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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아줌마 Jan 07. 2022

40, 시작하기 좋은 숫자야!

4. 다시 또 시작이야?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1차 시험에 합격했다. 시험 치고 다녀오자마자 시험지며 책들을 다 내팽겨뒀던지라 가채점 그런 거 따위도 해 볼 생각을 못했다.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하고 끝내려고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고..

또다시 고민에 휩싸였다. 떨어졌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이런 고민 따위 안 해도 되지 않는가. 이런 걸 사서 고생이라고 했나.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닌데 말이다. 다 내 성질머리가 만들어낸 것이니 누구 탓을 할까.


그나저나, 이 짓을 1년을 더 해야 한다고? 2차 시험만 준비하면 되긴 하는데.. 난감하다. 남편한테 얘기했더니 벌써 부동산 소장님 대하듯 한다. 이제 슬슬 퇴사를 하면 되려나 말도 안 되는 소리까지 늘어놓고 말이다. 아직 1차밖에 통과 못했다고 이 양반아!!


40 아니 이제 해 바뀌면 41.. 아직 꼬맹이들은 유치원을 다니고 있고, 공인중개사 학원을 다닐 시간도 안된다. 시어른들이 두 분 다 병원을 왔다 갔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내가 동행해야만 한다. 아예 접을 것인가, 고난길이 분명해 보이는 저 길을 그래도 완주를 해야 할 것인가. 선택은 내 몫이나 바라보는 남편의 눈이 따갑다. 뭘 고민하냐는 듯한 눈이다. 그럼 집안일이라도 좀 도와주든가. 말로만 파이팅이다. 


나에겐 평생학습권이 있다. 어쨌든 1차 합격을 센터에 알려주고 1년 연장의 기회를 얻었다. 그러자 곧 날아온 2차 시험과목 교재들. 엄청나다. 과목도 전부 듣도 보도 못한 것들뿐이다. 부동산공법, 부동산세법, 부동산공시법, 공인중개사법.. 책만 봐도 답답함이 몰려온다. 부동산공법은 책 두께도 어마어마하다. 


'신이시여 저에겐 아직 1년의 시간이 있사옵니다~~' 


아직 시간이 많으니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 마음을 다잡았다. 전적으로 도와주겠다는 남편의 약속도 받았겠다 못할 것도 없지 뭐. 밤 9시부터 다시 딸아이와 책상에 마주 앉았다. 그렇게 한 시간을 같이 공부하고 아이가 자러 들어가면 나는 12시까지 꼬박 공부하는.. 똑같은 패턴..? 설마....

시작할 때의 마음이 쭉 동일하게 가주면 참 좋을 텐데.. 마음이란 늘 변하기에 문제다. 일주일에 이틀도 힘들었다. 티브이 드라마는 왜 그렇게 재미있으며 육퇴 후 즐기는 맥주 한 잔의 맛은 포기할 수가 없다. 자기와의 싸움인가. 식탁 위에 놓인 노트북과 책들을 보니 숨이 턱턱 막힌다. 아니, 아직 시간이 많잖아. 2차 시험은 내년 10월이라고~~ 그렇게 나는 연말까지 1차 합격의 여유를 즐겼다.


문득 정신 차리고 보니 이미 목련이 피기 시작했다. 

아..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구나. 부랴부랴 다시 공부 계획을 세웠다. 부동산공법을 일주일째 공부하던 어느 날, 나는 이 과목을 통과할 수 없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40점만 받자. 과락만 면하자는 전략을 짰다. 도저히 이해도 안 되고 암기도 안된다. 공법은 최저점을 기준으로 삼고 암기 위주인 과목들을 집중 공략해서 전체 평균 점수를 올린다는 전략이다. 도대체 공법은 왜 이렇게 어렵고 방대하게 정해놓은 거냐고. 우리나라 도시공학자들과 공무원들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다. 


1년은 생각보다 금방이다. 금세 벚꽃이 지고 푸르른 여름이 되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 고생을 하고 있는가를 되뇔 틈도 없이 내 하루는 쳇바퀴 돌듯 돌아갔다. 남편을 깨우고 출근시키고 아이들을 등교, 등원시키고 잠시 집안일을 해두고는 장을 보거나 잠시 짬을 내 공부를 하기도 했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시어른들 병원을 모시고 갔다 왔다. 오후엔 다시 아이들 하원에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저녁식사와 뒤처리를 끝내고 아이들을 재운 뒤 다시 공부하는 식이다. 중간중간 이동할 때는 이어폰으로 강의를 들었다. 이런 생활이 10월까지 이어졌다. 공부는 하면 할수록 어렵고, 모의고사 문제는 풀어도 풀어도 만족스럽지가 못했다. 


아 이제라도 포기할까? 2차에서 떨어지면 다시 1차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생각만 해도 아득하다. 아니지, 아예 떨어지면 확 손 놓으면 되니까 대충 답안지 내버리고 자유의 몸이 되어버릴까? 이건 머 작년 이맘때와 복붙이네... 또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꼴이라니.. 


어김없이 온다. 결전의 시간은. 똑같은 장소에 나는 작년과 같은 복장으로 앉아 있다. 오전 1차 시험이 끝나고 오후가 되어서 입실을 했고 시험 시간이 조금 더 길다는 차이는 있지만, 작년 그 냄새와 거의 동일한 곳에 올해도 앉아 있다. 이제 끝이다. 붙어도 떨어져도.. 더 이상 나는 이 도전은 하지 않을 거라고 연필을 다잡으며 마음을 먹었다. 그냥 쉬운 걸로 도전할걸.. 이건 너무 어렵잖아. 지나간 내 1년이 너무나 현실감 없이 느껴졌다. 다시 주사위는 던져졌다. 하지만, 이번엔 어떻게든 끝이 난다. 그 사실이 지난 1년을 버티게 해 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합격 불합격과 관계없이 나는 이 공부를 끝낼 거니까. 


오늘 저녁은 닭발 먹어야지. 그것도 아주 매운 닭발.. 시험지를 받아 들며 나는 오로지 끝나는 그 시간만을 상상했다. 누구보다 빨리 튀어나가리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곳을 빠져나가면서 닭발을 주문해야지. 그리고 1년간 힘들었던 내 시간을 나라도 위로해줘야지. 다른 생각은 1도 들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빨리 여기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밖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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