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며칠 전 조퇴를 못하게 한 게 내심 미안했던 나는 아이를 다시 상담실로 불렀다. 지난번과 달리 경계심이 가득했다. '역시 당신도 똑같아.' 냉소적인 아이의 눈빛은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말을 시작해야 하나...' 아이에게 짜증 냈던 일을 상기하며 오늘은 달라야 한다고 속으로 다짐하며 말을 꺼냈다.
“진서야, 기다릴게. 말하고 싶을 때 해.”
하지만, 아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엊그제 내 모습에 실망한 것이 확실했다. 모두가 상담을 꺼려할 때 먼저 해도 되냐고 요청한 녀석이었다. 분명 이유가 있었을 텐데, 너무 차갑게 대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건 다 잠을 못 자서 그런 거야.’ 괜한 탓을 불면증에게 돌리고 진서를 쳐다보았다. 답답하지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기다림은 퇴근 시간을 넘겼다. 그러나, 나는 진서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우리 햄버거 먹으러 가자. 선생님 배고프다.”
상담실에서는 더 이상 아이의 얘기를 듣기가 힘들 거라는 판단이 섰다. 나는 진서와 함께 학교 근처 패스트푸드점으로 향했다. 들어가려다 잠시 멈칫하는 진서를 보았다. 안을 들여다보니, 학교 아이들 몇몇이 앉아 있었다.
“사람이 많네. 우리 햄버거 말고 돈가스 먹자. 저기 맛있는 데 있어.”
나는 진서를 데리고 근처 2층에 위치한 돈가스 집으로 향했다. 답답한 교실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아이는 훨씬 안정되어 보였다. 메뉴를 고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단일 메뉴 식당이다. 앉자마자 인스턴트인 게 분명한 크림수프가 나왔다. 나는 허기진 배를 일단 수프로 때웠다. 그제야 진서도 수프에 수저를 담갔다. 소심하던 수저는 곧 바닥을 긁을 정도로 저돌적으로 바뀌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제야 웃음이 났다.
“이건 언제 먹어도 맛있어. 선생님 어릴 때도 많이 먹었거든.”
진서는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내 눈을 바라보았다. 냉소는 가고 안정이 잠시 찾아온 듯했다.
“두툼한 돈가스보다 여기 이런데가 더 맛있다니까. 원래 돈가스는 소스맛으로 먹는 거거든.”
나는 일급비밀이라도 알려 주는 사람모양 손짓을 해가며 소곤거렸다. 그 모습이 우스웠는지 진서는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다 먹은 수프 그릇을 만지작 거리며 조용히 말을 꺼냈다.
“왜 안 물어보세요?”
“뭘?”
“제가 선생님한테 상담신청한 이유요.”
“먼저 신청했으니까 먼저 말하는 게 맞지 않아?”
“아.....”
“아이고, 심각하긴. 배고파! 먹고 얘기해도 되니까, 일단 먹자.”
나와 진서는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먹어 치웠다. 그러고 나서 조심스레 진서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자, 이제 배도 어느 정도 채웠으니까 들어볼까? 진서 얘기?”
진서는 다시 긴장한 듯했다. 좀 전의 객기는 또 어딘가로 숨어든 모양이었다. 기다려주기로 했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저기요, 선생님. 저 집 나오고 싶어요.”
뜬금없이, 가출이 하고 싶다니. 교우관계의 문제가 아닐까? 내 촉의 방향은 그쪽만 향하고 있었다.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왜 집을 나오고 싶은지 물어봐도 될까?”
“부모님이 매일 싸워요. 그리고, 저를 때려요. 돌아가면서.”
진서는 옷을 걷어 보라색이 된 팔을 내밀었다. 나는 순간 입을 틀어막았다.
“진서야, 아니 이걸, 어쩌면 좋니. 안 아팠어?”
“아팠어요. 그런데, 어쩔 수 없잖아요.”
“집 나오면 갈 데는 있니?”
“없어요. 선생님이 좀 말해 주세요. 경찰은 말고, 왜 동사무소 그런데 있잖아요.”
“저기, 진서야. 내가 부모님을 한 번 만나 뵈면 안 될까?”
“아니요. 싫어요.”
너무나 단호해서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이의 얘기만 들을 수는 없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아동 폭력이 의심되면 곧장 신고해야 하는 게 맞다는 걸 알지만, 부모에게 맞았다는 걸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팔에 든 멍 말고는 다른 피해 흔적은 없어 보였다. 적어도 그 이외의 곳은 보여 주지 않았다. 만약, 아동 폭력이 맞다면 이 아이의 거처는 어떻게 되는 걸까? 경찰에 신고하지 말아 달라... 그럼 어쩌자는 것인가? 교묘한 부모 거나 되바라진 아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이를 잘 달랬다. 진서도 내 걱정을 눈치챘는지 매일 싸우는 건 아니니 오늘은 방에서 조용히 있으면 괜찮을 거라고 한 마디 보탰다. 아이와 헤어지고 차에 오르자마자 익숙한 포켓에서 두통약 두 알을 꺼내 먹었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출근하자마자 교장 선생님과 의논을 좀 해보자.’
출근을 서둘렀다. 교장은 늘 일찍 출근한다. 가급적 독대를 하고 싶었다. 빠른 걸음으로 교장실로 향했다. 교감과 대화를 나누다 갑작스레 등장한 나를 두 사람은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하, 하필 교감이야. 어쩔 수 없지.' 난처한 내 표정을 읽었는지 교장은 차 한 잔을 권하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어제 진서와 나눈 대화를 이야기했고, 두 사람은 진지하게 내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교감이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이 말만 듣고 섣불리 행동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아요. 진 선생님. 일단, 부모 상담부터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절차라는 게 있잖아요. 아이 팔에 든 멍이 부모가 그랬다는 증거도 없는데, 안 그래요?”
나는 아이를 믿고 싶었다. 일단 가정폭력이 의심되는 정황을 발견하면 즉시 경찰에 신고하도록 되어 있지만, 교감은 만에 하나, 오해로 인한 불상사를 먼저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이가 우선이 아니라, 그들의 위신, 학교의 명예. 그런 것 따위들.
“아이가 극구 반대를 하는 입장이에요. 그런 상황에서 아이 부모를 상담하다가 아이가 상처라도 받게 되면요?”
가만히 듣고 있던 교장이 조용하게 한마디 꺼냈다.
“진 선생은 그럼 빠져요.”
“네? 제 반 아이예요. 제가 어떻게 빠집니까?”
“부모 상담은 교무 부장에게 일임할 테니까. 진 선생은 아이와 한 번 더 상담을 해보도록 해요. 그럼 되지 않겠어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 방법이 가장 합리적 인지도 모른다. 교감 역시 ‘학교 측에서 아이들과 상담을 하던 중에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사실 확인차 부모 상담이 필요하다.’고 하면 된다며 별일 아닌 듯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곧 교무 부장을 호출했다. 교감 전화에 한달음에 달려오던 교무 부장은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인사도 없이 지나쳤다. ‘망할 영감’ 나는 속으로 욕을 내뱉고 교실로 향했다. 교실은 아직 비어 있었다. 이제 부지런한 녀석들부터 하나씩 자리를 채워가겠지. 담임이 아침부터 교실에 있는 게 이상했는지 아이들은 쭈뼛거리며 인사하고는 제 자리에 가 앉았다. 반 이상 교실이 채워졌는데도 진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간당간당하긴 해도 지각은 안 하는 녀석이다. 나는 진서의 등교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를 데리고 상담실로 갈 생각이었다. '여차저차해서 학교에서 그래서......' 설명을 미리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1교시가 지나도, 2교시가 지나도 진서는 등교하지 않았다. 내가 교장실을 나간 직후, 진서의 부모와 통화가 됐다는 얘기를 전달받았다. 아이는 수업이 끝날 때가 되었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도 꺼져 있었다. 상담을 오겠다던 부모 역시 통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예감이 들던 그때, 분노와 멍투성이로 변해 있는 진서의 얼굴이 마치 흑백 티브이 속에 갑자기 등장한 컬러 광고처럼 눈에 들어와 박혔다. 나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기억도 그 자리에서 멈춰버렸다. 내 정신과 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수십 분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