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정아줌마 Jan 19. 2022

40, 시작하기 좋은 숫자야!

5. 짜릿한 성공

후회 없는 시간이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나는 최선을 다했다. 이제 하늘에 맡겨야지~


가채점 후 우울한 한 달을 보내기 싫어서 이번 2차 시험도 과감히 모든 책과 시험지를 다 봉인해버렸다. 한 달 동안은 다 잊고 푹 쉬어줄 요량으로 말이다. 고생했으니 친정 식구들과 제주도도 다녀오고 그동안 못 만난 지인들도 열심히 만났다.


한 달은 진짜 금방이다. 떨어졌지 뭐. 뭘 기대하는 거야?

혹여나 기대감이 올라올까 봐 아침마다 아니 매시간마다 세뇌를 했던 거 같다.


합격자 발표 당일이 되었다. 10시가 되면 조회해봐야지 마음을 먹고 덤덤하게 생각하며 아이들 등원을 시켰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띵똥... 문자가 온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잠시 차를 갓길에 세우고 문자를 확인했다. 나는 덤덤한 척한 거지 덤덤한 게 아니었다. 그때부터 온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어쩌고 저쩌고) 28회 공인중개사 합격하셨습니다'


합격이다. 세상에... 합격하면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그냥 어안이 벙벙했다. 오히려 합격을 알기 전보다 더 덤덤해지는 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되는 느낌이랄까? 이걸 내가 해냈다고? 믿어지지가 않았다. 바로 합격 조회 사이트에 들어가서 한번 더 확인했다. 합격!! 물론 점수는 엉망이다. 합격한 게 어디야!! 나이 40에 시작한 공인중개사 공부가 41살에 합격이라는 결말로 해피엔딩이다. 지난 2년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간 건 당연한 일이다. 그제야 긴장이 풀리고 멍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한 노곤함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합격 문자를 확인하던 그 느낌은 잊을 수가 없다.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는 표현이 맞는 거겠지. 대학 갈 때도 점수 맞춰 대충 써넣어 갔었기에 이런 성취감이나 짜릿함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거 같다. 이날만큼은 세상이 다 내 거인 거 같고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고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을 거 같았다.


그날 나는 남편을 시작으로 합격 문자를 캡처해서 친정식구들과 늘 만나는 동네 아줌마들에게 알렸다. 이 날 하루 종일 축하 문자를 받은 거 같다. 남편과 친정식구들은 너무 자랑스럽게 생각해주었고 동네 아줌마들은 언제 공부를 한 거냐부터 시작해서 어렵다던데 대단하다. 어쩜 말 한마디 없이 공부한 거냐. 책 다 봤음 넘겨라 등등..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축하를 받아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날은 하루 종일 샴페인 터트리는 기분으로 보냈던 거 같다. 물론 지금은 장롱면허일 뿐인 내 40의 첫 도전이지만, 나름 훌륭하게 마무리했다는 안도감이 온몸을 감쌌다. 하나는 해내었구나. 그날만큼은 자랑스러운 엄마가 된 것 같아서 아이들 앞에서도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고서야 남편은 10년 동안 살았던 집을 팔고 이사하는 거에 동의를 했다. 막연한 전세살이가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무한신뢰다. 역시 국가공인자격증의 힘이란 대단한거구나.

그래. 나 이제 전문가라고 믿어봐~


40이라는 숫자가 내게 준 막연한 두려움도 결국 내가 만든 거였고, 두려움을 안고 '그래도 해보지 뭐' 밀어붙였던 내 오기 또한 내가 만든 거였다. 당장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내 생활에 아무런 변화도 없지만 나에게 새롭게 부여된 '자신감'이란 단어는 10년 넘게 가족들 뒷바라지하며 잊었던 '나'를 상기시켜 주기에 충분했고,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구나하는 감정을 오랜만에 느끼게 해 준 드라마틱한 사건이 되어 주었다.


한편으로 어렵게 자격증은 땄지만, 내가 이 자격증으로 일하게 되는 상황은 없었으면 좋겠고도 생각했다. 나는 아이들 키우는 가정주부로서 내 일을 꽤나 만족하고 있었고, 아이들이 아직 어리기에 당장 내가 일을 해야 하는 일들은 생기지 않길 누구보다 원했다. 워킹맘으로서의 내 가치는 이미 잊은 지 오래고, 경단녀인 내가 갑자기 자격증 하나 취득했다고 이 무서운 사회에 나서서 경쟁해야 한다는 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나는 부동산을 알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고, 집을 팔고 이사를 갈 명분을 만들고 싶었고, 혹시나 남편이 실직을 한다거나 가족을 부양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한 보험이 되어 주기만을 바랬다. 내 가치를 높여줄 하나의 컬렉션처럼 말이다.


하지만, 인생은 내 맘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늘 그렇듯이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40, 시작하기 좋은 숫자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