 수가 없잖아. 게임 끝이지.”
“너도 답답하겠다. 어릴 때부터 네가 너무 잘해서 그래. 나처럼 대충하면 기대가 없는데. 하하. 미안. 우리 엄마는 그냥 알아서 하래. 본인 즐기기에 바쁘셔. 지난주에도 친구들이랑 여행 다녀오셨어. 문제는 그걸 또 아빠가 보내준다는 거지. 아빠 밥 맛없는데, 나랑 동생은 그 밥을 먹어야 하고. 인증사진까지 찍어서 보내줘. 둘 다 내 성적표도 안 봐. 그냥 잘 쳤어? 끝이야. 관심이 없나 봐. 내가 대학을 가든 말든. 오기도 생기고.”
“부럽다. 나는 먹는 거 자는 거까지 전부 감시당하는 기분이야. 얼마 전에 내신이 안 나오면 학종을 잘 받아야 한다고 아빠가 어디서 또 듣고 왔는지 컨설팅 전문가를 알아보고 왔다나. 꼭두각시 같아. 엄마도 나도. 아빠 말 한마디에 조종을 시작하는 엄마와 그 손끝에서 움직이는 인형인 나. 어떨 때는 몸무게 가지고도 난리야. 자기 몸은 생각도 안 하나 봐. 기숙사 있는 학교에 간 건 신의 한 수였어. 하, 진짜로 네 친구한테 성적 오르는 비법 좀 물어보고 싶다, 정말.”
“근데 말이야. 소문이긴 한데, 공부 잘하는 약을 먹었을 거라는 말도 있어. 막말로, 7등급에서 4등급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런데 4등급에서 몇 달 만에 2등급이 되는 건 말처럼 쉽지 않아. 안 그래?”
“그렇긴 해. 그나저나, 성적 오르는 약? 그런 약이 있어?”
“설마 그런 약이 있겠냐? 친구들 말로는 ADHD 치료제로 쓰이는 약인데 집중력을 높여준대. 먹는 애들 생각보다 많은가 봐. 쉽게 구할 수도 있고.”
“그렇구나. 효과가 있으니까 많이 찾는 거 아니겠어?”
“그럴지도…. 우리는 한두 문제로도 등급이 왔다 갔다 하니까, 그런 유혹이 있으면 떨치기 어렵기 마련이잖아. 사실, 나도 얼마 전에 검색해 본 적 있어. 왠지 겁나서 그만뒀지만.”
혜정이와 휴게실에서 나온 서영은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수학을 망쳤다. 4등급. 나머지 과목들은 아슬아슬하게 3등급에 걸쳤다. 수학 문제는 다 풀 수 있는 문제들이었는데 과정까지 다 풀어놓고 마지막에 정답이 항상 틀린다. 수학 문제집을 차분하게 풀어 보았다. 막힘없이 잘 풀린다. 오답도 없다. 뭐가 문제일까? 한 단원을 풀고, 잠시 의자에 등을 기댔다. 옆을 돌아보니 다 고개 숙이고 있는 아이들밖에 보이지 않는다. ‘쟤들은 어디서 저런 집중력이 나올까? 나는 한 단원 끝내기도 힘든데, 엉덩이가 가벼운 건 맞지, 내가.’ 잠시 쉬려던 마음을 고쳐먹고 다음 장을 펼쳤다. 50분만 다른 생각하지 말고 집중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공부 잘하는 약이 있대.’
혜정이의 말이 머릿속에서 윙윙거렸다. 서영은 집중하기로 한 자신과의 약속은 어느새 뒤로 한 채 핸드폰에서 머릿속에 맴도는 구절을 검색했다. 관련된 글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당근에도 올라와 있었다. 엄청 효과를 보았고 자신은 이제 목표한 자격증을 획득해서 필요가 없다며 선착순으로 판매하겠다는 글이 보였다. ‘선착순?’ 서영은 생각할 틈도 없이 사겠다며 문자를 보냈다. 같은 동네여서 믿었는지도 모른다. 당근 프로필이 예쁜 여자여서인지도 모른다. 20분 뒤, 1층 편의점 앞에서 서영이보다 두세 살 많아 보이는 여자와 조그만 종이가방과 돈을 주고받았다.
지금쯤이면 다들 자고 있겠지. 조용히 현관을 열고 마주하는 방문을 열자, 엄마가 그녀의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녀는 양팔을 꼬고 앉아 서영이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고요한 밤, 서영이의 방만 전운이 감돌고 있다. 서영이 엄마의 앙칼진 목소리가 방문을 넘지 않을 정도의 데시벨로 날카롭게 울렸다.
“어디서 놀고 온 거야? 공부하고 온 건 맞아?”
“독서실 사장님한테 CCTV 보여달라 그래. 그럼 되잖아?”
“네가 분명히 특목고 자신있댔잖아. 그런데 이게 뭐야?”
“내가 안 간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어쨌든 그래서 갔잖아? 게다가 난 아직 1학년이고, 내신이 안되면 정시 치면 돼. 그만 좀 해. 이제.”
“4등급 주제에 말대답은 아주 꼬박꼬박. 아빠 너 성적표 보지도 않았어. 볼 가치도 없대. 다음 시험에 등급 안 오르면 알아서 해!”
그녀는 서영이는 쳐다보지도 않고, 휙 나가버렸다. 저녁은 먹었는지 묻지도 않았다. 온몸에 힘이 다 빠졌다. 몸은 침대 끄트머리에 고정되고 정신은 꽉 막힌 방안 여기저기에 부딪혀 아프고 멍들었다. 벽마다 가득 들어찬 전집 세트를 보고 있자니 숨이 턱 막힐 것 같았다. 창문을 벌컥 열었다. 새벽 공기는 벌써 서늘하다. 아직 겨울이 오려면 멀었는데, 기말고사가 곧이겠다는 걱정이 앞서 창문은 다시 닫아버렸다.
서영이의 기억 속엔 책이 있었다. 창작 동화부터 수학 동화, 과학 동화, 그리고 고전문학, 서양 고전문학 전집까지 읽고 또 읽었다. 서영이는 독서를 꽤 좋아해서 엄마의 책 수집은 계속 이어졌다. 벽이란 벽은 책장이 들어차 틈이 없었고, 집 안은 갖은 물건들로 넘쳐났다. 매일 운동을 한다는데 그녀의 몸무게는 전혀 줄지 않아 보인다. 서영이 잡도리 외에 매사 의욕이 없는 엄마는 주방 일도 늘 미루기 일쑤였다. ‘자기나 잘하지. 엄마 아빠는 좋은 대학 나오지도 못했으면서 왜 나한테만 그러냐고.’ 정신과 몸이 합체되자 서영이는 약이 올랐다. 잠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릿속엔 성적표만 둥둥 떠다녔다. ‘등급 올리는 게 쉬워? 나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거냐고?!’ 서영이는 복잡한 걱정만 가득 안은 채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선미는 딸을 깨우러 방으로 갔다. 서영이는 벌써 일어나 책상에 앉아 있었다. 뒤로 살짝 가보니 진짜 공부 중이다. 모른척하고 나왔다. 어제 혼낸 게 미안하기도 하고, 반면에 아직 자면 한 소리 하려고 했더니 알아서 책상에 앉아 있는 아이를 보니 기분이 좀 풀렸다. 선미는 서영이에게 먹고 싶은 거 없냐고 물었다. 서영이는 대충 달라는 말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주먹밥을 만들어서 서영이 방에 넣어 주었다. 주말 동안 서영이는 화장실 가는 시간과 학원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방에 틀어박혀 공부만 했다. 칭찬은 독이다 싶어 선미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서영이가 집중할 수 있도록 최대한 조용히 있었다. 학교로 돌아온 서영이는 모든 면에서 전과 다른 사람이 되었다. 반달에 가까운 눈웃음이 사라지고 그 자리엔 매서운 눈빛이 자리 잡았다. 친구들과 수다 떠는 시간도 현저히 줄었다. 기숙사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채민이는 서영이가 낯설게 느껴졌다.
“이서영, 너 다른 사람 같아, 지금 한 시간 넘었어. 지금쯤 침대에 가 누워야 하는 게 정상인데? 주말에 엄마한테 많이 혼났냐?”
“나 이번 시험 등급 무조건 올려야 돼. 말 시키지 마.”
“알았어, 알았어. 열심히 해.”
서영이는 기말고사에서 전 과목을 기어이 2등급까지 올렸다. 특목고에서 내신 1등급을 올린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잠도 거의 못 자고 공부했다. 움직이는 시간이 줄어들어 살은 좀 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대학교 들어가서 빼면 돼.’ 낙천적인 서영이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픽업 줄 맨 앞에 엄마의 빨간 마티즈가 보였다. 이번엔 성적표를 당당히 보여 줄 수 있다는 자신감에 설레기까지 했다. 아니나 다를까, 차에 타자마자 엄마는 성적표부터 보여달라고 했다.
“엄마, 나 전부 2등급이야. 대단하지 않아?”
대답 없이 성적표부터 보던 그녀는 혀를 차며 대답했다.
“이거 봐, 국어는 한 문제만 더 맞았어도 1등급 됐겠네. 넌 아쉽지도 않니?”
“아니, 2등급까지만 올리라며, 잠도 못 자고 공부했어. 칭찬 좀 해주면 안 돼? 2학년 때 더 잘하면 되잖아.”
“10월 모의고사 성적은 죽 써놓고, 내신 등급 오른 것만 신이 나셨네, 아주. 살찐 거 봐.”
서영이는 입을 다물었다. 안개에 걸쳐진 사다리 같았다. 분명 끝이 있을 것 같아서 필사적으로 올라갔는데 다시 안개 속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집 앞에서 내려달라고 한 서영이는 집으로 가지 않고 독서실을 찾았다. 그리고, 한 시간 뒤 편의점 앞에서 누군가를 만났다.
선미는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서영이는 어디 갔냐는 남편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성적표만 내밀었다.
“이 봐, 2등급 쉽잖아. 그동안은 왜 안 했대? 머리만 좋으면 뭐 해. 엄마 닮아서 게으른걸. 계속 신경 써. 안 그러면 또 4등급 되는 거야.”
속사포처럼 익숙한 대본을 내뱉은 남편은 겉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동네 형들이랑 술 한잔하고 오겠다며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란다. 선미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남편이 아이에게 하는 잔소리가 듣기 싫어 자처해서 악역을 맡았다. 남편과 서영이는 서로 대화를 하지 않은 지 제법 되었다. 서영이의 성적이 올라야 남편이 한마디 할까? 선미는 부인하지 않는다. 남편에 대한 화를 딸에게 그대로 전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오늘도 잘했다고 한 마디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또 가시 돋친 말을 내뱉고 말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딸이 어릴 때만 해도 책을 잘 읽어 신이 나서 새로운 책을 사줬다. 그리고, 옆에서 읽어주기도 했다. 궁금한 게 어찌나 많은지, 말은 또 왜 그렇게 잘하는지. 자기가 낳은 딸이지만 너무 기특하고 신기했다. 바이올린이 배우고 싶다고 해서 선생님도 불렀다. 하지만, 남편은 그런 선미를 몰아세우고 탓했다. 모임만 갔다 오면 “책 좀 그만 사고, 바이올린 그딴 거 말고 공부 좀 시켜. 다른 집 애들은 벌써 선행한다는데, 집에서 뭐 하냐? 그런 거나 좀 알아보고 하지.” 핀잔은 모임에 다녀오는 횟수만큼 늘었다.
“쳇, 자기는 지방국립대 나와놓고, 그렇게 잘났으면 직접 가르치든가….”
선미는 서러움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냉장고에 있는 아이스크림을 꺼냈다. 얼굴까지 오르려던 화가 차가운 기운에 조금은 내려가는 것 같다. 맥주도 한 캔 꺼냈다. 남편의 차디찬 말 한마디가 그녀를 불덩어리로 만들었다, 차가운 게 아니면 지금 그녀의 기분을 감당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남편은 서영이의 학원을 늘리라고 했다. 방학 때 아니면 언제 하냐고 어디서 또 주워듣고 온 모양이다. 그러면서, 그런 건 보통 엄마들이 알아서 하는 거 아니냐고, 돈 벌어 오는 것도 힘든데, 내가 그런 거까지 알아봐 줘야 하냐며 비아냥댔다. 선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해봤자 듣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무능하고 무기력한 엄마라는 소리만 되풀이할 것이다. ‘우리 딸도 이런 마음이겠네. 힘들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딸을 대하면 쓴소리부터 나가니 힘들고 답답했다. ‘나부터 좀 달라져야 할 텐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하기만 했다.
서영이는 선미가 알아본 학원 방학 특강을 별말 없이 잘 들었다. 그리고, 새 학년이 되어서도 예전에 비해 엉덩이 들썩거림이 현저히 줄었다는 게 느껴졌다. 곧 3월 모의고사이다. 방학 때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는 모의고사 성적표가 증명해 주겠지. 모의고사를 앞둔 주말, 여지없이 선미는 딸을 픽업하러 학교 앞으로 갔다. 백미러에 비친 딸은 걸음걸이에 힘도 없고, 살도 많이 빠져 보였다. 일주일 사이,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뒷자리에 올라탄 서영이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디 아파?”
“아니요.”
“배고파?”
“아니요. 괜찮아요.”
다른 사람 같았다. 방학 때부터 말수가 줄긴 했다. 그리고, 책상 앞에 있는 시간은 더 늘었다. 공부에 진심으로 빠졌나보다 생각하고 기뻐했었다. 남편이 선미한테 하는 잔소리도 줄어서 나쁘지 않은 방학이었다. 다 좋았다. 다음 주에 있을 모의고사 성적이 오르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선미는 애써 걱정을 밀어 넣었다. 공부 스트레스겠지. 좋아하는 치킨이라도 시켜 줘야지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다. 오늘 저녁은 화목한 저녁 시간이 되려나. 선미는 약간의 기대마저 생겼다.
기대와 달리, 서영이는 치킨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더욱이 부모가 앉아 있는 식탁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물 한 잔을 챙겨 들더니 방에 들어가자마자 책상 앞에 앉았다. 선미는 점심 급식 이후 아무것도 먹지 않았을 딸이 걱정되었다. 시간이 꽤 흘러 밤 아홉 시가 넘었는데도 배고프다는 소리도 하지 않는다. 선미는 딸이 좋아하는 참치마요 주먹밥을 만들어서 방으로 들어갔다. 선미가 애써 정리해 둔 방에 책가방이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다. 빨랫감은 들고 오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오늘은 잔소리하지 말자.’ 마음을 다지고, 혹시나 가방 안에 빨랫감이 있나 싶어 조용히 가방 지퍼를 열었다.
“손대지 마요! 나가요!”
어찌나 크게 소리를 지르는지 선미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렸다. “아니, 빨래 있나 찾았어, 알았어. 나갈게.” 그녀는 갑작스러운 딸의 행동에 놀라 급히 방을 나왔다. 하필 거실에 있던 남편이 고함을 들고 딸의 방 안에 들어서려는 걸 선미가 가로막았다. 아무 일 아니라고 말하고 나가라는 수신호를 하며, 들어가려는 남편을 잡았지만, 선미 따위 아랑곳도 하지 않는 남편은 어느새 딸의 방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꼴사나운 뒷짐을 지고, 어김없이 독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요새 좀 열심히 하는 것 같아서 조용히 넘어가고 있는데 지금 어디서 고함질이야. 공부가 유세야? 남들 다 하는 거 심지어 잘 하지도 못하면서. 방학 내내 돈 들여 공부시켜 줘도 고마운 것도 모르는 놈이. 다른 집 애들은 알아서 잘만 하는데, 아우, 씨.”
남편은 자기 분을 못 이겼는지 그 길로 밖으로 나가 버렸다. 선미는 딸의 방문을 닫고 조용히 나와 안방으로 향했다. 티브이 소리인지 선미의 울음소리인지 구분할 수는 없었다. 닫힌 방문 안, 두 사람은 각각의 사정으로 울음을 삼켜야 했다. 억울함과 분함, 서러움과 미안함. 선미는 한참 울다가 잠이 들었다. 남편은 새벽에야 들어왔다. 술 냄새에 잠이 깬 그녀는 거실로 나와서 소파에서 잠을 청했다. 간밤에 너무 울어서인지 아침이 되자 머리가 아팠다. 약을 하나 털어 넣고 다시 소파에 누웠다. 술이 깼는지 남편이 슬 다가왔다.
“서영이 뭐래? 별말 안 해?”
“나도 이제 몰라, 숨 막혀서 살겠어? 나도 미칠 것 같은데 서영이는 오죽하겠냐고, 아빠 엄마가 둘 다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데, 당신이 해결해. 나는 이제 모르겠으니까.”
남편도 어제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딸의 방문을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서영아, 일어났으면 아빠랑 얘기 좀 하자.”
몇 번을 불렀지만, 대꾸가 없었다. 남편은 슬슬 화가 또 나는지 언성이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선미가 딸의 방문을 열었다. 서영이는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울다 잤나 보네.’ 짠한 마음이 올라왔다. 그 활발하고 끼 많던 서영이는 찾을 수 없었다. 선미는 문득 그때가 그리워졌다.
“아직 자나 봐. 내버려둬, 좀.”
“시간이 몇 신데, 지금 10시 넘었어. 이서영 일어나 봐.”
그래도 서영이는 기척이 없었다. 선미는 서영이 곁으로 다가갔다. 시큼한 냄새가 훅 들어왔다. 침대 위는 토사물로 뒤덮여 알록달록 얼룩져 있었다.
위 세척을 해야 한다는 의료진의 설명을 듣고, 밖에서 기다렸다. 선미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남편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구급대원들이 서영이 방에 도착했을 때, 대원 중 한 명이 조그만 약 봉투를 챙겨서 가는 걸 보았다. 무사해야 할 텐데. 선미의 머릿속엔 그 생각밖에 없었다. 한참 기다려 담당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약물을 과도하게 복용한 거 같습니다. 성분 분석은 저희가 하는 게 아니라서, 구급대원분이 갖고 온 봉투에 몇 알 남아 있는 것을 보니까 ADHD 치료에 쓰는 약이랑 디에타민을 함께 다량 투여한 것 같습니다.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 중환자실로 이송될 거고, 면회 시간은 간호사분께서 따로 설명해 주실 겁니다.”
선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서영이가 약을 먹다니, 그럴 리가 없다. 믿기지 않는 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넋이 나간 채 핸드폰으로 방금 의사가 설명한 약을 검색했다. ‘집중력 향상을 위해 수험생들이 즐겨 찾지만, 부작용 또한 심각하다.…디에타민, 식욕억제제….’서영의 아빠는 할 말을 잃었다.
선미는 남편과 법적으로 남이 되었다. 더 이상 그와 함께 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지만, 알 바 아니었다. 또 험한 말을 내뱉었다. 자기가 뭘 잘못했냐며 발악하기도 했다. 바람피운 적도, 가족을 등한시한 적도 없다고 억울하다고 했다. 하지만, 선미는 지키기 위해 이기적인 그를 버릴 필요가 있었다. 그동안 한 번도 하지 못했던, 그녀의 억울한 감정을, 그가 사용했던 언어 그대로 똑같이 돌려주었다. 한 번도 아내의 냉소적인 모습을 본 적이 없던 그는 그제야, 선미를 놓아 주었다. 지나간 20년이 허무했다. 참고 살아온 세월은 상처만 가득 남기고 말았다. ‘왜 벗어나지 못했을까? 왜 아이에게 내 감정을 쏟아부었던 걸까?’ 이제 살아야 한다. 지킬 것들을 위해 그리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기 위해.
선미는 무거운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과연 마음을 열었을까? 아직 마음이 풀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야만 한다. 선미는 시동을 걸었다. 이제 눈 감고도 갈 수 있는 곳. 아직도 꿈만 같다. 꿈속이라고 믿고 싶었다. 현실을 마주하는데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평화로운 일상, 평범한 가족, 그 이상을 바란 건 아니었는데, 모든 게 자신의 탓인 거 같아서 또 눈물이 흘렀다. 이제 자책하지 않기로 스스로 다짐했는데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한참 흘리고서야 다시 마음을 먹었다는 듯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도로를 한 시간 넘게 달렸다. 이제 곧 봄이 오려나 보다. 개나리가 여기저기 피어있는 걸 보니…. 시간만이 제 역할을 하고 살아가는 것 같아 그가 부러워졌다. 차에서 내리기 전, 퉁퉁 부은 눈을 손으로 눌렀다. 꽃을 보며 계속 눈물을 흘린 건 계절이 아름다워서였을 것이다. 그녀는 계단을 올라 2층으로 향했다.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간호사들이 짐 가방을 먼저 가져다준다. 담당 의사와 면담을 마지막으로 딸은 모습을 드러냈다. 선미를 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와서 안긴다. 자기를 마다하지 않는 아이를 보니 가슴이 벅차올라 숨이 막혔다. 봄꽃 따위에는 비교할 수도 없는 아름다운 꽃이다. 꽃 같은 손에는 늘 그렇듯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병원 관계자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그녀의 마티즈에 짐을 실었다. 잠시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선미는 이곳에 서영이를 두고 나갈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딸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딸은 그새 엄마의 눈물을 닦아준다. 그리고, 선미의 손을 살짝 문질렀다. 이 따뜻한 온기를 하마터면 두 번 다시 못 느낄 뻔했다. 선미는 잠시 차를 길가에 세웠다. 숨이 가빠져 급히 공황장애 약을 한 알 먹었다. 서영이는 그런 엄마를 말없이 지켜보며 살갑게 등을 쓸어주었다.
서영이는 처음 와 본 집이다. 예전 집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집. 하지만, 거실에 높다랗게 세워져 있어야 할 책장은 없었다. 안락해 보이는 작은 소파 하나와 거실 창 쪽으로 요가 매트 하나가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놋그릇처럼 생긴 그릇 하나가 놓여 있었다. 선미가 치킨을 데울 동안 서영이는 싱잉볼을 울렸다. 그리고, 자주 해본 듯 요가 매트 위에 앉아 명상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주방 쪽 엄마를 향해 툭 한마디 던졌다.
“엄마, 나 지금 너무 행복해.”
선미는 싱크대 물을 틀었다.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은 그녀의 죄책감이자 지금이라도 다시 찾은 행복이자, 새롭게 시작하자는 다짐이었다. 집 앞을 지나는 냇물처럼 유속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천천히 가자. 오늘은 딸과 맛있는 치킨이면 충분하다. 싱잉볼의 여운과 치킨을 튀기는 소리가 오묘하게 어울려 집 안을 행복한 소리로 가득 채웠다.
<사진출처:샵프리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